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만/외교 (문단 편집) == 역대 정부별 정책 비교 == [[장제스]] 총통 시절까지만 해도 2차 대전 승전국 겸 UN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지위를 바탕으로, 자신들이 중국의 정통 정부임을 강조하는 '정통-반공 외교'를 펼쳐나갔다. 또한 아프리카 등 제3세계 신흥 독립국들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경제 지원을 제공하는 '선봉 계획'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경제 지원의 영향으로 [[니제르]], [[아파르트헤이트]] 당시 [[남아프리카 공화국]], [[말라위]], [[자이르]] 등의 친미 성향의 제3세계 아프리카 국가들과 수교를 하였다.] 하지만 1971년 유엔 축출을 시작으로 주요 우방 국가들이 무더기로 단교하면서, 이는 빛을 잃어 나갔다. [[1970년대]] ~ [[1980년대]] [[장징궈]] 총통 시대에는 정부, 민간을 망라한 국력 전체를 외교에 동원하는 '총력외교', 중국의 정통성에 집착하지 않고 유연하게 주요 국가들과의 관계 유지 및 발전을 추구하는 '탄성외교'를 지향했다. 이에 따라 최대 우방국인 미국, 일본과의 단교에도 불구하고, 대표부 형식의 비공식 외교관계를 유지했고, 특히 미국의 경우 <[[타이완 관계법]]>의 제정으로 비공식적이나마 방위공약을 확보했다. 아울러 기존의 대만 대신, '차이니즈 타이페이'란 명칭으로 아시아 개발은행(ADB),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등의 유력 국제기구에 가입했다. [[파일:L9EgkJC.jpg]] [[1990년대]] [[리덩후이]] 총통 시대에는 보다 적극적인 '무실외교'를 표방했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신흥 경제성장국으로서 대만의 경제력을 적극 활용하여 해외 지지를 확대하고, 고위 당국자들의 대외 활동도 확대하여 그동안 위축되었던 대외 활동에 활기를 되찾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리덩후이 총통이 개인 자격으로나마 싱가포르를 방문하여 리콴유 총리와 회견하고, 1995년에는 대만 총통으로 처음 미국을 방문하여(모교인 [[코넬 대학교]]의 초청을 명목으로 했다.) 연설하기도 했다. 그 결과 일시적으로나마 수교국이 증가세로 돌아서기도 했지만,[*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라트비아]], 한번 단교를 했던 [[니제르]],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라이베리아]] 등과 수교를 맺었다.] 이를 경계한 중국의 외교적 고립 획책은 더욱 강화되었다. 특히 1992년에 아시아의 마지막 수교국이었던 한국이 중국과의 수교를 위해 단교한 것이 대만에게는 큰 타격이었다. [[파일:T5LrM0X.jpg]] [[2000년대]] [[민진당(대만)|민진당]] 출신으로 처음 당선된 [[천수이볜]] 총통은 '다원외교'를 내세웠다. 무역, 민간, 인권 등의 여러 분야를 대상으로 하는 가치 지향적 외교를 통해, 대만의 독자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것이었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 성공하였고, '중화민국' 대신 '대만' 명의로 유엔 재가입 신청도 추진했다. 그러나 천수이볜의 분리독립 추구를 경계한 중국의 방해로 수교국은 도리어 9개국이 줄었다. [[파일:LEXShkQ.jpg]] [[2008년]] 취임한 [[중국 국민당]]의 [[마잉주]] 총통은 '활로외교'를 주창했다. [[ECFA]] 성립 등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적극화하는 가운데, 국제적인 생존 공간 확보를 추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따라 중국의 양해 아래 그동안 무산되어 온 일부 국제 기구(예: 세계보건회의[WHA],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대한 옵서버 참가 자격을 확보했다. [[파일:external/inteligenciaeconomica.com.pt/392864-xi-jinping-ma-yin-shake-hands-reuters-300x300.jpg]] 2015년 11월 7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최초의 양안 정상회담을 앞두고, [[마잉주]] 총통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대만의 UN 재가입을 비롯한 국제기구 참여 확대 협조를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본 회담에서 시진핑은 자신들이 주도하는 '[[일대일로]]', [[AIIB]](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에 대한 참여 허용에 대해서만 언급하여 대만 측을 적지 않게 실망시켰다.[* AIIB의 경우, 이미 대만에서 참여 의사를 밝혔지만 가입명으로 제시한 '중화 타이베이'(Chinese Taipei)가 하나의 중국 원칙과 상충한다는 이유로 중국이 거부한 바 있었다.] 어차피 중국은 아쉬울 게 없고, 당시 대만 총통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게 주 목적이었으니까 말이다. [[2015년]] 기준 대만은 [[자유무역협정]]인 [[TPP]]에 가입을 추진 중이다. TPP 가입에 대해서는 [[중국 국민당]] 외에 [[친민당]], [[민주진보당]], [[대만단결연맹]] 등 [[범람연맹]] - [[범록연맹]] 구분없이 일종의 활로가 되기 때문에 모두 찬성하고 있어 [[2016년]] [[제14대 대만 정부총통 선거]]에서 누가 되든 핵심 과제가 된다. [[차이잉원]] 정부가 출범하면서 [[국제연합|UN]] 재가입 논의가 다시 탄력을 받고 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01&aid=0008692080|#]] 하지만 현실은... 중국의 계속되는 외교적 압박으로 감비아, 상투메 프린시페가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복교했다. 2017년 1월 13일에는 [[타이베이 대표부]]들 중 유일하게 '중화민국(대만)'이란 이름을 달고 있었던 [[나이지리아]] [[아부자]] 주재 대표부에 대해 나이지리아 정부가 중화민국(대만)도 빼고 [[라고스]]로 규모를 줄여서 이전할 것을 요구했다. 비교하자면 [[워싱턴 DC]] 주재 대사관을 [[뉴욕]] 총영사관으로 완전 통합하는 셈. 본교가 분교로 합쳐지는 것이니 위상 추락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대만 측에서도 상호주의에 따라 대만 주재 나이지리아 대표부를 [[타이베이]] 밖으로 이전할 것을 요구, 현재 교외지역인 [[신베이]]로 이전한 상태이다. 2017년 6월 13일에는 신해혁명 이래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줄곧 외교관계를 유지해 온 [[파나마]]마저 대만과의 단교 및 중국과의 수교를 단행했다. 2018년 5월 1일에는 [[도미니카 공화국]]이 전격 단교를 선언하였다. 대만 측은 단교를 막기 위해 어마어마한 군사적 지원을 하였음에도 단교를 당해 분노와 절망에 빠졌다. 5월 24일에는 [[부르키나파소]]가 일방적 단교를 선언했다. 이어 8월에는 1933년 이래로 국교를 맺어 온 [[엘살바도르]]가 단교를 선언했다. 이는 총통의 방미 중에 일어난 사건이라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9/22/0200000000AKR20180922043352109.HTML?input=1179m|교황청조차 주교 서품과 관련하여 중국 정부와 합의에 도달하면서]], 대만 외교는 큰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2019년 9월 16일에는 [[솔로몬 제도]]가, 9월 20일에는 [[키리바시]]가 단교선언을 하면서 당시 대만 외교부에서 추가적으로 1~2개국과 단교당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등 외교적으로 고립이 더욱 심화되었다. 2020년에는 중국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홍콩특별행정구의 국가안전을 수호하는 법률제도와 집행기제 수립 및 완비에 관한 전국인민대표대회의 결정|홍콩보안법]]으로 미국을 위시한 [[제1세계]] 국가들과 더욱 심하게 대립하게 되면서 대만 정부는 수교국과 대표부 관계를 가진 국가들에 의료물자를 지원하는 방역외교를 시행하였다. 또한, 미국은 중국의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공격적인 세력확장에 대응하는 견제 정책의 일환으로 2020년부터 [[타이완 동맹 보호법]]을 제정하면서 대만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대만 수교국들을 지원하는 법을 마련했다. 타이완 동맹 보호법 등의 법안 제정 덕분에 대만의 수교국들은 단교의사를 더이상 표명하지 않고 오히려 대만과의 관계를 유지하겠다고 먼저 나서고 있으며 [[소말릴란드]]의 경우에는 수교를 목표로 대표부 설립을 먼저 제의하여 비공식관계를 수립하는 등 대만의 외교는 위기에서 희망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2021년 [[가이아나]]가 주가이아나대만대표부를 설립하려 하자 '''중국의 압박으로''' 없던 일이 되는 등 다시 위기의 징조가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만 3월 5일 리투아니아 정부가 대만과 상호 무역대표부를 설치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히며 반전의 계기를 마련한 것은 긍정적인 요소로 볼 수 있다. 리투아니아의 경우 인구가 적은 중소국가이지만, 엄연히 유럽연합과 나토 가맹국인 만큼 대표부 설치를 취소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기에, 대만 내의 반응은 고무적이고 이번 대표부 설립 역시 미국이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표부 설치는 '''비공식 외교관계'''로서, 타이완 동맹 보호법에서 규정하는 대사급 외교관계는 아니다. 왜냐하면 리투아니아는 이미 중국과 공식적으로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고 있으며, 만약 리투아니아가 대만과 대사급 수교를 하려면 중국과 단교해야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단교가 쉽지 않다는 점. 만약 단교가 그렇게 쉬웠다면 미국부터 먼저 단교를 했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일단 2021년 3월 현재, [[타이완 동맹 보호법]]이나 타이완 보증법 같은 미국이 만든 법안의 혜택을 보고 있다. 법안들의 영향으로 중국으로부터 수교국들을 지켜낸데다가 소말릴란드, 리투아니아와 대표부를 주고받는 비공식 외교관계를 맺는 등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또 한 번 중남미에서 단교를 선언한 국가가 나왔다. 2021년 12월 [[니카라과]]가 단교를 선언하면서 마잉주 정권 시절만 해도 23개국에 달했던 수교국이 이제는 14개국 밖에 없다.[* 다만 이전부터 니카라과는 부정선거 의혹과 지속적인 반미, 반서방 정책으로 인하여 대만과 단교한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하였다.] 그나마 [[소말릴란드]]와 [[리투아니아]], [[코트디부아르]][[https://m.yna.co.kr/view/AKR20221113039400074|#]]에 대표부가 설치된 것이 대만 입장에서는 희망일 것이다. [[2023년]] [[온두라스]]가 단교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더니 끝내 3월 26일 단교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