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홍단군 (문단 편집) === 대홍단 감자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UpjH4zfx4xo)]}}}|| >둥글둥글 왕감자 대홍단 감자 >너무 커서 하나를 못 다 먹겠죠 >야하 감자 감자 왕감자 >참말 참말 좋아요 >못 다 먹겠죠 > >[[이밥|흰쌀]]처럼 맛있는 대홍단 감자 >앞골에도 뒷골에도 많이 심었죠 >야하 감자 감자 왕감자 >참말 참말 좋아요 >많이 심었죠 > >호박만 한 왕감자 대홍단 감자 >[[김정일|장군님]] 사랑 속에 풍년 들었죠 >야하 감자 감자 왕감자 >참말 참말 좋아요 >풍년 들었죠 왕감자! [[감자]]가 특산물이라고 한다. 이를 주제로 한 북한의 동요 '대홍단 감자'가 있으며, 대한민국에는 유튜브 등지에 올라온 영상으로 유명해졌고 이후 [[채널A]]의 [[이제 만나러 갑니다]]라는 TV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남자아이랑 평안북도 [[태천군]] 태천군유치원의 신미성라는 여자아이가 동요를 부른 버전이 있으며, [[자막테러]]된 영상이 [[2013년]] 6~7월에 유행하기도 했다. [[관객]] 혹은 [[김정은]] 앞에서 웃었다고 총살형을 당했다는 이상한 루머가 돌기도 하는데, 당연히 사실무근이다. 위의 영상은 [[유튜브]]에 올라갔는데, 시작 직후에 MC가 신미성 어린이에게 무슨 노래를 부르겠냐고 했을 때 '내가용태요', '대홍단감자', '삼일포에땅땅 나도야땅땅'이라고 했다. 그리고 각각의 노래들을 순서대로 합쳐놓았다. 북한답게 가사에 [[김씨 왕조]]를 찬양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장군님 사랑 속에 풍년 들었죠''' 이 가사다. 그래서 위의 [[내가 고자라니]] 패러디 영상에서는 시작 부분에 [[김정일 개새끼 해봐|김씨 3대 부자를 욕하는 자막을 달아놓고,]] [[장군님]] 부분을 [[장포스]]로 대체했다. 또한, 이런저런 패러디가 난무하는 [[SNL 코리아]]에서도 시즌7 샤이니 [[종현]] 편에서 코너 3분 친구에서 동무를 선택했더니 '''대홍단 감자를 부르는 종현'''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대홍단 감자'에 얽힌 이야기들은 [[북한]]답게 그다지 흥겨운 것은 아니다. [[1998년]], [[김정일]]이 [[대홍단]]을 현지 지도하면서 이른바 '''감자 혁명'''을 내세우고 [[대홍단]]에 대규모 감자 농업 단지를 조성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대홍단]]에는 이 엄청난 '감자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었다. 결국 만만한 게 제대 [[군인]]. [[1999년]]에만 제대 군인 1천여 명과 경공업 근로 여성 40여 명을 여기에 무리 배치시키고, 대규모 합동 결혼식도 치러줬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4560197|기사]] 이때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결혼 할 짝을 일일이 배정하기 귀찮으니까 그냥 남자 1줄, 여자 1줄을 쫙 세워놓고, 좌우향우를 시킨 다음에 마주본 상대와 결혼시켜 줬다고 한다. [[북한]]에서도 오지중에 오지로 살기 힘든 동네라 제대군인 중에 노동당 예비 입당증을 주고, 예전에는 1년 지금은 2년 예비 기간을 채우라고 보낸다고 한다. 게다가 현지에서 여성을 만나 결혼까지 장려한다고 한다. 요새는 [[노동당]] 입당으로 꼬셔도 장마당 세대는 돈 주고 바로 집에 가거나, 1년 동안 뇌물을 주고 예비 기간을 채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대홍단]]에 억지로 [[인력]]을 보낸다 해도 생산성이 늘 수 없는게, 북한 농업과 감자 농사의 구조적 문제를 들여다보면 정말로 답이 없는 결정이다. [[농사]]에 들어가는 [[농기구]]와 [[농자재]]를 댈 [[현금]]이 없으니 이걸 가을걷이 [[수확물]]로 담보를 잡아 해결하고, [[가을]]이 되면 이 기구와 자재 대금 갚느라 분배할 [[수확물]]이 남아나질 않으며, 그나마 남는 [[수확물]]도 국가 수매가 최우선인 것이 북한 농업의 고질적인 문제점인데, 대홍단군이라고 이게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는 [[소작농|이런걸 막으려고 나온 사상이다]]. 도시 노동자들은 그래도 8.3 걸어놓고 장마당 장사라도 나간다. 8.3이란 [[1980년대]]에 시작된 [[8.3 인민소비품]]생산운동으로 인해 [[공장]], 기업소마다 인민소비품생산에 필요한 자재를 해결해오기 위한 티오가 생겼는데, 경제난이 심화되면서 노동자들이 일정 금액을 직장에 납부하면 이 티오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때문에 학생, 주부, 연로자가 아닌 일반 근로인민들은 보통 직장에 적을 걸어놓고 돈을 내서 8.3 티오를 받아 장사를 하는데 이를 8.3 장사라고들 부른다. 그런데 농촌의 농민들은 농장에 꼼짝없이 붙잡혀서 그것도 안되고, 대홍단처럼 중앙정부의 관심이 큰 지역은 더더욱 그렇다. 설령 분배된 감자를 내다 팔려고 해도 감자가 너무 무겁다. 그나마도 분배를 받으려면 분조별로 이걸 농장 사무소까지 싣고 가서 수매를 마쳐야 하는데 이 왔다갔다하는 것부터가 고난의 행군이다. 인구밀도가 낮고, 농장당 면적이 넓기 때문에 왕복 10여km를 왔다갔다해야 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그나마도 차량이라도 있으면 모르겠지만, 차가 없고 길도 안 좋으니 결국 그 무거운 감자를 이리저리 짊어지고 오다니는 수밖에 없다. 어렵게 받은 감자를 각 가정에서 보관하는 것도 녹록지 않은 일이다. [[북한]]이 그래도 [[농촌]]과 [[도시]]의 격차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환상을 가진 경우가 종종 보이는데, 실제로는 정책적으로 계속 자원 재분배를 시도하는 [[남한]]에게 모욕일 수준으로 도농간 격차가 심각한 것이 [[북한]]의 현실이다. 심지어 곡창지대로 유명한 [[황해남도]] 지역에서 농민 가정이 이불도 없어서 짚단을 덮고 잔다는 기가 막히는 증언도 있을 정도다[* 탈북민들이 처음 한국에 와서 농촌에 대해 얘기하면 북한과 같이 열악하고 빈곤한 수준으로 생각했다가 농촌봉사와 같은 활동으로 나가서 대한민국 농촌의 실상을 알고 난 후에는 입을 다물지 못한다고 한다. 특히 농촌 곳곳에 아스팔트 길이 닦여있는 것과 자가용을 가진 농민들의 수준을 보고는 그대로 기절초풍을 해버린다고.].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은 [[도시]]로 나가서 막노동일이라도 구하지 않는 이상, [[시골]]은 죽은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은 [[김정은]]이 자기 권력을 위하여 대부분의 인구가 [[핵심계층]]이나 이에 준하는 계층의 사람들인 대도시, 그 중에서도 핵심계층들'''만''' 살고 있는 [[평양시|평양]]에만 필요한 물자를 배급하기 일쑤이며, 비료를 살 돈을 모을 시간에 퇴비를 만들게 하는 등 비생산적인 일을 시키는 일이 많아 도농 간의 격차가 더더욱 무시무시한 속도로 벌어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사리원시]] 같은 일부 많은 농촌이 주변에 있는 도시의 경우에는 2010년대에는 농민들이 '몰래' 도시로 나가서 막노동이라도 하려고 하지만 '''불법이다. 막노동으로 버는 돈으로 훨씬 빠르게 농촌에서 필요한 것을 나라에 낼 수 있어도 말이다. 농민은 농촌에서 평생 있어야 한다.''' 보통 [[개발도상국]]도 북한처럼 이렇게 직업의 자유를 막지는 않는다. 그래도 [[2009년]]경 [[대홍단]]에서 살다 온 사람들은 제법 배부르게 먹고 살았다고 한다. 당시 군당비서가 능력있는 사람이라 뭔 재주를 부렸는지는 몰라도 제법 분배가 괜찮게 되었다고 한다. 이 당비서는 결국 승진해 타지로 영전했다고 한다. [[2018년]], 북한 [[로동신문]]에서 대홍단군의 감자생산량이 역대 사상 최고라고 보도했다. [[https://www.yna.co.kr/view/AKR20181119019500014?input=1179m|관련기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