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공황 (문단 편집) === [[소련]] === 자세한 내용은 [[소련/경제/역사]] 문서 참고. 세계 대공황의 얼마 안 되는 예외는 당시 신생 국가이자 [[공산주의]] 국가였던 '''[[소련]]'''이었다. 1928년에 이미 1차 대전 이전의 [[러시아 제국]]의 경제 규모를 따라잡은 소련은 성장을 계속했으며 [[1930년대]]에 소련은 매년 10%가 넘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하였다. 당시 대공황으로 전 세계의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경이적이었다. 이는 [[레닌]]과 [[부하린]]의 [[신경제정책]]을 통해 준비된 경제 구조, [[스탈린]]의 끔찍하리만치 가혹하나 결과는 효과적이었던 [[5개년 계획]]과 더불어 20세기 초 공산주의의 확산을 경계한 미국-영국-프랑스 이하 연합국 세력이 국제 자본주의 경제 구조에서 소련을 고립시킴으로써 소련 경제는 자력갱생의 구도가 되었고 대공황의 영향도 덜 받을 수 있었다는 평도 있다. 어쨌든 그 결과 낙후한 농업 국가였던 [[러시아 제국]]의 국체를 이어받았음에도 소련은 [[인민]]들의 영혼까지 끌어모아 이를 중공업에 투자하여 20여년 만에 [[프랑스]], [[영국]], [[독일]]을 추월하고 1938년에는 미국에 이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되었다. [[러시아 혁명]]과 [[제1차 세계 대전]], [[러시아 내전]]으로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평가받은 러시아 제국의 채무를 이어받은 소련이 홀로 달린 결과 불과 15년만에 발전된 미국까지 넘보는 공업국가가 된 것이다. 그리고 소련의 이러한 성공은 세계 각지에서 소련을 추종하는 사회주의 혁명가와 공산주의 단체들이 등장하는 계기 중 하나가 되었고 당시 중공업 정책 같은 것은 [[만주국]] 등이 모방하기도 했다. 물론 서민층의 삶의 질이 그만큼 빨리 향상되지는 않았고, 1933년도에는 [[우크라이나 대기근]]이 벌어지면서[* 우크라이나에서만 벌어진 것은 아니고 농업정책 실패와 가뭄으로 러시아 서남부,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등에서도 벌어졌다.] 수백만의 농민과 유목민들이 굶어죽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