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학수학능력시험/역사 (문단 편집) === [[200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 지난해의 물수능을 지나치게 의식했는지 02 수능에서 갑작스럽게 수준을 상향조정을 단행한다. 98년 이후 쉬운 수능에 포인트를 맞춰 공부한 학생들은 여기에 대규모 [[크리]]를 맞으니, 상위 50%의 총점이 전년도에 비해 66.8점이나 하락하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상위 50%가 아닌 전체 응시 집단으로 확대하면 하락폭은 더 커진다. 문과는 '''무려 98.2점''', 이과는 '''91.3'''점이나 대폭 하락한 것이다. 그것도 언수외 3개 영역에서만 말이다. 100점 가까이 전국 평균이 내려간 것. 이게 얼마나 무서운지는 상상에 맡긴다. 이 영향으로 전영역 만점자는 등장하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수능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태에 겁먹은 학생들은 서울대에 빵꾸가 날 정도로 미친 하향지원을 시도했고, 당연히 그해 대학에 간 학생들은 '''[[안습|대부분이 반수나 편입을 선택했다(...).]]'''] 2001년도 수능이 난이도 조절에서 실패함에 따라 어느 정도 수준이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쉬운 수능'이라는 큰 기조 하에서 약간의 수준 상승 - 총점 평균 약 10~20점 정도의 하락이 일반적인 예상이었다. 전년도 입시에서 수능 만점자가 서울대 법대를 탈락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로 인해 '그래도 만점자는 [[서울대]] 법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의 수준 상승' 정도로 예상하고 있던 것이 당시 일반적 분위기였다. 그런데 그런 예측을 가볍게 뛰어넘는 점수 하락폭이 나온 것. 소위 '''불수능'''. 이 때에는 전년도와 완벽히 대조되는 명언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 '''"이렇게 앞부분에서 이런 문제가 나올 리가 없는데" "이건 평상시에 보던 문제가 아닌데"''' 6차 수능에 한정해서 최고 수준이다. 2002년 수능은 전체적으로 볼 때에 대충 5차 시절의 98년 수능과 비슷한 수준이었으며 97년 수능보단 상당히 쉬웠다. 일단 97년엔 390점 넘은 사람이 아예 없었지만(수석의 점수가 373.3점) 02년엔 390점 넘은 사람들도 여럿 있었고, 97년엔 320점으로도 서울대의 왠만한 학과를 붙을 수 있는 점수였으나 02년엔 320점으로는 서울대를 붙기는 커녕 지원자격(총점 1등급 - 전국 4%, 인문계 320점 초중반, 자연계 350점 근처)도 없어서 아예 원서를 쓸 수조차 없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며, 97 수능 항목에 나와 있는 주요 대학 커트라인 및 실제 시험지를 보면 97수능과는 수준 비교 자체가 무리.[* 97수능은 점수도 점수지만, 이때는 사탐, 과탐 선택과목 구분도 없던 시절이다.] 다만 01년이 수능 역사상 최고의 물수능이었던지라 변동폭이 심해서 충격이었을 뿐. 2002학년도와 그 다음 2003학년도까지 수능 난이도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이해찬|전임 교육부 장관은]] [[이해찬 세대|이 시기의 수험생들로부터 꾸준히 정치생명을 위협받게 되는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