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릉원 (문단 편집) == 역사 == 경주 분지 한가운데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신라]] 당시에도 수도 [[서라벌]] 시가지 가운데에 있는 [[도시공원|국가 묘역공원]] 같은 모습이었으리라 추정한다. 대릉원과 바로 옆에 붙은 쪽샘지구에서 발굴 조사해 보니, 신라 당시의 도시 기반 시설과 건물 터가 대릉원 주변 지역에는 빼곡하게 차 있음에도 대릉원 일대에선 거의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시가지로 가득찬 대도시 가운데지만 대릉원부터는 건물을 못 짓게 [[개발제한구역]]으로 관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라 멸망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나 관리가 부족해지자 [[조선시대]]~[[일제강점기]]에는 대릉원 무덤과 무덤 사이까지 사람들의 주거지가 생겼지만 현대에 들어 정비해서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대릉원의 [[무덤]]들은 문자로 표기된 기록이나 비석류가 일절 출토되지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인 편년을 알기는 힘들다. 대릉원의 [[무덤]]들은 무덤의 주인의 이름을 알 수 있는 지석도 출토되지 않아서 무덤 주인의 이름이 밝혀진 무덤은 [[이사지왕]]이라는 명문이 발견된 [[금관총]]이 유일하다. 하지만 [[돌무지덧널무덤]]의 구조 때문에 [[도굴]]이 어려워서 많은 유물들이 별 손실 없이 온전하게 남을 수 있었다. 이 유물들을 측정하여 대략 4-6세기에 걸쳐 조성했다고 추정한다. 6세기 이후에는 왕릉이나 기타 무덤들을 대릉원처럼 서라벌의 중심부가 아닌 산이나 도시 외곽 쪽에 만들었기 때문에, 대릉원은 아무리 늦어도 7세기 초반 이후로는 더 확장되지 않았던 듯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