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덩케르크(영화) (문단 편집) == 배경 == [[1940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 됭케르크 해안에 고립된 40만여 명의 [[영국]], [[프랑스]], [[벨기에]], [[폴란드]], [[네덜란드]] 5개국 병력을 영국 본토로 탈출시키는 작전인 [[됭케르크 철수작전]]을 소재로 삼은 실화 [[영화]]다. 영화의 배경인 '[[됭케르크]]'는 프랑스 북부, 벨기에 접경 지역 인근에 있는 도시이다. [[파리(프랑스)|파리]] 북쪽 270km, 벨기에 국경에서 14km 지점에 있으며 [[도버 해협]]과 맞닿아 있다. [[연합국|연합군]]은 이곳에 약 9일 동안 고립되어 있었다. 됭케르크에 고립된 연합군 병력들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으며, 탈출 지점이었던 영국 입장에서는 최우선적으로 구조해야 했던 [[영국군]] 장병들의 탈출 과정을 그린 것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연합군이 됭케르크에 고립된 이유는 1940년 5월, [[독일 국방군|독일군]]이 연합군의 프랑스 육군 방어선을 돌파하고 그대로 [[영국 해협]]을 향해 돌진하며 진격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독일군의 진격 과정에서 연합군은 둘로 갈라지게 됐고, 연합군은 퇴로를 차단당한 채 됭케르크 해안에 고립되고 만 것이다. 유럽에서 2차 세계대전이 본격적으로 불붙은 계기는 영국과 프랑스와의 합의를 깨고 [[폴란드 침공|폴란드를 침공]]한 독일에 영, 프가 [[선전포고]]를 하게 되면서다. 그러나 프랑스는 1차 세계대전에서 워낙 피해를 본 까닭에 [[마지노 선]]을 기반으로 방어전을 할 계획밖에 없었고 영국 역시 급하게 전쟁 준비를 하느라 전투력이 충분치 못했다. 어쨌든 양쪽은 가용 가능한 모든 병력을 모아서 마지노 선 방향에 보내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벨기에 쪽에 약간의 병력을 보냈는데, 독일군이 벨기에를 돌파하고 [[프랑스 침공|영국군과 프랑스군을 다 격파하며]] 그대로 프랑스 내부로 진격해버린 것이다. 때문에 남은 영국군과 일부 프랑스군은 그대로 독일군에게 포위 섬멸당하든가, 아니면 어떻게든 배로 덩케르크에서 철수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연합군이었지만, [[됭케르크 철수작전#s-3.1|독일 국방군 역시 여러 사정 때문에 하루 동안 진격을 멈췄고]], 연합군은 그나마 한숨 돌릴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러나 연합군은 여전히 고립 상황에 직면해 있었고, 영국군 사령부는 육-해-공을 가리지 않는 계속된 독일군의 공격 속에서 됭케르크 철수 계획을 세웠다. 그리하여 1940년 5월 28일부터 6월 4일까지 계속된 작전 끝에 338,226명의 영국군 및 프랑스군 장병들을 [[잉글랜드]]로 철수시킬 수 있었다. 당시 영국은 본격적으로 전쟁 준비를 끝낸 시점이 아니라 저 40만 병력은 가용가능한 전체 병력을 총 투입한 셈이었고,[* 당시 전 세계에 [[식민지]]를 가지고 있던 영국이라 식민지 주둔군으로 상당수 병력이 필요했고 이들을 빼오기는 힘들었다.] 만약 이들이 포위 섬멸당했으면 영국은 더 이상 싸울 병력이 없었을 상황이다. 다행히 이들이 철수에 성공하여 영국은 훗날 반격을 할 수 있는 전력을 보존했으며, 처칠을 비롯한 영국인들은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자세로 반격을 위해 노력한다. 연합군은 이후 4년간 전 세계에서 독일과 싸움을 벌이다가 프랑스령 [[노르망디]] 해안에서 [[노르망디 상륙작전|사상 최대의 상륙작전]]을 감행할 수 있었다. 때문에 이 철수작전은 2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극적인 상황 중 하나로 평가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