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한민국/역사 (문단 편집) ==== 한국의 민족 분열과 분단의 요인 ==== 1. [[만주국]]을 무너뜨린 [[소련]]은 곧바로 한반도로 남하하여 한반도 이북지역에는 소련군이 진주하며 이어 한반도 전체가 점령될 태세에 놓이게되자, 이에 놀란 미군은 북위 38도 선에서 양군이 진주할 것을 제안하고 소련은 이를 승인했기 때문에 미군과 소련군의 군정이 시작되었고 '''이는 분단의 1차적 요인'''이 되었다. 또한 미군과 소련군정 당국 모두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정부를 세우기 위해 정치 세력을 후원하거나 솎아내는 작업을 하여 한반도 남쪽과 북쪽에서 반대되는 정치세력이 일소됨으로써([[박헌영]], [[조만식]]) 이것도 분단의 원인이 된다. 1. [[중국]]의 공산화를 들 수 있다. 미국이 지원한 [[장제스]]의 [[중국 국민당|국민당]]이 ‘[[국부천대]]’ 로 대륙을 포기하고 [[타이완 섬]]으로 철군하면서 [[마오쩌둥]]의 [[중국 공산당]]이 [[국공내전]]에서 승리하였다. 드넓은 중국이 공산화되었기 때문에 미국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원래 미국은 중국을 현재 일본과 같은 역할(아시아 지역의 미국의 대리)을 하게 만들려는 계획이었다. 일본은 많은 공업설비들을 해체하고 [[농업]]과 [[목축]]이 주를 이루는 아시아의 [[스위스]]와 같은 국가로 만들 계획이었고[* 다만 스위스는 당시에도 [[공업]]이나 [[금융]]이 발달하였다.] 이를 위해 [[제2차 세계 대전]]의 전범을 처벌하고 일본의 [[일본사회당(1945년)|사회당]](현 사회민주당) 세력을 우대했으나 다시 [[전범]] 세력이 정계를 장악하게 되었고 사회당 세력은 축소되었고 공산당 세력은 추방되었다. 이 사건을 ‘역코스(reverse course)’라고 한다. 한국에서도 좌우 합작에 우호적(여운형, 김규식 우대)이던 미국이 시큰둥하게 되었고 대한민국 단독 정부 수립의 방향으로 기울게 되었다. 이 사건은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일본의 화족 세력을 중심으로 한 전범 세력을 처벌하지 못함으로써 일본 정치는 급격히 우경화되었고 일본의 파벌 정치, 세습 정치 등의 고질적인 구태의 원인이 되었다. 또한 과거사가 청산되지 않음으로써 현재 전시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같은 과거사와 [[독도]] 영토 문제가 지금까지도 계속되게 된다. 한국에서도 분단-한국전쟁 등으로 상호간의 악감정이 생겨나 분단이 고착화하는 원인이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