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릉원 (문단 편집) == 고분군 == [include(틀:신라의 고총 고분군)]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대릉원 분포도.jpg|width=100%]]}}} || ▲ 출처 국립문화재연구소, 2015,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군Ⅴ -G지구 분포조사 보고서 가장 좌측 위의 구역이 노동리, 노서리 고분군, 가장 가운데가 지금의 대릉원(황남리 고분군), 대릉원의 동쪽이 황오동 고분군과 쪽샘지구, 가장 아래 쪽의 구역이 인왕동 고분군이다. 노서리 130호가 서봉황대, 노동리 134호가 봉황대라고 불리는 [[왕릉(무덤)|왕릉]]이며, 가장 가운데의 황남동 98호가 바로 황남대총이다. 그 아래의 106호는 전 [[미추왕릉]]이고 지도 가장 아래의 119호가 [[삼국유사]]의 기록[* 다만 삼국유사의 기록으로 추정한 것은 지금의 '''전 내물왕릉'''이고 [[역사고고학]]적으로는 119호분이 해당한다.]에 근거하여 [[내물왕]]의 무덤으로 거론되는 인왕동 119호이다.[* 교동 119호라고도 불린다.] 대릉원 일원은 월성로 고분군(또는 구역)부터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미 다른 무덤들에 비해서 출토되는 부장품의 위계가 높아서 [[왕]] 내지는 왕족, [[귀족]]들의 무덤군으로 형성되었다고 추정된다. 월성로 구역 및 황오동 일대에서 비교적 먼저 대형 무덤들이 만들어지다가 5세기 중엽부터 봉분의 규모가 독보적이라 왕이 묻혔음이 명백한 [[황남대총]] 또는 인왕동 119호분, 전 미추왕릉이 축조되었고, 가장 마지막으로 5세기 후엽-6세기 무렵 노서리, 노동리 고분군이 있는 쪽으로 전개되었다고 추측한다. 노서리, 노동리의 봉황대 고분과 서봉황대 고분[* 겨울에 경주에 사는 어린이들이 눈썰매를 탔다는 그 [[카더라]]가 있는 큰 무덤이다.]을 끝으로 경주 분지 외곽의 [[서악동 고분군]]으로 임금들이 묻히는 곳이 이동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