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도수 (문단 편집) == 생애 == [[여요전쟁#s-3|요나라의 1차 침입]] 때 중랑장의 직위로 안융진에서 부관이었던 낭장 [[유방(고려)|유방]]과 함께 남하하는 [[소손녕]]의 요군을 막아내는 공을 세웠다. 봉산군에서 고려군을 격파하여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 했던 소손녕은 예기치 않게 안융진에서 대도수에게 패한 이후 소극적으로 변했고 이 기세를 타고 고려의 [[서희]]가 소손녕과 외교 담판을 짓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봉산군 전투에서 패한 고려 조정은 '어떻게 싸울 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항복할 것인가'를 두고 논쟁할 정도로 기가 죽어있었는데 이 때 들려온 안융진 전투의 승보는 고려 조정을 재각성시키게 된다.] 알고 보면 제1차 [[여요전쟁]]에서 알짜배기 업적을 이룩한 인물. [[여요전쟁#s-4|요나라의 2차 침입]] 때는 직위가 2단계 오른 대장군의 직위에 있었는데 [[평양시|서경]]에서 [[지채문]], 탁사정 등과 [[요나라]]의 침입을 막기 위해 전력을 다하였으나 전세가 불리해진 상황에서 탁사정[* [[목종(고려)|목종]]을 숙위하다가 [[강조의 정변|강조가 반란을 일으키자]] 이에 합세해 공을 세웠다. 그러나 자신의 빽이었던 [[강조(고려)|강조]]가 죽은 이후 1011년 8월 그의 당여라는 명분으로 유배형에 처해졌다.]이 배신을 저지르고 튀는 바람에 결국 요군에게 포로로 붙잡혔고 그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