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만군 (문단 편집) ==== 병영부조리 ==== 대만 역시 동아시아 군대 특유의 극단적인 [[똥군기]]가 존재했었다. 1990년대까지도 [[구타]]나 [[내무부조리]] 등 [[한국군]]에 있던 악습과 비슷한 양상의 전개도 많았다. 특히 이런 문제는 한국군보다 더 심한 경우도 있었고, 이런 관행은 과거 국민당군의 부패문제와 결부되거나, 기존의 중국인의 군에 대한 전통적인 부정적 인식이 한몫을 했다. >'좋은 쇠는 못으로 쓰지 않듯이 제대로 된 남자는 군에 가지 않는다.' 라는 기존 중국 한족들 특유의 병역 기피 현상이 군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전반이 극단적으로 낮아진 원인이었다.[* 한편 한국은 군사 독재와 북한의 끊임없는 대남 도발로 인한 심각한 안보 위기를 겪으며, 반대로 제대로 된 남자는 군대에 반드시 다녀와야 한다는 군사주의적 인식이 자리잡았고, '미필'을 욕으로 사용하고 있다. 석연치 않은 판정이나 비리로 미필이 되는 등 사회 지도층을 중심으로 한 병역기피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것도 한 몫을 한다. 다만 이따금씩 군내 부조리로 인한 사건들이 터질 때면 일각에서는 어떻게든 군대를 빼야 한다는 인식이 가끔씩 생기거나 옹호받기도 한다. 물론 한국 남성들 중 현역 만기전역자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만큼 군대는 일단 다녀와야 한다는 시선은 여전히 베이스로 깔려 있어서 '미필'과 '공익'은 한국 사회에서 변함 없이 욕으로 쓰인다.] 또한 군벌 집합으로 시작된 군대이다보니 병사들 대우가 좋을래야 좋을 수가 없었다. 1995년 황궈장(黃國章) 해군 장병 의문사를 기점으로 현재는 '대만군의 군 인권 어머니' 또는 '황마마'라고 하는 천비어(陳碧娥)의 노력으로 군 내부 문제와 내부 문화가 어느 정도 변화했다. 이 분은 1995년 6월, 위에서 말한 황궈장의 어머니로, 아들이 우울증으로 배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군 당국의 설명과 달리 며칠 뒤 발견된 아들의 시신이 '''상처투성이에다 머리엔 쇠못이 박혀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시신의 상황을 보아 살인 사건이었으나, 문제는 [[대만 국방부]]에서 제대로 조사를 안하려 했던 것이다. 국방부의 책임 회피에 분노한 천비어는 군 인권활동가로 전업하여 계속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천비어의 활동 이전까지만 해도 대만군 내부의 군 인권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상관의 학대와 복무부적응으로 자살한 군인에게 터무니없이 낮은 액수의 장례비만을 주고 아무런 보상도 해주지 않았다. 조사도 안 한 것은 덤이다. 실제로 1995년 이후부터 대만군의 군 인권 문제와 관련하여 사회적 논쟁이 벌어지자 이 논쟁을 주도한 천비어는 [[대만 국방부]]에서 '미친 여자'라고 부를 정도였다. 국방부에 가서 항의하다 경찰에 체포되어 끌려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사회적인 노력을 통해서 현재는 대만 국방부 역시 그녀를 인정하고 있다. 천비어는 2007년 7월에 한국을 방문하여 군 의문사 유가족, 군내 사고로 죽은 병사 유가족, 군 인권 활동가들과 만나 그들을 위로하며 활발한 토론을 했다. 2013년 7월에는 부대에 [[휴대폰]]을 반입해서 군기교육대에 갔던 [[훙중추]] 상병이 제대를 앞두고 갑자기 [[의문사]]하는 사고가 터지면서 군대에 대한 대만 국민들의 시선이 차가워진 바 있다.[[http://en.wikipedia.org/wiki/Hung_Chung-chiu|관련 영문위키]] 이 사건의 파장은 거대해서 2014년 한국의 윤일병 사건도 대만 언론에서는 '한국판 홍중추 상병 사건'이라고 할 정도이다. [[파일:external/kor.theasian.asia/NISI20130803_0008499806_960_960.jpg]] 당시 상황. 30,000명의 시위대가 훙중추 상병의 제대로 된 조사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고, 이 중 3,000여명은 무려 30일 간 대만 국방부 앞을 점거하고 투쟁을 했다. 결국 30,000명의 시위가 벌어진 지 43일 만에 대만 국방부는 훙중추 상병의 유족에게 사과하고 전면 재조사를 통해 명예회복을 시켰다. 2014년 시점에서는 엄청난 희귀본인데 2002년 대원을 통해 《개같은 내 인생》(원제:狗臉的歲月)이라는 제목의 만화가 한국에 정발된 적이 있다. 작가 개인의 자전적인 만화로 군대 시절을 소재로 삼았는데 한국의 병영 만화들처럼 군대 찬양 혹은 그 시절 참 좋았지라는 시각이 아니라 '내 인생에서 가장 개같던 삶의 부분' 이라는 부정적인 관점에서 그려낸 만화다. 대충 [[주호민]]의 《[[짬]]》의 암울한 버전 혹은 《[[D.P 개의 날|DP 개의 날]]》이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상술된 천비어의 사회운동 덕분에 대만군의 악습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대만군에 대한 반감이 컸던 그 당시 사회 분위기의 영향을 받은 것도 있다. [[http://bbs2.ruliweb.daum.net/gaia/do/ruliweb/default/etc/327/read?articleId=22886598&bbsId=G005&itemId=145|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가수 [[우주인#s-3|위저우런]]도 깠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