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우그룹 (문단 편집) === 몰락기 === 이 당시 김우중 회장은 그의 공격적인 경영 때문에 [[칭기즈 칸|킴키즈 칸]]이란 별명이 붙었다. 공격적이고 팽창적인 진출과 경영 방식도 그렇지만, [[중국]]-[[몽골]]-[[인도]]-[[우즈베키스탄]]-[[루마니아]]-[[폴란드]]로 이어진 자동차 공장 확장루트도 흡사했다. 하지만 얄궂게도 4년 뒤 [[몽골 제국]]처럼 사라졌다. [[http://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32248|관련 기사]] 실제 당시 대우의 대외 확장 방식은 체제 전환기를 맞아 투자 유입을 갈망하던 구 공산권 국가의 다급함을 이용해 있는 대로 금융 지원을 받아낸 것으로, 당시에는 적은 투자로 큰 사업을 한다고 호언했으나 결국 도박에 불과했다. 이와 같이 극단적인 레버리징에 의한 과잉 투자의 몰락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도 맥락이 닿는다. "만들어라, 그러면 팔릴 것이다"라는 야심만만한 발언은 정작 대우자동차가 주문물량을 소화하지도 못하면서 부채로 변했다. GM과 결별 이후 사들인 뮌헨 연구소, [[영국]]의 워딩 연구소[* 1976년에 설립된 영국 톰 월킨쇼 레이싱 소속의 연구소로, [[마티즈]]와 [[누비라]]의 아이디어를 낸 곳이다.]와 폴란드의 [[FSO]][* 자사의 승합차인 [[대우 루블린|루블린]]을 한국에 수입할 계획이었던 자동차 회사.]등도 모두 [[2000년]] 전에 모기업과 비슷한 운명을 맞았다. [[1992년]]까지 긴밀히 협력해온 [[제너럴 모터스]]와 [[폴란드]]에서 대우자동차가 정면충돌한 것도 이 시절인 [[1995년]]. 결국 [[M&A]] 다툼에선 승리했지만 이후 고부채로 [[포드(자동차)|포드]]에게도 버림받고 결국 GM에 팔린건 유명한 이야기다. [[케이블 방송]] 초창기에는 [[OCN|DCN]] 같은 케이블 채널도 운영했으나, [[1997년 외환 위기]]와 맞물려 갑작스럽게 어려워진 경영여건을 극복하지 못하고[* 이 와중에도 [[쌍용자동차]] 인수를 그대로 질렀다.] 2년 뒤인 [[1999년]] [[동양그룹]]에 매각되었다. 이후 DCN은 채널명도 OCN으로 개명하고 2001년 [[오리온그룹]] 분가 때 합류했다가 2009년 [[CJ그룹|CJ]]로 매각되어 2013년 12월, [[CJ E&M]]에 흡수 합병되었다. 1995년 우진필림으로부터 복합상영관 '씨네하우스'를 인수해 [[영화관]] 사업을 시작했고, '메가플렉스'란 이름으로 멀티플렉스 영화관 체인사업을 준비해 오다가 개장을 못 해보고, 결국 1999년에 (주)대우가 준비하던 영화관 사업은 동양그룹에 인수됐다. 그러다가 2001년에 동양제과 등과 함께 오리온그룹으로 분리됐다. 그러나 오리온그룹이 쇼박스를 제외한 미디어 계열사를 정리하면서 [[메가박스]]는 해외 자본에 매각되었다가 현재는 [[중앙그룹]] 계열에 인수됐다. 초기에 위태위태 할 때만 해도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의 협력 관계를 바탕으로 대마불사를 외쳤다. 의외로 [[IMF]] 직후 대우는 친정부 그룹의 선두에 있었다. 그래서 엄청난 위기 속에도 1998년부터 구조조정을 통해 계열사를 정리해 다운사이징을 했고, 1999년 7월에는 잠시 3조 원의 빚을 사재출연과 경영권 포기 등을 통해 위기를 잠시 넘기기도 했다. 하지만 [[대우자동차]]를 살리려고 마지막 순간에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을 하려고 한게 [[SM5]] 생산문제와 [[부산광역시|부산]]의 하청업체 문제 등으로 실패로 끝나면서[* 결국 삼성자동차는 2000년 [[르노]]에 인수되었고 현재는 [[르노코리아자동차]]로 존속중이다.] 엄청난 빚을 지게 되어 8월 [[워크아웃]]과 10월 김 회장의 중국 도피, 12월의 임원단 전원 사퇴로 몰락했다. [[1997년 외환 위기]]가 아니었다면 [[인천광역시]] [[연수구]]에 초고층 [[마천루]]를 지어 본사를 이전할 계획이었다. 대우그룹의 주요 계열사인 대우자동차, 대우중공업, 대우전자 등의 공장, 연구소들이 모두 인천에 위치해 있었고 대우그룹 인천 이전 계획과 연계한 것이 오늘날의 [[송도국제도시]]이고, 이곳에 건설할 예정인 [[151 인천타워]]가 이 마천루 계획의 후신격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있다.[* 물론 둘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성은 전혀 없다. 대우가 지으려던 마천루는 오직 계열사들이 사용할 업무용이었을테고 인천타워는 업무와 호텔, 아파트까지 결합된 복합시설이다. 쉽게 생각하자면 [[글로벌비즈니스센터]]와 [[롯데월드타워]]의 차이라고 보면 된다.] 참고로 그룹 존속 시절 대우증권과 오리온전기를 빼고 해체될 때까지 회사의 역사책인 사사(社史)를 단 한 번도 발간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1987년과 1997년 두 차례 사사 발간 시도가 있었으나 노사분규와 IMF 사태로 각각 이루지 못했으며, 30년사 내용은 대우세계경영연구회 홈페이지에 있으나 회원만 공개중이다. 대우그룹의 본산이던 (주)대우는 2000년 12월 상사부문을 대우인터내셔널(현 [[포스코인터내셔널]])로, 건설부문을 [[대우건설]]로 분할시키고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는 [[페이퍼컴퍼니]]로 남게 되었다. 2001년 5월 23일 대우중공업과 동시에 [[상장폐지]][* 원래는 동년 12월 27일 상장폐지 예정이였으나 사업 부문을 모두 별개의 회사로 분할하고 남은 영업활동이 없는 페이퍼컴퍼니라는 이유로 증권거래소에서 빠른 상장폐지 조치를 내렸다. 대우중공업도 마찬가지다.] 이후, 2006년 3월 말 대우 계열 구조조정협약이 만료되고, 같은 해 5월 25일 법원에 [[파산]]신청을 내고 청산 절차에 들어갔다. [[https://www.khan.co.kr/economy/market-trend/article/200605281809231|#]][[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1&oid=011&aid=0000133979|#]] 이로써 대우의 '세계경영' 신화는 역사속으로 완전히 사라졌으며, 김우중 前 대우그룹 회장은 서울고법으로부터 징역 8년 6개월에 추징금 17조 원을 선고 받기에 이른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1&oid=143&aid=0000043706|#]]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