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우그룹 (문단 편집) === 태동기 === [[1967년]] 3월, 한성실업 출신 샐러리맨 [[김우중]]이 대도섬유 사장 도재환과의 5:5 공동출자로 [[서울]] [[충무로]] 자본금 500만원,(2023년 시세로 약 2억대)동남도서빌딩 3층에 무역업체 '대우실업'을 설립하고 부산에 공장을 설치하여[* 현재의 [[해운대 메가센텀 한화 꿈에그린]] 아파트 자리이다.] 와이셔츠 등 공산품 수출을 시작했다. 대우라는 이름은 대도섬유의 '''대(大)'''와 김우중의 '''우(宇)'''에서 딴 것이다. 창업자는 김우중인데 회사 이름은 '우대'가 아니라 '대우'가 된 이유는 대도섬유의 도재환 사장이 자본금을 전액 출자해줬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담으로 대도섬유는 [[1970년]], 도재환 사장이 김우중 회장과의 갈등 끝에 투자금을 전부 회수하고 절연하면서 대우와의 관계가 없어졌고, 현재까지도 살아남아 섬유를 생산하고 있다. 도재환 사장은 대우그룹이 공중분해되고 4개월 뒤인 [[2000년]] [[8월 9일]] 세상을 떠났다. [[1993년]] [[4월 7일]]자 [[매일경제]] 기사에 따르면, 형식상 5:5 공동출자였을뿐, 자본금만 따지면 10:0으로 도재환의 전액 출자였다고 한다. 김우중은 자본 출자 없이 판매 책임자로 지분 50%를 가졌을 뿐이었다.] [[1970년대]] 경제성장 및 수출 호조에 따라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고, 정부 주도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힘입어 단기간에 국내 최대기업으로서 성장했다. [[1973년]] 영진토건과 [[미래에셋증권|동양증권]]을 인수해 건설 및 금융업에 각각 손을 뻗었고, [[1974년]] 동남전자를 인수하여 '대우전자'로 개편해 전자제품 수출업에도 손을 뻗었다. 1976년 부실기업 한국기계를 인수하고서 중공업 사업에 손을 뻗기 시작해 1978년 [[대한조선공사]]로부터 옥포조선소를 인수하여 '대우조선'을 세웠고, 1979년 새한자동차도 인수해 중공업 사업군을 형성했다. 이러한 성장 과정에서 부실 국영기업의 매각[* 예를 들어, 한국기계공업→대우중공업→대우종합기계→두산인프라코어→(현)현대두산인프라코어.] 등 M&A를 많이 활용한 측면에선 이후의 [[STX]]나 [[웅진그룹]][* 이 쪽은 알짜 계열사인 웅진코웨이를 팔고 근근히 버티고 있기에, 완전히 망해버린 대우그룹, STX와는 비견될 정도는 아니다.] 등과도 비견된다. 1976년 기획조정실을 신설해 [[지주회사]]의 모양새를 갖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