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홍단군 (문단 편집) == 기타 == * 남한 각지에 있는 [[대흥동]]과 대흥리의 영향인지, 혹은 지명에 자주 쓰이는 흥(興)자의 이미지 때문인지 대'''흥'''단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지만 대'''홍'''단이 맞는 명칭이다. 일부 교과서나 지리부도, 창작물[* [[군주 온라인]]은 10년이 넘었는데도 이 명칭을 고치지 않고 있다.] 등에서도 대흥단으로 잘못 나온 경우가 꽤 많다. * 유명한 일화 중 하나로, [[김정일]]이 대홍단을 [[현지지도]]했을 때 민원식이라는 제대군인과 그 아내 박혜금이 자기 집에 온 김정일에게 "뱃속에 있는 아이의 이름을 지어 달라"고 한 적이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현지지도 중에 들어가는 집도 아무 집이나 막 들어가는 게 아니라 사전에 미리 사돈의 팔촌까지 인적조사 다 하고 선정해서 만반의 준비를 해 두는 것이다. 그런데도 혼났다고 하면 아이 이름 문제는 아무도 예상을 못했다가 김정일이 불쑥 얘기를 꺼내고 민원식 부부도 불쑥 답해버린 듯. 나중에 김정일이 군당으로 돌아와 "민원식의 아이가 아들이면 대홍이, 딸이면 홍단이라 짓게 하라"는 '''교시'''를 내렸다. 부부는 졸지에 장군님의 은덕을 받아, [[평양산원]]까지 가서 딸을 낳게 되었다고 한다. 당연히 딸 이름은 민홍단이 되었다. 이후로 대홍단군에서는 아들은 대홍이, 딸은 홍단이라 짓는 게 유행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이건 실제 북한 측 기사에서 밝힌 내용이다. 이런 식으로 김부자에게 성은(?)을 받으면 접견자로 분류되어 일가를 평양으로 이주시킨다. * [[소말리아/해적|소말리아의 해적]]을 때려잡은 것으로 유명한 배인 [[소말리아/해적#s-5.1|대홍단호]]의 이름도 대홍단군에서 따왔다고 한다. * 이곳에는 '대홍단군 혁명전적비'가 있다. 1939년 5월 22~23일에 바로 이곳에서 [[김일성]]이 이끄는 [[조선인민혁명군]]이 무산군에서 시작한 '무산지구전투'를 승전으로 끝맺었음을 기리고자[* 북한에서는 무산지구전투가 조선인민혁명군이 국내에서 진행한 군사작전들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의의가 큰 전투라고 주장하고 [[보천보 전투]] 버금가는 위상으로 여긴다.] 1971년 5월에 대홍단군 혁명전적지에 높이 35 m짜리 '무산지구전투승리기념탑'을 세웠고, 2002년 5월에는 높이 39.5m짜리 새 기념탑으로 교체하기도 했다. 당연히 이는 북한의 왜곡으로, 조선인민혁명군부터가 실존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산지구전투'의 실체는 후에 김일성의 최측근이 된 [[최현(북한)|최현]][* [[최룡해]]의 아버지다.]이 이끄는 [[동북항일연군]] 1로군 제4사가 [[1937년]] 5월에 두만강을 건너 무산군 촌락을 공격해 주재소를 파괴한 소규모 사건이었다. 그 바로 다음 달에 [[보천보 전투]]가 일어났음을 감안해보면 김일성 우상화를 위해 전투를 이끈 사람과 시기까지 전부 조작했다는 것이 된다. [[https://www.yna.co.kr/view/AKR20230523116000535|#]] [[분류:량강도]][[분류:인터넷 밈/음악/대한민국]][[분류:인터넷 밈/정치 및 사회/대한민국]][[분류:인터넷 밈/북한]]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