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소왕 (문단 편집) === 초기 일생 === 《[[삼국사기]]》 등에 기록된 [[고구려]] 건국 신화에서 처음 등장하며, 아버지인 금와왕이 [[유화부인|유화]]와 그 아들인 [[동명성왕|추모]]를 거두어 키울 때에 함께 어울려 놀기도 했다고 한다.[* [[부여]] [[동명왕]] 전설에 따르면 천제의 아들인 [[해모수]]가 [[해부루]]의 아버지이며 해부루의 아들이 [[금와왕|금와]], 금와의 아들이 대소이므로 해모수는 대소의 증조부가 된다. 또한 금와왕 재위 시절 금와가 해모수의 미망인이자 해모수의 아이를 잉태한 유화를 거두어 낳은 아들인 추모를 양육했다고 봤을 때 유화는 해모수가 노년에 거둔 첩이나 부인으로 짐작된다. 그렇게 보면 해모수의 증손자인 대소가 해모수의 아들인 추모보다 연상으로 봐도 무리는 아니며 《삼국사기》에서도 대소는 추모보다 연상으로 기록되고 있다. 6명의 동생의 존재를 감안한다면 연상인게 확실하다.] 처음에는 [[동명성왕]]과 어울려 놀았다는 기록도 있는 것으로 보아 애초부터 사이가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의 형제들 중에서도 주몽의 재능을 따라갈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점차 주몽을 시기하였으며, 훗날에 부여에 위협이 될만한 인물이라고 여겼다.[* 당장에 금와부터 해부루의 친자가 아닌 [[업둥이]]이며, 해부루가 금와를 태자로 삼은 것도 그 자신에게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와가 대를 이은 것이고, 대소도 금와의 뒤를 이을 것이 자명한데 증조부 해모수의 아들이 태어나면 대소 자신의 입지가 매우 불리해지기 때문이다.][* [[동국이상국집]] 동명왕 편에 따르면, 대소와 형제들이 사냥을 나갔는데, 대소를 비롯한 일곱 형제들이 허탕만 치고 있을 동안 추모는 수많은 사슴을 잡아왔다. 이에 대소 형제들이 추모를 시기하여 사슴을 모두 빼앗고 추모는 나무에다 묶어버리고 궁으로 돌아가버렸다. 그러나 대소가 환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추모가 '''나무를 뿌리째 뽑아 짊어지고는 묶인 채로 걸어서 환궁하였다고 한다.''' 물론 허구성이 짙은 이야기지만 대소가 그만큼 추모에게 위협을 느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아버지인 [[금와왕]]에게 추모를 제거할 것을 간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신하들과 함께 몰래 계략을 꾸며서 추모를 죽이려고 했다. 이를 알게 된 [[유화부인|유화]]가 주몽에게 경고하자 추모는 부여에서 탈출하여 [[고구려]]를 건국하고 [[동명성왕]]이 되었다. 《삼국사기》에서도 부여를 떠날 것을 명령한 이는 유화였으며 이를 반문하는 추모에게 대소와 다른 왕자들이 죽이려고 하는 것을 모르느냐는 내용이 있다. 해모수의 부인으로 살아온 세월만큼 정치적 계산이나 감각이 있었기에 아들 추모를 재빠르게 피신시킬 수 있었으리라 추정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