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한민국/관광 (문단 편집) == 역사 == 대한민국이 관광산업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한건 관광산업이 외화 획득 수단으로 주목받기 시작하던 [[1960년대]] 말부터였다.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한 자본형성에 누구보다 목을 맸던 [[박정희]] 대통령은, 관광산업이 투입되는 단위당 비용은 적으면서 산출되는 이익은 높다는 것(외화 가득률)에 주목하였고, 관광산업을 육성하기 위하여 '관광사업진흥법'[* 오늘날 관광사업을 정의하는 가장 세분화된 법률인 '관광진흥법'의 모태가 된 법률]을 제정하고, 이를 주도적으로 맡아 추진하기 위해 1962년 [[한국관광공사|국제관광공사]]를 설립하였다. 낮은 국민소득 수준과 여가에 대한 낮은 인식 덕분에 국민의 관광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으며, 이 때의 관광정책은 외래 여행객을 유치하고 열악한 수준에 있는 각종 관광 인프라들을 정비하기 위한 제도적, 정책적 기반을 마련하는데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1960년대 대한민국은 최빈국이라 주먹구구였고 관광 목적으로 대한민국을 찾을 만한 사람도 없는 국가였다. [[1970년대]] 들어 경제개발 정책 효과가 나타나면서 국민의 소득수준이 점차 확충되었고, [[중문관광단지]]를 비롯하여 관광 인프라도 점차 개선되기 시작하였다. 1970년대부터 한국은 최빈국을 면하여 어지간한 선진 개발도상국 수준으로 비약하기 시작한다. 이 때를 기점으로 [[수도권 전철]]이 1974년 개통되고, [[새마을호]]가 처음 등장하여 [[서울역]] - [[대전역]] - [[동대구역]] - [[부산역]]만 찍고 4시간 50분이라는, 당시 기준으로는 믿기지 않는 속도로 달리기 시작한다. [[1980년대]] 들어 이른바 3저 호황과 함께 마이카 열풍이 불어닥치고, 여가 시간과 소득, 이동수단을 획득한 국민은 폭발적으로 관광 활동에 나서게 된다. 이 때의 주요한 관광 활동으로는 [[해운대해수욕장]] 등 [[부산광역시|부산]]의 해양 관광자원을 이용한 피서, [[경주시|경주]]의 불국사 등 정책적으로 조성된 관광단지들을 방문하는 국내관광이 주를 이루었으며, 일부 상류계층을 대상으로 해외 여행도 조금씩 활성화되기 시작하였다. 이 때 [[새마을호]]는 PP동차 및 유선형 객차 개발로 속도가 비약적으로 상승, 4시간 10분 만에 서울-부산을 오갈 수 있게 되었으며, 달리는 [[호텔]]이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는 훌륭한 서비스를 자랑하며 손님을 긁어 모은다. 1985년에는 한국의 제2 경제권인 [[부울경]] 지역에도 [[부산 도시철도]]가 개통되었으며, 119 구급대가 1981년, 119 구조대가 1988년 발족하고 화재 및 구조요청, 응급의료요청 번호인 [[119]], 범죄신고인 [[112]], 간첩신고 [[113]] 등 각종 긴급번호가 도입되어 외국인들도 손 쉽게 긴급상황 시 도움을 받게 된다. 경찰에서는 아예 112 기동순찰대를 만들어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대비 치안유지 활동도 벌인다.[* 이 때 홍보에서 112에 신고하면 동네 파출소에 전화하는것보다 더 빨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단 점을 강조하게 된다.] [[1990년대]] 들어 해외여행 자유화가 본격 단행되었으며, 정부의 관광 육성 정책도 물리적인 인프라를 확충하기보단 관광객 수용태세를 정비하고 국내 관광을 홍보하는 질적인 수준으로 변화하였다. [[2000년대]] 들어 국내 관광이 침체되기 시작하였다. 국민의 높은 소득 수준에 비하여 국내 관광 인프라는 [[강원특별자치도|강원도]] 및 [[부산광역시|부산]] 광역권과 [[경주시|경주]], [[제주도]] 등 유명한 관광지들을 제외하곤 여전히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었으며, 관광객 수용 태세(환대성, 바가지 요금 등)도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국민들은 점차 국내 여행을 외면하고 [[해외여행]]을 선호하기 시작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TX]]의 등장으로 철도 서비스가 선진화되고 저가항공사들의 등장으로 교통 서비스들은 편리해졌다. 2000년대를 기점으로 [[한류]]열풍이 전세계에 불기 시작하면서 외국에서 온 방문객 수는 [[중국인]] 관광객의 폭발적 증가에 힘입어 매년 10% 수준의 폭발적인 증가를 이어갔다. 다만 그만큼 해외여행을 떠난 국민의 수효도 비슷한 수준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전체적인 관광수지 적자는 개선되지 못하였다. [[2017년]]에는 전격적으로 단행된 중국의 사드 보복때문에 외래관광객은 급감한데 비해, 내국인의 해외 여행은 비슷한 수준으로 계속 성장하여 관광수지 적자가 통계 작성 이래 최대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중국인|중국 대륙인]] 관광객이 감소한 만큼 [[홍콩]], [[마카오]], [[대만]], [[싱가포르]] 등 비중국 [[중화권]] 관광객이나 [[일본]], [[몽골]], [[인도네시아]] 등 다른 아시아 국가나 [[호주]], [[뉴질랜드]] 등 [[오세아니아]], [[유럽]]과 [[북아메리카]] 국가에서 오는 관광객은 늘었다. 현대 대한민국의 관광산업은 외국에서 들어오는 외국인 관광객도 많고, 그만큼 해외로 나가는 국민들도 많아 이 균형이 적정한 수준에서 유지되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인이 외국에 나가서 쓰는 돈보다 외국인이 한국에 들어와서 쓰는 돈의 평균이 2019년 현재 100-200달러 정도 많은데도, 관광수지 적자는 한화로 5,000억원을 돌파한다. 그만큼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보다 해외여행을 가는 한국인의 수가 많기 때문이다. '''다만, 만약 미래에 [[남북통일]]이 성사된다면 한국 관광업이 긍정적인 쪽으로든, 부정적인 쪽으로든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것이다.''' [[백두산]], [[개마고원]], [[금강산]] 등 북한의 자연 절경과 남북 분단의 역사가 담겨있는 [[판문점]], [[비무장지대]] 등이 주요 관광지로 떠오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기에 [[평양시]] 또한 북한의 정치, 문화 시설[*3 [[인민대학습당]], [[인민문화궁전]], [[금수산태양궁전]] 등]이 매우 많이 남아있어서 북한의 흔적들을 볼 수 있는 관광 도시가 될 전망[*4 물론 저 시설들에서 선전 문구나 김씨 동상들은 제거해야 한다.]이다. 단 긍정적인 면만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 통일 이후 북한 주민들의 기본적인 삶을 위한 기본적인 인프라 개설에 공을 들일 가능성이 높아 흡수한 북한 지역에 대한 관광 인프라 개발은 뒷전으로 밀려날 것이며 북한이 무분별하게 개발하거나 방치, 파괴한 문화유산들을 생각해보면 통일 직전이라면 모를까 장기적 관점으로는 그다지 매력적인 관광지로 기능하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또한 통일 이후 2500만명에 달하는 북한 인구의 흡수로 인한 사회적인 혼란, [[치안/국가별 현황/아시아/동아시아#대한민국|치안]]의 공백 역시 해외 관광객들이 불안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