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만/스포츠 (문단 편집) == [[축구]] == [[일본]]과 오랜 기간 전쟁을 치르고 대만에 밀려난 장제스와 국민당 정부의 눈에 야구는 그저 일본의 스포츠였을 뿐이다. 정부는 일본 색채를 지우기 위해 축구와 농구를 적극 장려하였다. 1950~60년대에는 세계구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아시아의 축구 강호'''였다. 1954년 필리핀 아시안 게임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을 5:2로, 1958년 도쿄 아시안 게임에서도 대한민국을 3:2로 이기고 금메달 2개를 받았을 정도였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대만축구협회는 [[중국]]과의 [[하나의 중국|정치적 문제]]로 인해 [[아시아 축구 연맹]](AFC)에서 축출되었고, [[1975년]]에는 [[오세아니아 축구 연맹]]으로 편입되었다. 그래서 [[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지역예선부터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지역예선까지 오세아니아에서 지역 예선을 치렀다. 그러다가 [[1989년]]이 돼서야 다시 AFC로 복귀했다. 이 기간 동안 대만 축구는 경기수가 급속히 줄어들며 실력이 급속히 퇴보했고 AFC로 복귀했을 때는 이미 아시아의 [[동네북]] 신세로 약해져 있었다. 한때는 실력이 비등비등했던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아시아 중위권 국가들보다도 못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2019년]] 들어서는 [[요르단 축구 국가대표팀|요르단]], [[쿠웨이트 축구 국가대표팀|쿠웨이트]] 등 중하위권 중동 팀들에게 각각 5-0, 9-0으로 시원하게 박살나고, [[2021년]]에는 무려 '''[[네팔 축구 국가대표팀|네팔]]에게 2-0으로 깨지는 등''' 사실상 동아시아는 물론이고 아시아 전체로 봐도 최하위권 수준. 게다가 최근에 출전한 국제대회인 [[2023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는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2-0으로 박살나, [[키르키스스탄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4-1로 아주 시원하게 개박살이 나버렸고 결국 3전 1승 2패로 대회를 마무리 하였다. 자국 농구 대표팀이 국내에서 매회 국제대회를 개최하면서 꾸준히 실전 감각을 익혀갔던 반면, 축구 대표팀은 아시아 각국에서 열리던 국제축구대회에 불참한 것도 컸다. 태국 킹스컵이나 코리아컵 등 소위 아시아 3대 대회 참가 기록이 전무하다. [[므르데카컵]]에 참가 기록은 있으나 [[홍콩 프리미어 리그]] 선발팀이나 홍콩리그에서 뛰던 홍콩 태생 중화민국 국적 선수 선발팀[* 1965년 대회는 대한민국과 중화민국의 공동 우승 처리인데 이 대회에 참여한 선수들도 모두 홍콩 태생으로 홍콩 리그에서 뛰던 중화민국 국적 선수들로 초창기 중화민국(대만) 대표팀이 강호로 자리잡는데 공헌한 선수들이다. [[https://zh.wikipedia.org/zh-tw/Template:1965年默迪卡盃足球賽中華民國參賽名單|1965년 대회 참가선수 명단(중국어)]] ]이 1968년까지 중화민국으로 참여한 기록이다. 대만이 원하기만 했다면 현재도 민간교류가 아주 활발한 [[말레이시아]]나 아시아 유일의 수교국인 대한민국에 요청하여 해당국에서 개최하는 국제축구대회에 참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홍콩이 꾸준히 구정컵을 연 것이나 자국 농구협회를 보면 대만 정도의 경제력이면 스스로 국제 축구대회를 충분히 개최할 수 있었는데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다. 국제정세 탓만 할 수도 없는 법. [[2014년]]까지는 지금은 폐지된 대회들인 [[아시아 축구 연맹|AFC]]의 최하위 수준 대회인 [[AFC 챌린지컵]](국대)과 [[AFC프레지던트컵]](클럽)이나 나가고 있는 신세였다. [[2011년]]에는 처음으로 프레지던트컵에서 자국 클럽인 타이완전력이 우승을 차지했지만, 대회를 개최한 이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축구 약체들이 대부분인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해도 대만이 축구에서는 미래의 발전 가능성 면에서 나은 게 없다. 과장 좀 보태서 대만에서 태어난 사람이 축구선수가 되길 원하면 대만 해협 건너 중국으로 이민가서 거기서 축구선수 생활을 하거나, 본인이 [[반중|대륙이 영 꺼려진다면]], [[홍콩]] 프로축구 리그나 [[싱가포르]],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베트남]], [[인도]] 등 동남아시아나 남아시아의 다른 리그로 가서 선수로 뛰는 방법 밖에 없다. 이제 와서 대만에 프로축구리그가 출범하고 유소년 축구인재 육성 시스템을 만든다고 해도 미래의 발전 가능성은 기대할 수 없는 게 거기서 훌륭한 선수들이나 발전 가능성이 있는 유소년 유망주가 나온다고 해도, [[중국 슈퍼 리그]]에서 가만히 놔둘 리가 없기 때문에[*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지역예선 1차예선에 소집된 대만 대표팀의 23명 중 8명이 1차예선 당시 기준으로 중국 슈퍼 리그 또는 중국 슈퍼 리그의 하위리그 소속 선수들이고, 14명은 대만 리그 소속, 1명 무적이다. [[http://en.wikipedia.org/wiki/Chinese_Taipei_national_football_team|#]]] 대만 자체의 축구 리그가 활성화되기 어렵다. [[2017년]] 새로운 실업리그인 [[대만 프리미어 리그|대만 축구 프리미어 리그]](Taiwan Football Premier League)가 출범했다. 프로 리그는 중국어로 職業이라는 명칭이 붙는 반면, 이 리그는 台灣'''企業'''甲級足球聯賽라고 칭한다. 실제로 대학팀들도 기업들의 스폰서를 받아 참가하고 있다. 축구 뿐만 아니라 대부분 종목의 실업 리그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국가대표팀에 대한 것은 [[대만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을 참고할 것. [[2009년]]부터는 [[타이베이 시립경기장]]과 [[가오슝 국립경기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A매치 관중 수는 적은 편인데 가오슝 국립경기장이 규모가 큰지라 주로 타이베이시립경기장을 사용하는 중. [[여자축구]]는 남자축구에 비해 조금 나은 편이다. 월드컵에 1회 출전한 바 있으며 아시안컵에도 단골로 출전했었다. 1990년대 후반까지는 아시아에서 꾸준히 4강에 들어가는 나름 강호였으나 이후로는 남자축구처럼 실력이 퇴보하는 모습으로 최근 3회 연속 월드컵 진출에 성공한 한국과의 역대 경기를 보면 빠르게 몰락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은 대만에 0-7로 대패하였고, 1991년 아시안컵 조별 라운드에서는 0-9로 대패를 당할 정도로 대만은 아시아에서 상위권이었으나, 1997년 아시안컵에서 한국에게 1-0으로 승리한 이후 한국에게 승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2001년 아시안컵에서는 대만이 한국에게 첫 패배를 당하게 되었고, 2017년 동아시아 축구 대회 예선에서는 대만이 9-0으로 제압당하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실제로는 한국이 대만을 대파할 정도의 차이는 아니고 2014년 아시안게임에서는 한국이 1-0, 2018년 아시안게임 조별 리그에서는 2-1로 신승했을 정도로 한국이 대만보다 한 발짝 앞서는 차이다.] 1999년 아시안컵에서 준우승 한 이후 조별 예선에만 머물더니 2010년대부터는 지역 예선에서 미얀마, 태국에 밀려 본선에 나오지 못하고 있다. 동아시아 축구 대회는 일본과 북한이 최다우승 국가에 중국과 한국이 고정적으로 참여하고 있어, 북한이 불참하는 대회에만 출전하고 있다. 그래도 [[아시안 게임]]에는 꾸준히 참가하고 있다. 2001년에는 아시안컵을 유치하여 개최한 바 있다. 대부분의 경기는 반차오에 위치한 반차오경기장에서 열렸으나 홈 개최라는 이점에도 한국에 밀려 4강 진출에 실패했다. 여담으로 한국이 대만과 맞붙은 대만 대회 1라운드가 한국이 처음으로 대만에게 승리한 경기다. 예전 국가대표팀 홈 그라운드는 1989년 개장하여 2008년 폐장한 20,000석 규모의 타이베이 중산축구전용구장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야구장이었다가 1945년 이후 미군기지로 사용되었으며 미군 철수 후 축구전용구장을 세웠다. 구장의 외관 자체가 중국 전통양식을 차용해서 스포츠에 관심 없는 사람이 보기에도 독특한 구장이며 전광판마저도 중국식 기와를 얹혀놓은 특이한 모습이다. 조명탑 또한 관중석 바깥이 아닌 코너 플래그 쪽에 위치해 있던 여러가지로 독특한 구장이었다. 시내 한복판에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20년된 경기장이라기에는 관리상태도 안 좋았고, 무엇보다도 쑹산공항에 착륙하는 지점에 위치해 있어 심판의 호각소리조차 잘 안 들리는 문제가 있었다. 막상 이 문제는 구장 폐쇄시점에는 고속철도 개통으로 국내선이 대거 사라지면서 문제가 해결되긴 했다. [[타이베이 첩운|MRT]] [[위안산역]] 플랫폼에서 바로 보이는데 현재는 위안산엑스포공원의 일부로 남아있다. 그라운드를 철거한 거 외에는 그대로 남아있어서 독특한 외관을 구경할 수 있다. 2007년 아시안컵 예선 경기 때 이 곳에 원정응원 갔던 후기들이 아직도 인터넷에 제법 있으니 궁금하면 검색해 볼 수도 있다. 대만은 생활스포츠로서의 축구도 인기가 매우 떨어지는 편인데 '''학교 운동장에도 축구장 대신 농구장을 만들어 놓은곳이 허다하고[* 대만 학생들은 축구 대신 농구를 하는 경우가 많다.]''' 공원에 축구장을 만들어 놨더니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