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북 (문단 편집) == 역사 == 같은 [[동인(문화)|동인]]이었다가 [[정여립의 난]] 당시 [[남인]]과 갈라선 [[북인]] 계통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과 타협(주화오국)을 했다는 이유로 남인 계열의 [[류성룡]]을 탄핵하고 1599년부터 정권을 장악한다. 지금의 우리가 보기엔 비열하기 짝이 없는 정치 공세일수도 있지만, 북인 계열의 인물들(대표적인게 [[곽재우]])이 다수가 [[의병]]장 출신이었기 때문에 이런 탄핵이 딱히 정치적 공세만이라고 보긴 힘들긴 했다.[* 그런데 정작 얼마 안가서 [[기유약조]]를 맺는다.] 1599년에 북인은 집권하자마자 홍여순 문제로 다시 정인홍 중심의 대북과 [[류영경]] 중심의 [[소북]]으로 분열되었다. 이후에 촉매제가 등장하는데 바로 [[선조(조선)|선조]]의 유일한 적자인 [[영창대군]]을 둘러싸고 누구를 후계자로 밀지에 대한 북인 사이의 의견 대립이다. 대북은 임진왜란 시기 분조를 이끌면서 성공적으로 세자의 임무를 수행한 [[광해군]]을 지지했고 소북은 영창대군을 밀어주었다. 덧붙여 대북쪽 인물들로는 나이가 많은 정인홍이 중심이나 대북에 속했던 유몽인, 기자헌, 이이첨으로 의외로 신진 관료가 있었고, 소북쪽 인물들로는 중심 인물인 류영경과 박홍구를 비롯한 기성 관료와 박승종과 류희분을 비롯한 신진관료들이 섞어서 분포했다. 선조의 마음은 영창대군에게 크게 기울어 있었기에 북인의 분열 직후 정국의 주도권을 진 쪽은 소북이다. 아마 선조가 조금만 더 살았다면 아마 대북은 붕괴되었겠지만, 1608년 선조가 급서하고 광해군이 즉위하면서 전세는 역전되어서 이후 기자헌과 이이첨을 주축으로 하는 대북을 주도하게 된다. 여담으로 [[허균]]도 대북계열이다. 그런데 이이첨의 폐모론에 찬성하며, [[인목왕후]] 시해를 주도하는 반란을 꾀하다가 [[끔살]]을 당했다. 다만 정인홍은 학식과 나이 등을 고려한 상징적인 리더였고 실세는 기자헌, 이이첨, 유몽인이었다. 이후 대북은 폐모론이 불거지는 과정에서 또 다시 영창대군만 죽여야 한다는 골북(骨北), [[인목왕후]]도 죽여야 한다는 이이첨 계통의 육북(肉北), 둘을 모두 살려야한다는 기자헌 유몽인 정창연 계통의 소수의 중북(中北)으로 나뉘었다. 이이첨 등 실권자들이 주로 가담한 것은 육북이었다.[* 정인홍은 특이하게도 영창대군을 죽이는 건 반대했지만 폐모론에는 찬성 했다. 단 이이첨이라고 해서 미친 건 아니었기에 죽여야 한다는 주장은 공식적으로 펴진 못했다.]골북과 이이첨 계통의 육북은 폐모론에 대해 입장차이가 갈렸지만, [[봉산옥사]], [[계축옥사]]같은 대형 [[옥사]]와 [[서인]],[[남인]]계 인물의 축출에는 적극적으로 주도했다. 이렇듯 대북세력은 갖은 [[옥사]]와 타당파에 대한 극단적인 배타적 태도로 문제가 되었다.[* 그 수준은 가히 조선판 [[매카시즘]]이라 봐도 좋을 정도 장령 배대유는 폐모론 시기 올린 상소에서 "도적질했다가 잡힌 뒤 (죄를 면하기 위해) 고변하는 자도 있습니다!" 라고 했을 정도로 심했다.] 마지막에 이르면 임금인 광해군조차 이이첨 등 대북 강경파들에게 권력이 너무 몰려 있다고 걱정을 할 정도였다. 당장 [[인조반정]] 때 반정군이 궐을 점령한 직후 도망친 광해군이 했다고 전해진 말이 "이이첨이 (반란을) 일으켰느냐?"이다. 게다가 인조반정이 여러 차례 계획이 [[소북]] 출신인 박승종과 류희분, 박홍구에게 새나갔음에도 성공할 수 있었던 게 대북이 주도한 너무 잦은 옥사에 신물을 느낀 광해군이 미온적으로 대처해서다. [[서인]]이 주도한 [[인조반정]]과 [[이괄]]이 난을 일으킨 [[이괄의 난]]으로 이어지면서 이이첨, 기자헌, 류몽인을 비롯한 대북 영수는 [[멸문지화]]를 당하고 깔끔하게 몰살당했다. 한편 소북도 역시 유희분이 죽임을 당하고 박홍구가 귀양을 가고 박승종이 처벌당하기 직전에 자결함으로써 소북 영수들의 죽음으로 소북도 깨끗하게 정리가 되었고 이후에 [[남이공]]과 [[김신국]]을 중심으로 [[북인]]을 이끌다가 이후에 [[남인]]에 의해 흡수되었다. 나중에 홍봉한의 북당계 인물들이 정조에게 "저하께서 외가를 붙들어주지 않으면 무신년 무리가 대북이 되고 말텐데 어쩌시렵니까?"[* 해석: 홍봉한 편을 안 들어주면 소론(이라지만 사실 김귀주를 노리고 한 말이다. 물론 김귀주는 홍봉한과 같은 노론이나 남당계다.)이 홍봉한(을 비롯한 북당계)을 다 죽일 텐데요?]라고 한 일이 있었는데 200년 가까이 지난 시점이라도 대북은 욕먹는 대상이 된 모양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