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학수학능력시험/역사 (문단 편집) === [[199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 [[1996년]] [[11월 13일]] 실시되었다. 처음으로 400점 만점 제도를 도입한 수능으로 수능 역사상 가장 수준이 높았다. 역대 최고 난이도의 수능 시험으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단지 문제 수준만 높았던 것이 아니다. 95 ~ 98학년도 수능은 역대 수능 사상 시험 범위가 가장 넓었다. 즉 수험생이 공부해야 하는 과목 숫자가 자그마치 12~14과목으로 가장 많았던 수능이었다. 게다가 '''모두''' 필수 과목이었다. 지금 시점에서는 중국 [[가오카오]]가 이런 방식을 채택하고 있어 특정 과목 쏠림 지수가 0이다. 참고로 99학년도 수능부터 선택 과목 제도가 도입되면서 과목의 숫자가 점차 줄어들게 된다. 수능 초기부터 있었던 탐구영역에서의 과목간 통합형 문제가 97학년도 수능에서 특히 많았다. 그리하여 예컨대 <물리와 생물이 결합된 문제>, <물리, 화학, 지구과학이 결합된 문제>, <국사, 세계사, 세계지리가 결합된 문제> 등이 마구마구 출제되었다. 요즘처럼 자신이 선택한 과목만 치르는 시스템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탐구영역의 통합형 출제는 전면 선택체제로 전환된 [[7차 교육과정]] 하의 수능에서부터 사라지게 되었다.] 게다가 언어 영역에서는 '''대중문화와 사회의 문제점을 결합시킨 문제들이 본격적으로 나오고'''[* 언어 듣기 평가에서 '''[[정지용]]'''의 시 '''[[향수(시)]]'''를 [[리메이크]]한 가요를 출제했다.] , 외국어 영역 듣기평가가 17문제로 늘어났다.[* 95학년도 수능까지는 외국어 듣기문제가 8문제였고, 96학년도에서 10문제였다가 97학년도 수능부터 13학년도 수능까지는 17문제였으나, 14학년도에는 22문항으로 늘고 15학년도부터는 다시 17문제로 환원되었다.] ||계열||출제범위 ('''모두 필수'''[* 당시 수능엔 선택과목 제도가 없었다.])|| ||인문계||국어, 영어, 수학[* 일반수학 + 수학Ⅰ], 과학Ⅰ上[* 오늘날의 생명과학I보다는 수준 높고, 생명과학II보다는 수준 낮음], 과학Ⅰ下[* 오늘날의 지구과학I보다는 수준 높고, 지구과학II보다는 수준 낮음], 과학Ⅱ上[* 오늘날의 물리I보다는 수준이 높고, 물리II보다는 수준 낮음], 과학Ⅱ下[* 오늘날의 화학I보다는 수준이 높고, 화학II보다는 수준 낮음],[br]정치경제, 사회문화, 국사, 세계사, 한국지리, 세계지리, 국민윤리|| ||자연계||국어, 영어, 수학[* 일반수학 + 수학Ⅱ(수학Ⅰ 내용이 모두 포함된 교과서)], 과학Ⅰ上, 과학Ⅰ下, 과학Ⅱ上, 과학Ⅱ下[* 계열별 문제(자연계 전용)의 경우 과학Ⅱ는 물리, 화학과 겹치는 부분에서 출제되었다.],[br]물리, 화학[* 각각 오늘날의 물리II, 화학II와 비슷한 수준이며, 생물과 지구과학은 실시되지 않았다.], 정치경제, 국사, 세계사, 한국지리, 국민윤리|| ||예체능||국어, 영어, 수학[* 일반수학 + 수학Ⅰ], 과학Ⅰ上, 과학Ⅰ下, 과학Ⅱ上, 과학Ⅱ下,[br]정치경제, 국사, 세계사, 한국지리, 국민윤리|| 총 4교시로 구성되었다. ||교시||시험영역|| ||1교시||언어영역[* 오늘날의 국어영역이다.]|| ||2교시||수리 · 탐구영역(Ⅰ)[* 오늘날의 수학영역이다.]|| ||(점심)|| ||3교시||수리 · 탐구영역(Ⅱ)[* 오늘날의 과학탐구영역 + 사회탐구영역이다. 이 때에는 문/이과 모두 과학탐구 및 사회탐구에 응시해야 했으며, 과학탐구와 사회탐구가 수리탐구영역(Ⅱ)라는 이름 하에 한 영역으로 묶여 있었다.][* 다만 계열별로 출제 문항 수가 달랐다. 예를 들면 인문계(문과)는 사회탐구영역 60%에 과학탐구영역 40%, 자연계(이과)는 그 반대, 다만 예체능 계열은 문과와 마찬가지로 사회탐구 영역이 60%이지만 문과 전용과목인 사회문화와 세계 지리는 출제되지 않았다.]|| ||4교시||외국어영역[* 오늘날의 영어영역에 해당한다.]|| 여러 가지 수치가 그 비범함을 말해주는 수능이었다. '''400점 만점에 373.3점을 득점한 제주 [[대기고등학교|대기고]]의 서준호 학생이 자연계 전국 수석을 차지했으며,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부로 진학했다.'''[* 이후 물리학과를 전공 선택하고 서울대를 수석졸업한 뒤 MIT로 유학갔다.] 자연계 차석 (전국 차석)은 371.7점이었다. 인문계 수석은 370.2점, 여자 수석은 368.7점(재수생, 자연계 전국 5위), 예체능계 수석은 334.3점이었다. 총점 기준으로 전국 4%[* 이 시기에는 등급제가 없었으므로 전국 4%는 1등급 컷이 아니다. 성적표에는 오직 원점수만이 찍혀 나왔다. 참고로 등급제는 2002학년도부터 도입되었다.]가 원점수 400점 만점에 인문계 279점, 자연계 286점이었다. 1%선은 인문계 308점, 자연계 313점에서 형성되었다. 당시 입학 평균 성적이 가장 높았던 서울대 법학부의 입학 평균 성적은 330점 근방에서 형성되었다. 그리고 320점만 받아도 서울대의 웬만한 학과에 합격할 수 있는 점수였다.[* 이 수능을 제외하고 가장 어려운 수능인 2002 수능과 비교해 봤을 때, 2002 수능 원점수 320점으로는 서울대를 붙기는 커녕 지원자격(총점 1등급 - 전국 4%, 인문계 320점 초중반, 자연계 350점 근처)도 없어서 아예 원서를 쓸 수조차 없을 정도이다. 02수능은 97수능 앞에서는 그냥 애교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300점만 받아도 [[서울대]] 중하위권 학과를 갈 수 있었다. 280점이면 연고대 하위권, 240점만으로도 [[육군사관학교]]를 갔고, 반타작인 200점으로도 인서울은 거뜬히 갈 수 있었다. 과목별로 언어 영역의 경우에는 120점 만점에 97점 정도(100점 만점에 81점)가 상위 4%정도였으며(당시에는 등급의 개념이 없었다) 110점 이상(100점 만점으로 91.67점)이 전국에 487명(전 수험생의 0.06%, 자연계 217명, 인문계 269명, 예체능계 1명)밖에 없을 정도로 매우 어려웠다. 만점은 존재하지 않았고 116~118점인 수험생이 인문계 7명, 자연계 3명이었다. '''특히 수리 · 탐구영역(I)[* 이 당시에는 수리 · 탐구영역(I)이 현재의 [[수학]]이고, 수리 · 탐구영역(Ⅱ)는 [[과학탐구]]와 [[사회탐구]]가 합쳐진 과목이었다. 배점은 인문과 예체능계열은 과탐 48점, 사탐 72점. 자연계는 과탐 72점, 사탐 48점이였다.]에서는 계열 통합으로 80점 만점에 22.92점(전체 평균 100점 만점에 28.65점)이라는 극악의 수준을 자랑하였다.'''[* 때문에 수학을 반타작 정도만 해도 다른 과목을 잘 보면 상위권 대학에 진학 할 수 있었다.] 만약 80점 만점을 받았을 경우 표준점수식으로 계산하면 자연계 187점, 인문계 205점(!!!). 자연계에서 60점(100점 만점에 75점)이면 1% 수준이었다. 72점 이상(100점 만점에 90점 이상)은 자연계에서 205명(0.06%), 인문계에서 66명(0.02%)이었으며 예체능계에서 1명이었다. 78점 이상이 자연계 10명, 인문계 1명... 97학년도 수능의 수준에 초점을 맞춘 98수능 대비 [[모의고사]] 수리영역 문제들은 괴이한 발상을 요구하는데다가 지저분하기까지 해서 아직도 수리영역의 레전드로 남아 있다. 수리 · 탐구 영역(Ⅱ)도 매우 심각하여 120점 만점에 100점 이상(100점 만점에 83.33점)을 받은 수험생이 인문계 294명(0.07%), 자연계 468명(0.13%)이며 110점 이상은 인문계 5명, 자연계 13명밖에 없다. 인문계는 80점(1/3을 틀린 경우)을 받아도 상위 3.7%정도였고 자연계도 82점에 3.7%정도였다. 역시 만점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렇게 1997학년도 수능시험이 유별나게 어려웠던 것은 논술을 제외한 대학별 [[본고사]]가 완전히 폐지된 첫 해이기 때문에 수능이 본고사를 대체할 성격을 띄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공부]]를 아무리 하더라도 수능은 풀 수 없다"며 공부를 포기하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그 때문인지 98학년도 수능은 97학년도 수능에 비해 매우 쉽게 출제되었다(...) 직전 수능인 97학년도 수능이 너무 어려웠다는 반성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파일:external/hanidae.com/%BC%F6%B8%AE.jpg]] 또한 이 수능부터 수리탐구 영역(I)에서 주관식 단답형 문제가 최초로 출제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다만 지금의 주관식 문항과는 조금 달랐는데, 당시에는 25~30번까지가 주관식 문제였고, 25~29번은 한 자리 혹은 두 자리의 정수가 답이며, '''음수가 허용되어 음수이면 음수 부호 칸(Θ)에 따로 마킹을 해야 했다.'''[* 즉, 답이 될 수 있는 숫자는 -99~99까지의 정수로 총 199개.] 또한 30번 문제는 '''소수 둘째 자리까지 표시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29번 문제는 '''인문계 1.25%, 자연계 1.09%의 정답률'''의 극악의 수준을 자랑했다. 비공식적으로는 정답률이 '''0.08%'''라고 알려져 있으니 말 다했다.[* 당시 97학년도 수능을 치신 분의 경험담으로 말하자면 워낙 문제가 엄청 어려워서 뒷 페이지 볼 시간조차 없었다고 한다(...) 문제에 7개와 9개라는 조건이 주어져 있어 그냥 무턱대고 7+9=16 으로 답을 적어서 낸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고 전해진다...] 그 어렵다던 2017학년도 수학 가형 30번의 정답률도 '''EBSi 기준 3%'''였던 것을 감안하면 이 당시 문제 수준이 정말로 [[답이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다만 2017학년도 수학 가형 30번은 나머지 문제를 최대한 빠르게 풀면 어느 정도 풀 가능성이 이론상으로나마 있었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도 97학년도 수능 수리탐구영역(I) 29번이 더 어려웠다는 건 맞는 게, 애초에 '''정답률이 1%대로 떨어질 정도의 문제면 어차피 이 문제에 100분을 몰아줘도 못 푸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한번 망쳐도 큰 타격이 없는 전국연합학력평가나 (97년도에는 없었지만) 대수능 모의고사가 아닌 '''대학수학능력시험 본시험'''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현실적으로 다른 문제를 다 맞았는지도 보장할 수 없는데 다이아몬드급 멘탈이거나 그냥 포기한게 아닌 이상 한 문제만 계속 붙잡고 있을 수 있을 리가...] 기출 문제집을 풀다가 소수점까지 표시하란 문제가 튀어나오면 이 시절 나온 문항이란 이야기다. 이러한 주관식 답안 표시는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2005년 수능]] 이후 전 문항 '세 자리의 자연수'로 바뀌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