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학 (문단 편집) === 대한민국 === [[삼국시대]] 이래로 [[국학]], [[태학]], [[국자감]]과 같은 고등교육 기관들이 국가의 주도로 운영되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과거 시험]]이 도입되면서 [[성균관]]이 대학교 역할을 했지만 사실 성균관에 입학하려면 '''과거에 급제해야되는 만큼'''[* 소과에 합격해야 했다. 입학후 대과를 준비한다.] 현대 기준으로 보았을때 [[대학원]]에 더 가까웠다고 할수있다. 1:1로 매치하기는 쉽지 않은것. 어쨌든 구한말까지도 성균관이 최고 고등교육기관의 자리를 차지했지만 일제강점기에 들어가면서 성균관은 [[구제대학]]으로 인가받지는 못했기 때문에, 상당기간 동안 조선 내에서 제대로 된 [[종합대학]]이 존재하지 않았다. [[구제전문학교]]라는 고등교육기관이 있었지만 [[구제대학]]의 지위는 아니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민립대학설립운동]]이 펼쳐졌지만 이는 일제의 방해로 실패하고 말았고, 일제의 주도하에 한반도 최초의 제도적인 대학[* 여기서 말하는 대학은 제도(制度)상의 진짜 '''대학(大學)'''을 말한다. 강습소, 의숙, 학원, 전문학교 등을 전신으로 한다며 오랜 역사가 있다고 주장하는 곳은 얼마든지 있지만, 실제 법령을 기반으로 [[대학원]] 등의 연구과를 두고, [[학사]], [[박사]] 등의 [[학위]]를 부여받을 수 있는 고등교육기관, 즉 대학(大學)은 한반도에서 경성제국대학이 최초이다. 물론 국내를 떠나 아시아 최초라고 주장하는 [[성균관대학교]]도 이런 엄밀한 의미에서 근대적 교육기관으로써의 대학으로는 최초가 아니다.]인 [[경성제국대학]]이 설립되어서 광복 직전까지 유일한 대학의 자리를 차지했다. 대학교가 하나밖에 없었다는 것은 그 만큼 대학의 문턱이 너무나도 높았다는 얘기였고[* 일본인 학생들의 티오가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들의 비율이 일본인이 높았기 때문에 그렇다. 일본식 교육체계에서 대학은 입시는 기본적으로 [[구제고등학교]] 졸업을 요구했는데 당시 조선에는 [[고등보통학교]]만 있을 뿐, 구제고등학교가 없었으므로 자연스레 대학 티오의 여석은 일본 출신 일본인의 차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조선총독부]]는 애써 세운 '조선반도 최고의 대학'이 일본에서 몰려온 일본인 고교 졸업자들이 죄다 차지해서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일을 막기 위해 [[예과]]를 설치해 조선인들의 입학을 늘리려 했다. 예과를 설치하면 [[고등보통학교]] 졸업자들도 대학 진학요건에 맞춰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조선인들이 [[제국대학]]인 [[경성제국대학]]에 들어가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돈]]이 있더라도 실력이 부족하면 경성제대에 들어갈 수 없어 일본에 있는 [[사립대학]]에 진학하는 조선인도 많았다[* 오죽하면 해방 때까지 경성제국대학 전체 졸업자보다 일본 대학 졸업 조선인이 더 많을 정도였다]. 경성제국대학을 비롯한 [[제국대학]]의 경우, 원칙적으로는 남자만 입학이 가능했으나 실제로는 선과 제도를 통해 소수나마 여학생을 받았다. [[모윤숙]]이 경성제국대학에 입학한 여학생 중 가장 유명하다. 해방 이후로 [[구제전문학교]]들이 대학교로 승격하고, [[경성제대]] 해체 후 재 설립 과정을 거쳐 [[서울대학교]]가 되는 등 종합대학교의 수가 급속히 증가하여 대학교육은 이전보다 양적인 부분에 있어서 크게 성장했지만 곧이어 분단과 전쟁의 타격으로 인해 1950년대에는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았다. 그래도 전쟁 중에도 열악하게나마 [[전시연합대학]]으로 임시수도 부산에서 수업을 이어가고, 경성에만 대학이 있던 일제강점기와 달리 전국 주요 도시에 거점 국립대와 명문 사학이 자리잡으며 문맹퇴치 운동 등 교육열이 강하게 불어온 덕택에 대학생들이 매년 급속하게 늘어나며 대학교육은 빠르게 성장해나갔다. 그러나 대학이 성장한다 한들 이때까지도 자식을 대학에 보내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해방 이후와 1950년대에 초등교육의 대중화가 간신히 이루어졌고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뒤인 1970년대가 되어서야 중등교육이 보편화 되었다. 그래서 대학진학률이 매년 늘어나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은 전체 학생가운데서 소수에 불과했고,[* 게다가 이 시기에는 아직 [[남존여비]] 분위기가 강해서, 여학생의 대학 진학률이 남학생에 비해 상당히 낮았다. 1980년대 당시 [[경영학과]], [[행정학과]], [[공과대학]]의 학과 같은 곳에 여학생이 사실상 전무했던 것도 그 이유다. 그나마 딸을 대학에 보내더라도, 남녀공학보다는 [[여대]]를 선호했다. 당시 [[이화여대]]와 [[숙명여대]]의 위상은 지금보다 훨씬 높았다.] 이러한 상황은 1990년대 초중반까지도 이어져서 대학 졸업장이 곧 지적 혹은 사회적 엘리트의 인증과 동일시되기도 했다.[* 흔히 386세대가 대학 쉽게 가서 꿀빨았다는 얘기도 그 세대 내에서 최소 상위 20%, 즉 2010년대로 치면 최소 [[지거국]]은 간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일이다. 애초에 386세대가 대학만 졸업하면 대기업에 쉽게 취직할 수 있었던 이유, 그리고 공무원 취직이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되었던 이유도 대졸자들이 적었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가난한 농촌에서는 단지 자식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 농사에 필수적인 소까지 팔아 가면서 학비를 대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그리하여 대학은 상아탑의 [[현지화]] 버전인 우골(牛骨)탑이라는 씁쓸한 별명까지 붙었다. 이 당시 대학교에서도 교복을 입었는데 1980년대 초반에 폐지되었지만[* 이 당시 중고등학교에서도 교복이 없어졌지만, 얼마 못 가 80년대 후반부터 교복을 부활한 중고등학교들이 생겨나 90년대 초반에 대다수의 중고등학교에서 부활하였다.] 이 당시 대학생 교복을 입는다는 것 자체가 엘리트 인증이었던지라 아쉬워하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그 시절에는 대학 졸업생을 '학사님'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1990년대 김영삼 정부에 이르러 [[김영삼/평가#부실대학 양산|대학설립준칙주의]]에 의해 대학 정원 자율화와 대학설립 규제 완화가 진행됐는데, 이로 인해 대학의 숫자는 넘쳐날 수준으로 늘어나고 대학생의 숫자는 몇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질 좋은 일자리의 숫자는 이에 수반해 증가하지 않은 탓에 취업률은 점점 떨어져갔다.[* 사실 3저 호황이나 1990년대에 일자리가 많이 남아돈 건 사실이지만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은 당대에도 빡셌고,''' 나머지 일자리의 태반이 [[블랙기업]] 일자리인 경우가 많았다. 다만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격차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시절이었고 평생직장 개념이 있었기 때문에 중소기업에 취직해도 어느 정도 규모가 있으면 큰 잘못이나 실수를 하지 않는 이상 오래갈수있다는 장점이 있었을 뿐이다. 물론 산업재해가 빈번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 80~90년대라고 사람을 더 귀중하게 여긴 것은 아니었지만 챙겨주는 개념으로 평생직장을 보장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대학에 다녀야 상대적으로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나 현실은 강했고, 이 같은 풍조가 결국 학력 [[인플레]]를 일으켜서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685947|고등학생 84%가 대학에 들어가는 상황까지 이른다.]] 이제 대학교 자체가 통과의례로 변질되었기 때문에, 그저 대학을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지경이 되었다. 심지어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421&aid=0001072586|'''대졸자 5명 중 1명은 고졸자 평균 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다'''는 연구 결과]]도 존재한다. 종합하자면, 2018년 기준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대학 졸업장 자체'''는 거의 의미가 없는 상황이며, '''어느 대학'''의 졸업장인가가 중요한 상황이다. 상위권 대학 졸업장은 현재에도 가치가 있지만 하위권 대학 졸업장은 거의 '''대졸 인증''' 이상의 의미는 없는 상황. 다만 진로에 따라 학사 학위 혹은 학점 이수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경우에는 하위권이라하더라도 의미가 있기는 하다. 예를 들면 [[육군3사관학교]]로 편입하려는 사람들은 학벌이 의미가 없다. 좋은 학벌이면 애초에 [[학생군사교육단|ROTC]]나 학사장교로 빠진다. 그리고 이 대학설립준칙주의로 인해 [[이승만 정부]]까지만 하더라도 100% 학문 연구의 장이었던 전국의 모든 대학들이 너무 과잉공급되면서 대기업들 역시 정말 단순노무직이 아닌 이상 입사자격을 대졸로 인상하는 바람에 대학은 말 그대로 취업사관학교가 되어 '''단위만 커진 레알슐레'''[* 독일의 실업학교를 말한다.]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마디로 대학교 판정을 받는 실업계 고등학교. [[2020년]] 기준으로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70.4%로 떨어졌다. 다만 대학 진학을 선택하지 않은 30% 정도의 학생들이 정말 고졸 취업을 원하는지 아니면 재수, 삼수를 해서라도 대학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는지는 의문. 삼수를 해서라도 대학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다면 무조건 인서울이다. 지방대가 점점 영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기에 "군대 갔다왔더니 학교가 없어졌어요"가 되느니 차라리 몇 년 꿇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진학률이 낮아졌다고 고졸 학생들이 모두 고졸로 취업하는 건 아니다. 한국의 대학진학률은 2008년 83.8%로 정점을 찍고 점차 내려오는 추세로, 특히 4년제 대학 진학률은 2018년 기준 47.4%[* [[https://kess.kedi.re.kr/publ/view?survSeq=2018&publSeq=2&menuSeq=0|#]]]로, 동시기 일본의 4년제 대학 진학률인 49.7%[* [[https://www.mext.go.jp/b_menu/toukei/chousa01/kihon/kekka/k_detail/1407849.htm|#]]]보다도 낮아졌다. 물론 각 군 사관학교로 가면 평생 직업군인, 그것도 고급장교로서 보장이 되어 있지만 군장학생은 [[현시창]]. 최하 6년은 군복무해야 하는데 이 기간을 다 채우고 전역하면 기본 30살이 넘어간다. '''문제는 이런 식이면 당연히 군 [[장교]]의 질적저하가 심각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악순환, 결국 학자금 대출을 받아 등록금을 내고, 취업하기 전부터 빚더미에 짓눌리게 되는 것이 대부분의 현실이다. 상황이 이러니 대학 평가를 통해 [[부실대학]]을 가려내어 지원을 끊고 폐교를 유도하거나 극단적으로는 강제적으로라도 폐교를 실시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조차도 지역 경제에 끼치는 영향 등 복합적인 문제로 인해 쉽사리 손을 대기가 어려운 상태이다. 대학에 대한 수요가 너무 높아서 등록금은 제멋대로 올라가고, 올라가도 수요가 여전하니까 더 올라가고, 그 중에서도 잘 나가는 대학은 더 올리고, 그러니까 다른 대학들도 덩달아서 올리고, 그것 때문에 대학 차리면 돈 좀 된다고 생각하는 지방 토호(土豪)들이 마구잡이로 대학을 신설하고, 정부는 정부대로 대학 설립인가를 너무 쉽게 내줘서 대학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그 토호들도 등록금 인상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악순환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교육부|교육부]]는 각 대학별 등록금 지출내용에 대한 보고서를 전혀 받지 않아 각 대학교는 등록금을 필요 이상의 돈을 받고 계속 재정을 축적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부실대학의 경우 그렇게 축적된 재정이 이사장 개인의 사유 재산화 되어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2021학년도 수능]]부터는 대학입학가능자원이 대학 정원보다 더 '''적어지는''' 현상이 일어난다. 게다가 2021년에는 '''8만 명,''' 2023년이 되면 대학에 사람이 '''10만 명'''이 부족해진다고 한다. 하위권 대학들의 대거 통폐합•폐교 사태가 줄을 이을 것이다. 게다가 한국의 출생률은 해를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계속 적어지고 있는 추세인데[* 2013, 14, 15, 16년 출생아는 겨우 '''40만''' 명대, 한술 더 떠서 17년, 18년 출생아는 '''30만''' 명대이며, 19년 출생아도 30만 명 턱걸이 수준이다. 그래도 2001년 이전까지는 계속 60만 명 이상을 유지했는데 최근엔 출생아 수가 저렇다. 그리고 결국 20년 출생아는 '''[[https://m.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108252142005#c2b|20만 명대 후반]]'''(272,300명)으로 30만 벽도 무너졌다.] 이렇게 된다면 출생률이 높아진다고 해도 20년간의 시차가 있기 때문에 전국에 있는 [[부실대학]] 등의 수준 미달의 대학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존폐 위기에 시달리게 될 것으로 추측된다. 이것 때문에 [[지방대]]의 미래는 점점 암울해져 가고 심하면 서울 소재 대학교에도 영향이 간다. 이로 인해 전국적으로 대학교에는 외국인들이 많아지고 있다. 게다가 [[사립대학]]의 등록금은 가히 살인적인데, [[국립대학]]은 보통 등록금이 학기당 100~250만 원 정도로 그치는 반면 사립대학은 평균적으로 450~550만 원 정도의 등록금이 형성되어 있다. 쓰레기 같은 [[지잡대]] 중에는 심지어 자기 학교법인 및 학교법인 이사진들 배를 채우기 위해서 학기당 700 이상 부르는 곳도 있다. 국내 대학들의 경우 등록금으로 받아 먹는 건 엄청난 반면, 챙겨주는 건 그다지 많지 않다. 그나마 국공립대학은 받아 먹는 것은 상대적으로 적다. 그래서 의무교육을 받을 때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라는 걸 배우게 되는 것이다. 차라리 각 대학의 학교법인 이사장들이 많이 받아 쳐먹는 걸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그것도 모자라서 아주 밑도 끝도 없는 인상으로 자기들 욕심이나 채워 먹으려 하고 있다. 집안에 돈이 남아 돌아서 등록금이 비싸든 말든, 등록금을 올리든 말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모르겠는데, 꼭 저소득층이 아니라도 이 정도의 비싼 등록금은 가계에 큰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일부 고등학생들은 아예 각종 사관학교처럼 국비로 학업을 이수할 수 있는 특수목적 대학에 지원하기도 한다. 심지어 일반대학에 진학하더라도 등록금 문제를 고민하다가 결국 [[학사장교|군장학생]]을 지원하는 학생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그리고 정치권은 등록금 문제의 심각함을 인식하고 소위 반값등록금 등의 공약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공약은 당선되고 나면 나몰라라 한다. 이처럼 수급의 현저한 불균형으로 말미암은 대한민국 대학의 질적 수준 저하 현상은 심각할 대로 심각해진 상황이고, 그리하여 대한민국에서 대학이 [[신성]]한 학문의 중심지라는 말은 이미 옛말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대학이 너무 많아짐에 따라 너무 대학 진학률이 높아져서 사실상 상위권 대학의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지적 능력이 고졸과 차이가 없어지면서 대학의 의미가 퇴색된 것이다. 사실 대학의 다수를 차지하는 대학 같지도 않은 지잡대들이 자진 혹은 정부 차원에서 폐교시키거나 해서 대학진학률을 대폭 낮춰야 한다는 여론도 많은 편이다. 지금의 대학은 너무 많다는 것이다. 대학이 너무 많아지고 사회 분위기가 개나소나 대학 가는 분위기라서 공부에 재능이 없는 다수의 학생들까지 무비판적으로 대학 진학을 하고 있는데, 지방의 하위권 대학에 진학해봤자 등록금과 시간만 낭비하는 인생적 비효율과 대졸이라는 이유로 눈만 높아져서 사무직만을 선호하고 이로 인해서 단순 노동시장 공급이 정체되는 노동시장 구조가 왜곡되는 사회적 비효율의 문제가 된다고 한다. 아예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이를 은근히 돌려 '대학 졸업생들이 눈을 낮출 필요가 있다.'라며 아예 [[마이스터 고등학교]]라는 과정을 만들었다. 대학의 과잉 진학률은 상당한 국가적 차원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막상 강제로 대학 정원을 제한시키고 축소시키자니 '''바라던 대로 고졸 노동자 수가 늘어나고 사회생활 시작 평균 연령이 낮아지는 게 아니라 도리어 대학생과 대학의 과잉 진학보다도 더 비생산적이고 국가적 차원의 문제가 되는 고시낭인의 대량 양산 시나리오'''가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게 문제고, 그래서 아직 미적대는 부분도 있다. 실제 공무원 시험에서 어떤 꼴이 났는지 보면 그 실태를 그대로 수능시험으로 옮기는 꼴이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로 따지면 [[상단]] 말단 구성원(짐꾼)이나 [[머슴]]같이 그냥 일할 수 있는 분야조차 [[과거]]에 응시해서 합격해야 하는 수준의 심각한 상황이 도래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태의 근본적인 이유는 직업 환경에서 한국사회는 생산직 근무환경에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즉, 고졸로 취업하면 대다수의 경우 연봉도 대졸에 비해 심히 낮고, 승진도 늦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로 고졸 취업으로 경력을 쌓거나 혹은 기술을 배운다는 선택을 하는 것이 대한민국에서는 상당히 불리하다는 것. 애초에 임금, 복리후생, 사회적 위치 자체가 대한민국에서 고졸은 심히 낮다. 해외 국가라고 해서 고졸과 대졸이 동일 대접을 받는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해외에서는 최소한 고졸도 열심히 노력한다면 대졸과 대우나 임금 등의 면에서 일정 정도는 따라잡을 수 있다. 반면 국내에서 고졸로 성공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괜히 뉴스나 신문, 방송 프로그램에서 고졸 성공 신화 등의 제목으로 성공한 고졸들을 언론에 등장시키겠는가? 정부에서는 자꾸 대학 외에 다른 길도 있다고는 하지만 다른 길이 대학에 비해 상당한 차이로 노동환경[* 아직도 평균 근로시간은 생산직이 눈에 띄게 더 긴 편이며, 그렇다고 일부 대기업 공장이나 사실상 전문직으로 취급해야 하는 최고위급 엔지니어를 제외하면 사무직에 비해 그렇게 페이가 쎄지도 않다. 주 52시간 제한도 일부 예외직종이라 해서 생산직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경우도 있고. 또한 안전 문제도 심각하다. 한국의 산업안전 실태나 산재발생율을 따지면 OECD 평균을 한참 뚫어버린다. '''우스갯소리로 공장 가서 1년 일하면 동료 중 절반이 산재처리 후 해고되어 물갈이된다는 낭설과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접합/봉합 시술/수술 관련한 의학기술이 뛰어난 편인 이유가 60년대부터 지금까지 워낙 많은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일하다 기계에 손가락을 잘라먹어서라는 낭설이 있을까.''']/복리후생/고용안정성[* 여기에는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의 영향도 포함된다.]/평균임금에 있어 불리하기 때문에 대학 진학률이 매우 높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쉽게 비유하자면, 잘 닦인 왕복 16차선 포장도로가 갑자기 왕복 8차선 포장도로로 줄어들고 나머지 8차선은 비포장도로가 된다면 당연히 트래픽은 왕복 8차선 도로로 몰리기 마련이다. 8차선 도로를 6, 4차선으로 줄인다고 해도 여전히 사회적 시스템으로는 인생 초반부의 여러 길 중에서 주간선이 될 수밖에 없는 대학 진학으로 트래픽이 쏠릴 수밖에는 없다.] 대학은 사회에서 연구, 교육, 사회봉사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한다. 그리고 이 여러 활동 중에서 가장 중시되는 것은 연구이다. 이것이 훼손되면 대학의 존재 이유가 흔들리는 일이 되기에, 이 '대학으로서의 주 정체성'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졸업의 요건은 다른 국가에 비해 널널한 편이다. 예전에는 [[논문]] 제출이 필수였던 경우가 많았지만 사실 학사 학위를 위해서는 논문이 의무라는 조항은 아무 데도 없다. 게다가 학부 수준에서는 교과서나 인터넷에서 주워다 적당히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국 논문 제출이 학생도, 교수도 남는 것 없이 엄청 귀찮은 일이 되어 버린 것. 그리고 갈수록 학문보다는 취업을 중시하는 분위기 때문에 최근에는 대부분의 학교가 어학성적 및 인증제 같은 걸로 대체하는 편. 특히 [[인문대]]에서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면 졸업요건을 채웠다고 쳐주는 학교가 많다.[* 비록 공무원 시험 외에도 기업체 취직만 해서 취직계를 제출하면 졸업요건을 면제해주는 학교도 많다.] 학부생 졸업 논문 내용이 허접하고, 연구 실력이 떨어지는 학생은 연구+수업+시험 채점에 교수들이 정신이 없기 때문에, 유급시키고 다시 논문을 쓰게 하기보다는 졸업을 시킨다. 반대로 졸업 논문을 잘 썼다면 당연히 반려시킬 이유가 없기 때문에 A로 졸업시키고 대학원 진학을 권유한다. 즉, '진짜 이건 대학생 수준이 아니다' 싶은 논문이 아니라면,[* 인용처가 네이버 지식인이라든가, 인용 형식이 엉망이고, 잘못 인용했다거나, 위키피디아에서 그냥 베낀 수준이 아닌 이상에야 이렇게 써도 귀찮다고 통과시키는 대학도 있다.] 혹은 아주 아무것도 쓰지 않은게 아니라면, 졸업은 시킨다는 것이다. 한국은 교수 1인당 학생 수가 많은 편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졸업 논문을 심사하는 학교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대학을 4년 만에 졸업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노력이 필요하다. 휴학은 당연히 안 되는 것이고, 낙제, 재수강도 최소화가 필요하고, 수강신청도 최대한 잘 해야 된다. 특히 남성의 경우는 군대 입영이 있기 때문에 입영 시기와 복학 시기를 잘 조율해야 한다. 물론 수업연한 내에 졸업하고 싶다면 대학교 재학 사유로 인한 입영연기[* 2년제 전문대는 만 22세, 3년제 전문대는 만 23세, 일반대학의 4년제 및 5년제 학과는 만 24세, 6년제는 만 26세가 되는 해의 12월 31일까지 대학교 재학 사유로 인한 입영연기가 가능하다.(참고로 대학원에 다녀도 연기가 가능하며, 대부분의 석사과정은 만 26세이나, 수업연한이 2년을 초과하는 경우는 만 27세에서 만 28세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그리고 박사과정은 만 28세까지 연기 사용이 가능하다.) 물론 재학 도중에 퇴학, 제적, 자퇴 등의 처분을 당하거나 졸업해서 학교에 더 이상 남아있을 수 없게 되면 대학교/대학원 재학 사유로 인한 입영연기가 소멸되며, 새로운 입영연기 사유가 생기지 않은 이상 재학생입영연기 소멸 사유가 발생한 날의 다음날부터 병무청이 현역병 입영이나 사회복무요원 소집을 위한 통지서를 발부할 수 있다.(다만 보충역 판정자의 경우, 만 3년 동안의 사회복무요원 소집대기기간 동안 소집연기사유가 없는 상태에서 소집통지서가 나오지 않는다면 병무청의 심사를 통하여 전시근로역에 편입할 수 있다. 허나 정신과 사유 4급이 아닌 이상 소집순위가 3순위 이상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장기대기 판정을 받기가 매우 힘들어진다. 따라서 졸업 이후 2~6개월 이내에 소집통지서가 날아오며, 적체가 심한 지역도 1년 이내로 날아올 확률이 매우 높은지라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낫다. 특히 사회복무요원 적체가 풀릴 것으로 예상하는 2020년대 중반 이후에는 장기대기는 커넝 졸업하기 한참 전에 선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를 한 다음에 졸업하고 갔다오면 되긴 하지만[* 다만 병역판정검사장에서 실시하는 신체검사에서 1~3급을 받은 현역병 입영대상자들과 4~5급 판정을 받았다가 심신 상태가 크게 호전된 후에 재검을 받아 3급 이상으로 올라간 병역의무 대상자들이 졸업 이후에 부사관이나 장교, 준사관(육군 항공준사관만 가능)으로 임관하여 병역의무를 수행하고 싶거나 아예 양성과정을 거치고 있다면 4년 만에 졸업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사관생도들은 중병에 걸리지 않는 이상 4년을 채우고 졸업해야 하며, 만일 이를 어기면 퇴교는 물론이고 장교 임관 자격도 영원히 박탈당한다. 또한 이런 식으로 퇴교한 자들은 5~6급에 해당하는 사유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현역병/부사관으로 입대하거나 [[보충역]]으로 병역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다만 학군사관후보생은 조기졸업이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으며, 실제로 그러한 사례가 있다. 허나 임관 이전까지는 과거 재학했던 학교의 학군단이 주관하는 군사훈련은 다 받아야 한다.][* 그리고 대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상황에서 4급을 받아 사회복무요원 소집 대상자가 되었다면 재학생입영연기가 가능한 연령이 끝나는 해의 12월 31일까지 재학생입영연기가 가능하다. 즉, 본인이 따로 휴학이나 졸업유예를 하지 않는다면 정해진 수업연한 내에 졸업할 수 있다. 또한 2015년부터 사회복무요원 소집적체가 본격화되면서 정해진 TО보다 소집대기자가 과도하게 많은 지역에 사는 이들과 정신질환과 수형 사유(정확히는 6개월 이상~18개월 미만의 징역형 혹은 1년 이상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자만 해당된다. 다만 병역법/도로교통법/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자는 해당사항이 없다.)로 보충역에 편입된 5순위 대기자의 경우는 사회복무요원 선발경쟁에서 매우 불리한 위치에 있는지라 대학교를 다니는 기간 내내 사회복무요원이 되기 힘들다. 이런 경우에는 본인이 휴학이나 졸업유예를 하지 않는 이상 원치 않게 4년만에 졸업할 확률이 높으며(참고로 대학생이 현역병으로 입대한 이후, 훈련소/신교대 임시입소주에서 정신과 사유로 귀가조치 된 이후에 4급을 받거나 현역부적격 심의에서 4급을 받고 군문을 떠난 자가 우선소집원을 신청하지 않거나 기각된 경우라면 사회복무요원 소집순위에서 제일 낮은 5순위에 포함되기는 하나, 이미 군휴학을 썼기 때문에 순수한 미필 상태에서 4급을 받은 경우와는 많이 다른지라 논외.), 실제 사례도 적잖이 존재한다. 또한 공무를 수행 중에 전사/순직하거나 부상을 입고 상이 1~6급을 받은 군인이나 경찰의 아들/형제가 미필일 경우, 1명에 한하여 사회복무요원으로 6개월 동안만 복무하면 병역의무를 마치는 것이 가능하다. 따라서 여기에 해당한다면 휴학하지 않고 대학을 졸업한 다음에 복무하는 것도 고려해볼만 하다. 만약 사회복무요원 소집대기자로 남아 있는 기간이 너무 길어질 것 같다면 병력특례를 포함한 일반적인 대체복무 과정에 지원해서 합격하거나 슈퍼 굳건이(현 슈퍼 힘찬이) 제도를 통해 질병을 완치해서 3급 이상으로 급수를 올리고 현역 입대를 하는 방법 뿐이나, 둘 다 매우 어렵다. 특히 슈퍼 굳건이 제도의 경우에는 현대 의술로 확실한 완치가 가능한 시력과 체중 사유 4급 판정자만 대상인데다가 해당 제도를 통해서 현역병 입영대상자가 되는 것보다 사회복무요원 소집대기자로 남는 것이 훨씬 좋기 때문에 실제 이용 사례가 저조하다.][* 또한 2020년 하반기에 신설된 [[대체복무요원]]의 경우, 지원이 가능한 대상자가 매우 제한적인데다가 심사가 까다로우며, 복무기간도 3년에 달하기 때문에 병역의무 수행 사유로는 휴학기간을 2년밖에 주지 않는 대부분의 한국 대학교 현실 때문에 재학 도중에 갔다오는 것은 힘들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대상자 자신이 마음만 먹는다면 4년 이내에 졸업하고 복무하는 것이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본인이 대학교 재학 도중에 대체복무요원을 희망할 경우, 학과 측을 잘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체복무요원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시기는 2020년 10월부터인지라 아직 사회적 인식이 미약한데다 일체의 군사훈련을 거부하는 이들만 지원이 가능한 특성으로 인해 사회에서 부정적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 특히 복무기간이 긴 [[산업기능요원]]으로 선발된 학생이 드물거나 없을 가능성이 높은 인문계나 예체능 학과라면 더더욱. 그리고 합법적인 [[병역특례]]과정을 포함한 일반적인 대체복무를 희망할 경우, [[산업기능요원]]과 [[예술체육요원]]을 제외한 나머지 과정은 모두 학사 혹은 석사 학위 이상을 갖춘 자만 편입할 수 있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이를 노린다면 휴학을 쓰지 않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병역특례제도 하나만 믿고 대학생이나 대학원생 생활을 한다면 나중에 크게 후회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본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병력특례에 선발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면 가능한 한 학부 저학년 과정에 재적중일 때 현역병이나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는 것이 좋으며, 그것이 싫다면 학석사 학위 취득 이후에 단기장교로 복무해서 병역의무를 해결하는 것이 훨씬 낫다.(특히 자신의 전공이나 희망하는 직업과 연관된 군사특기나 사회복무요원 TO가 있다면 거기에 지원해보는 것이 좋다. 해당 보직에 선발될 가능성이 다른 비전공자들보다 훨씬 높은데다가 추후에 경력으로 인정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기장교로 복무하면 현역병~하급 부사관/사회복무요원일 또래들보다 훨씬 좋은 대우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상당한 인맥까지 챙길 수 있다.] 5, 6급이면 병역도 해당이 없다.[* 참고로 5급의 경우, 대학교 재학하고 있다면 [[민방위훈련]]이 연기된다. 또한 중증 장애인으로 등록된 이후에도 5급이 유지되었다면 민방위훈련 자체가 면제된다. 따라서 평시 상황에서는 아무런 병역의무도 지지 않는다.(단, 이들은 전시에는 후방지원 분야에 동원되는 대상으로 분류되어 있다.) 다만 추후에 중증 장애인 등록이 취소된 상태에서 5급이 유지된다면 민방위훈련 참석 의무가 생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대학생이 [[교복]]을 입었다고 한다. 또한 1980년대 까지만 해도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체력장도 통과해야했다. 당시 대한민국 대학은 공부를 아주 빡세게 시켰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체력이 따라주지 않으면 버티기 어려웠고 당시 인서울 대학만 보더라도 공부를 서울대 못지않게 아주 많이 시키고 학점도 짜게 줬기 때문에 대학공부를 하기 위해서 체력은 그야말로 필수였다. 하지만 이랬던 대학 문화가 [[1997년 외환 위기|1997년 IMF경제위기]] 시점에서 변하기 시작했다. 경제 위기가 들이닥치자 많은 학생들이 졸업 후 취업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교수들이 학점이라도 잘 받으라고 학생들한테 여유를 배풀어주었기 때문. 학점 인플레이션도 이때부터 생겨났다. 그리고 명실상부 이런 문화가 현재 2023년에도 많이 이어지는 중이다. [[1978년]]생은 21세기 첫 대학 졸업생이고[* 군휴학을 한 남학생은 1975~1976년생이 21세기 첫 대학 졸업생이 된다.] [[1982년]]생은 21세기 첫 대학 입학생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