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한민국/역사 (문단 편집) === [[광복]] 및 [[군정#군정청|군정기]]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F50EmeNZ-cg)]}}}|| [[대한제국]]이 [[경술국치]]로 주권을 상실한 뒤, [[일본 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으면서 30~40년 동안 수난과 고통의 [[일제강점기]] 시대를 겪어야만 했다. 그러나 1945년 일제가 [[태평양 전쟁]]에서 패망함으로써 한국은 일제로부터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다. 하지만 승전국들이 카이로, 얄타, 포츠담 회담에서 합의한 바대로 해방과 동시에 [[삼팔선|38도선]]이 그어짐에 따라 한반도는 진주한 소련군과 미군에 의해 둘로 점령되게 되었다. [[여운형]]과 좌우익의 각 인사들이 모여 만든 [[조선건국준비위원회]]가 [[조선인민공화국]]을 선포했지만 [[미군정]]에 의해 부정되었으며 38도선 이북 역시 [[소련군정]]의 정치가 계속 되고 있었다. 한반도 전체가 [[신탁통치]]에 따른 입장의 차이와 급속한 이념의 대립에 따른 분단의 불안감, 좌우 대립으로 인한 수많은 [[적색테러]] ・ [[백색테러]], 무질서한 경제 등 심각한 사회혼란을 겪고 있었으며 [[미소공동위원회]]와 [[좌우합작운동]] 등이 있었으나 유엔총회 후 38도선 이남은 소련의 38도선 이북에 대한 총선거 반대에 따른 유엔의 결정으로 [[정읍발언|남한만이라도 단독선거를 실시하기로 했고]] [[제헌의회]]를 구성, 의회 간선제를 통해서 [[미군정]]과 [[한국민주당]]의 지지를 받는 [[이승만]]을 초대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으로 선출하면서 대한민국 정부를 1948년 8월 15일에 수립하게 된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freeview.org/2049675300_07248ebe_cg_20080421093743_ss2.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8899_9781_3652.jpg|width=100%]]}}} || || 대한민국의 역사적인 제헌국회 개원식[br] (1948년 5월 31일) || 대한민국 정부 수립 국민 축하식[br](1948년 8월 15일)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eknpC7-9XPQ)]}}} || || [[8월 15일|8.15]] [[대한민국 정부]] 선포식 당시 실제 현장 촬영 영상[* 00:20 각계 인사들 [[중앙청]]으로[br]02:15 개회[br]03:01 이승만 대통령 연설[br]09:48 [[더글라스 맥아더|맥아더]] 장군 연설[br]16:28 [[존 리드 하지|하지]] 장군 연설[br]20:56 [[유엔]] 한국위원단 의장 연설[br]23:52 [[주한미국대사|주한 미 대사]] 연설[br]24:33 폐회[br]24:45 참석한 내외 귀빈들 퇴장] || ||<#000> '''[[8월 15일|8.15]] [[대한민국 정부]] 수립 경축사 전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br]외국 귀빈 제씨와 나의 사랑하는 동포 여러분! 8월 15일, 오늘 거행하는 이 식은 우리의 [[8.15 해방|해방]]을 기념하는 동시에 [[대한민국|우리 민국]]이 새로 탄생한 것을 겸하여 경축하는 것입니다. 이날에 동양의 한 고대국인 [[대한민국 정부]]가 회복되어서 40여년을 두고 바라며 꿈꾸며 희생적으로 투쟁하여온 결실이 표현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은 내 평생에 제일 긴중한 시기입니다. 내가 다시 고국에 돌아와서 내 동포의 자치 자주하는 정부 밑에서 자유 공기를 호흡하며 이 자리에 서서 [[대한민국 대통령]]의 자격으로 이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마음에는 [[대통령]]의 존귀한 지위보다 대한민국의 한 공복인 직책을 다하기에 두려운 생각이 앞서는 터입니다. 우리가 목적지에 도달하기에는 앞길이 아직도 험하고 어려웁니다. 4천여년을 자치 자주해온 역사는 막론하고 세인들이 남의 선전만 믿어 우리의 독립 자치할 능력에 대하여 의심하던 것을 금년 5월 10일, 전 민족의 민주적 [[민족자결주의|자결주의]]에 의한 [[5.10 총선거|전국 총선거]]로써 우리가 다 청소시켰으며 모든 방해와 지장에 대하여 일시의 악감이나 낙심 애걸하는 상태를 보이지않고 오직 인내와 정당한 행동으로 극복하여 온 것이니 우리는 이러한 태도를 가지고 연속 진행함으로 앞에 많은 지장을 또 일일이 이겨나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금도 우려하거나 퇴축할 것도 없고 어제를 통분히 여기거나 오늘을 기뻐만 하지말고 내일을 위해서 노력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할 일은 우리의 애국심과 노력으로 우리 민국을 반석같은 기초 위에 둘 것이니 이에 대하여 공헌과 희생을 아니한 남녀는 더 큰 희생과 굳은 결심을 가저야 될 것이요 더욱 굳센 마음과 힘을 다하여 다만 우리의 평화와 안전 뿐 아니라 온 인류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서 힘써야 될 것입니다. 이 건국 기초에 요소가 될 만한 몇 조건을 간략히 말하면 1. '''[[민주주의]]를 전적으로 믿어야 될 것입니다.''' 우리 국민 중에 혹은 [[독재]] 제도가 아니면 이 어려운 시기에 나갈 길이 없는 줄로 생각하며 또 혹은 공산 분자의 파괴적 운동에 중대한 문제를 해결할만한 지혜와 능력이 없다는 관찰로 독재권이 아니면 다른 방식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으니 이것은 우리가 다 큰 유감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목하의 사소한 장해로 인해서 영구한 복리를 줄 민주주의의 대정 방침을 모호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결코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독재주의가 자유와 진흥을 가져오지 못하는 것은 역사에 증명된 것입니다. 민주 제도가 어렵기도하고 또한 더디기도 한 것이지만 의로운 것이 종말에는 이기는 이치를 우리는 믿어야 할 것입니다. 민주 제도는 세계 우방들이 다 믿는 바로 우리 친구들이 이 [[전제 정치]]와 싸웠고 또 싸우는 중입니다. 세계의 안목이 우리를 드러다보며 역사의 거울이 우리에게 비치어 보이는 이때에 우리가 민주주의를 채용하기로 하고 30년 전부터 결정해서 실행하여온 것을 또 간단없이 실천해야 될 것입니다. 이 제도로 성립된 [[정부]]만이 인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정부입니다. 2. '''[[민권]]과 [[개인]] [[자유]]를 보호할 것입니다.''' 민주 정체의 요소는 [[기본권|개인의 근본적 자유]]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국민이나 정부는 항상 주의해서 개인의 [[표현의 자유|언론]]과 집회와 [[종교의 자유|종교]]와 [[양심의 자유|사상]]의 자유를 극력 보호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가 40여년 동안을 [[일본 제국|왜적]]의 손에 모든 학대를 받어서 다만 말과 행동 뿐 아니라 생각까지도 자유로 하지 못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한민족|우리 민족]]이 절대로 싸워온 것입니다. 우리는 개인 자유 활동과 자유 판단권을 위해서 쉬지않고 싸워온 것입니다. 우리를 압박하는 사람들은 유래로 저의 나라의 전제 정치를 고집하였으므로 우리의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마음이 더욱 굳어져서 속으로 민주 제도를 배워 우리끼리 진행하는 사회나 정치상 모든 일에는 서양 민주국에서 행하는 방식을 모범하여 자래로 우리의 공화적 사상과 수난을 은근히 발전하여 왔으므로 우리의 민주주의는 실로 뿌리가 깊이 박혔던 것입니다. [[공화주의]]가 30년 동안에 뿌리를 깊이 박고 지금 결실이 되는 것이므로 굳게 서 있을 것을 믿습니다. 3. '''[[자유권적 기본권|자유]]의 뜻을 바로 알고 존중하며 한도 내에서 행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나라에던지 자유를 사랑하는 지식 계급의 진보적 사상을 가진 청년들이 정부에서 계단을 밟어 진행하는 일을 비평하는 폐단이 종종 있는 터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언론과 행실을 듣고 보는 이들이 과도히 책망해서 위험 분자라 혹은 파괴자라고 판단하기 쉬웁니다. 그러나 사상의 자유는 민주 국가의 기본적 요소이므로 자유 권리를 행사하여 남과 대치되는 의사를 발표하는 사람들을 포용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못해서 이런 사람들을 탄압한다면 이것은 남의 사상을 존중히하며 남의 이론을 참고하는 원칙에 위반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비와 선악이 항상 싸우는 이 세상에 우리는 의로운 자가 불의를 항상 이기는 법을 확실히 믿어서 흔들리지 말어야 될 것입니다. 4. '''서로 이해하며 협의하는 것이 우리 정부의 관건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새 국가를 건설하는 이때에 정부가 안으로 공고하며 밖으로 위신이 있게 하기에 제일 필요한 것은 이 정부를 국민이 자기들을 위해서 자기를 손으로 세운 자기들의 정부임을 깊이 각오해야 될 것입니다. 이 정부의 법적 조직은 [[소련군|외국 군사]]가 방해하는 [[북한|지역]] 외에는 전국에서 공동히 거행한 총선거로 된 것이니 이 정부는 [[대한민국 국회|국회]]에서 충분히 토의하고 [[제헌절|제정한]] [[제헌 헌법|헌법]]으로써 모든 [[권리]]를 확보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는 우리 일반 국민은 누구나 다 일체로 [[선거권|투표할 권리]]와 [[참정권|참정할 권리]]를 가진 것입니다. 일반 국민은 누구를 물론하고 이 정부에서 분포되는 법령을 다 복종할 것이며 충성스러히 받들어야만 될 것입니다. 국민은 민권의 자유를 보호할 담보를 가졌으나 이 정부를 불복한다든지 번복하려는 권리는 허락한 일이 없으니 어떤 불충분자가 있다면 공산분자 여부를 물론하고 혹은 개인으로나 또 당으로나 정부를 전복하려는 사실이 증명되는 때에는 결코 용서가 없을 것이니 극히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인민의 자유 권리와 참정권을 다 허락하되 불량 분자들이 민권 자유라는 구실을 이용해서 정부를 전복하려는 것을 허락하는 나라는 없는 것이니 누구나 다 이것을 밝히 알어 조심해야 될 것입니다. 5. '''정부에서 가장 전력하는 바는 도시에서나 농촌에서나 근로하며 고생하는 동포들의 생활 정도를 개량하기에 있는 것입니다.''' 기왕에는 정부나 사회에 가장 귀중히 여기는 것은 [[양반]]들의 생활을 위했던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이 사상을 다 버리고 새 주의로 모든 사람의 균일한 기회와 권리를 주장하며 개인의 신분을 존중히하며 노동을 우대하여 법률 앞에는 다 동등으로 보호할 것입니다. 이것이 곧 이 정부의 결심이므로 전에는 자기들의 형편을 개량할 수 없던 농민과 노동자들에게 특별히 주의하려 하는 것입니다. 또 이 정부의 결심하는 바는 [[국제무역|국제 통상]]과 [[산업화|공업 발전]]을 우리나라의 필요에 따라 발전을 실시하여 우리 농장과 공장 소출을 외국에 [[수출]]하고 우리가 우리에게 없는 물건은 [[수입]]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즉 공장과 상업과 노동은 서로 떠날 수 없이 함께 병행불패(竝行不敗)해야만 될 것입니다. 경영주들은 노동자를 이용만 하지 못할 것이요 노동자는 [[자본가]]를 해롭게 못할 것입니다. [[공산당]]의 주의는 계급과 계급 사이에 충돌을 붙이며 단체와 단체간에 분쟁을 붙여서 서로 미워하며 모해를 일삼는 것이나 우리의 가장 주장하는 바는 [[계급투쟁|계급 전쟁]]을 피하고 전 민족의 활동을 도모함이니 우리의 활동과 단합성은 우리 앞에 달린 국기가 증명하는 것입니다. [[상고 시대]]부터 [[태극]]이 천지만물에 융합되는 이치를 표명한 것이므로 이 이치를 실행하기에 가장 노력할 것입니다. 6. '''우리가 가장 필요를 느끼는 것은 경제적 원조입니다.''' 과연 기왕에는 외국의 원조를 받는 것이 받는 나라에 위험스러운 것을 각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언제든지 무조건하고 청구하는 것은 불가한 줄로 아는 바입니다. 지금와서는 이 세계 대세가 변해서 각 나라 사이에 대소강약을 물론하고 서로 의지해야 살게되는 것과 전쟁과 평화에 화복안위를 같이 당하는 이치를 다 깨닫게되므로 어떤 적은 나라의 자유와 건전이 모든 큰 나라에 동일하게 관심되는 것입니다. [[연합국]]과 모든 민족들이 개별적으로나 단체적으로 기왕에 밝히 표명하였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발표할 것은 이 세계의 대부분이 민주적 자유를 누리게 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방들이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이요 또 계속해서 도움을 준 것인데 결코 사욕이나 [[제국주의]]적 요망이 없고 오직 세계 평화와 친선을 증진할 목적으로 되는 것이니 다른 의심이 조금도 없을 것입니다. 오늘 [[미군정]]은 끝나고 대한 정부가 시작되는 이날에 모든 [[미국인]]과 모든 [[한인]] 사이에 한층 더 친선을 새롭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유를 회복하는 것은 첫째로 [[미국]]이 [[일본]]의 강권을 타도하기 위하여 우리나라에 있던 적군을 밀어내었고 지금은 자발적으로 우리의 독립을 회복하기에 돕는 것이니 우리 토지의 일척일촌(一尺一寸)이나 우리 재정의 일푼전이라도 원하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미국은 과연 정의와 인도의 주의로 그 나라의 토대를 삼고 이것을 세계에 실천하는 증거가 이에 또다시 표명되는 것입니다. 겸하여 과도기에 미국 장교들을 도와서 계속 노력한 모든 동포들의 업적은 우리가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첫째로 [[미군|미국 군인]]이 점령한 동안에 군정이나 민정에 사역한 미국 친우들이 우리에게 동정하며 인내하여 많은 양해로 노력해준 것은 우리가 또 깊이 감사하는 바입니다. 또 다시 설명하고자 하는 바는 [[주한미군사령관|미 점령군 사령관]]이요 지도자인 [[존 리드 하지|하지 중장]]의 모든 성공을 치하하는 동시에 우리는 그분을 용감한 군인일 뿐 아니라 우리 한인들의 참된 친우임을 다시금 인정하는 바입니다. 이 새로 건설되는 대한 민주국이 세계 모든 나라 중에 우리의 좋은 친구되는 나라들이 많은 것을 큰 행복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 정부의 주의하는 바는 기왕에 친근히 지내던 나라와는 더욱 친선을 도모하는 것이요 기왕에 교제 없는 나라들과도 친밀한 교제를 열기로 힘쓸 것입니다. 둘재로 [[유엔|국제연합]]의 회원된 나라들을 일일이 다 지명하여 말할 수는 없으나 이 모든 나라들이 우리에게 많은 동정을 표하였으며 작년 11월 14일에 한국을 위하여 통과한 결의로 우리의 [[독립]] 문제를 해결되게 한 것을 감사히 여기는 중 더욱이 [[유엔]] 임시위원단에 대표를 파견한 그 나라들이 민주적 총선거를 자유로 거행하는데 도와주어서 이 정부가 생기게 한 것을 특별히 고마워하는 바입니다. 이 앞으로 유엔총회가 [[파리(프랑스)|파리]]에서 열릴 때에 우리나라 승인 문제에 다 동심 협조하여 이만치 성공된 대사업을 완수하게 하기를 바라며 믿는 바입니다. 우리 전 국민이 기뻐하는 이날에 우리가 [[북한|북편]]을 돌아보고 비감한 생각을 금하기 어려웁니다. 거의 1천만 우리 동포가 민국 건설을 우리와 같이 진행하기를 남북이 다 원하였으나 유엔 대표단을 소련군이 막기 때문에 못하게 된 것이니 우리는 장차 소련 사람들에게 정당한 조처를 요구할 것이요 다음에는 세계 대중의 양심에 호소하리니 아무리 강한 나라이라도 약한 이웃의 강토를 무단히 점령케 하기를 허락한다면 종차로는 세계 평화를 유지하려는 나라가 없을 것입니다. 그 나라가 자유로 사는 것을 우리가 원하느니만치 우리가 자유로 사는 것을 그 나라도 또한 원할 것입니다. 언제든지 우리의 이 원하는 바를 그 나라도 원한다면 우리 민국은 세계 모든 자유국과 친선을 지키며 지내는 것과 같이 소련과도 친선한 우의를 다시 교환하기에 노력할 것입니다. 결론으로 오늘 지나간 역사는 마치고 새 역사가 시작되어 세계 모든 정부 중에 우리 새 정부가 다시 나서게 되므로 우리는 남에게 배울 것도 많고 도움을 받을 것도 많습니다. 모든 자유 우방들의 후의와 도움이 아니면 우리의 문제는 해결키 어려울 것입니다. 이 우방들이 이미 표시한 바와 같이 금후로도 계속할 것을 우리는 깊이 믿는 바이며 동시에 가장 중대한 것은 일반 국민의 충성과 책임감과 굳센 결심입니다. 이것을 신뢰하는 우리로서는 모든 어려운 일에 주저하지 않고 이 문제를 해결하며 장해를 극복하여 이 정부가 대한민국에 처음으로 서서 끝까지 변함이 없이 민주주의에 모범적 정부임을 세계에 표명되도록 매진할 것을 우리는 이에 선언합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 || 1948년 8월 15일에는 [[이승만]]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선언했다. 이에 반응해 38도선 북부에서는 9월달, 소련 군정의 지지를 등에 업은 [[김일성]]이 [[대한민국]] 수립 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세워 대한민국과 대결 양상을 벌였다.[* 분단의 원인이 [[이승만]]인지, [[김일성]]인지, [[미국]]인지, [[소련]]인지는, 입장에 따라서 여려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남한은 [[6.25 전쟁]] 전까지 암살, 방화, 국지전, 반란, 북한과의 대립 등으로 혼란스러운 고통의 시기를 보냈다. 특히, 남로당은 대한민국 정부을 전복하기 위해 2번의 대대적인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것이 [[제주 4.3 사건/전개|제주도에서 발발한 남로당 무장 봉기]]와 [[여수·순천 10.19 사건|제주 무장봉기의 진압군이었던 14연대가 반란을 일으킨 14연대의 반란이었다]]. 또한 사회적 혼란으로 인한 초인플레이션으로 경제적으로도 고통의 나날을 보냈다. 군사적으론 1949년부터 북한에게 열세였고 이는 결국 6.25 전쟁이 일어난 원인 중 하나가 된다. 분단과 전쟁을 막기 위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이었던 [[김구]], 부주석 [[김규식]] 등이 남북을 하나로 만들려 노력했지만 이미 [[냉전|미소 양국의 이해관계]]와 이승만, 김일성으로 양분되어 만들어진 남북 분단 체제를 바꿀 수 없었다. 이승만과 김일성 두명 모두에게 통일이 거부당하고 중도 성향의 독립운동가 출신 인사들이 하나 둘 의문의 암살을 당하게 되자, 통일된 한국을 만들려는 노력은 사그라들게 되었고, 남북은 각각 군대를 창설해 38도선을 경계로 중소규모의 국지전을 벌이게 되는 위험한 상황을 지속하게 되었다.[* 6.25 발발전의 38도선은 완전한 경계선이 아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