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가족 (문단 편집) == 단점 == 도덕교과서 등에서 과거의 대가족 제도를 긍정적으로 보는 인식[* 사실 이 쪽은 단순히 조부모-부모-자녀의 대가족 구성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부모+3명 이상의 다자녀는 잘 다루지 않는 경향이 있다.]들과 달리 실질적으로 형이나 언니에게 얹혀 사는 것은 부작용이 많았다. 결혼 후에도 형제들과 같이 사는 것은 상대 배우자의 눈칫밥을 먹어야했기때문에 상당한 스트레스와 불편을 주는 일이었다. 물론 식구간 사이가 좋으면 가사와 양육부담을 덜수있고, 비상시에 인력동원도 할수있으며 주거비와 식비를 비롯한 생활비도 절감되지만,[* 이것이 많은 개도국에서 대가족 제도가 보편적인 이유이며, 평균자녀수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주거비와 생활비, 양육부담 및 인건비를 절감하기에는 최적화되어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대가족일 시절에는 이런식으로 양육부담을 나눠서졌고, 현실적으로도 농사를 짓는데 드는 인력이 많아서 인력충원이 필요했기 때문에 말 그대로 낳을수있을때까지 낳는 경향이 강했다. ] 사이가 나쁘면 핵가족일때에 비해 몇배의 스트레스를 받게되고, 집안 식구가 사고를 치거나 제사같은 경조사가 있을때는 뒷처리를 같이 해줘야되니 그야말로 복불복인 셈이다. 그러함에도 과거에는 여성인권이 낮던 시절인데다가, 복지제도도 넉넉치 않아서 [[시집살이|많은 아내들이 시가 형제들과 같이 살면서 그들을 챙겨주는 걸 감내하고 살았다]]. 맏이들은 맏이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배우자에게 부담을 주면서 젊은 시절 내내 동생들을 키우느라 시달리게 되고 동생들은 형이나 언니의 부양만을 믿고 나태하게 살면서 자립하려 들지 않고 [[등골브레이커]]가 되는 경우가 많아 그로 인한 가족들끼리의 갈등이 심각했다. 사실 조선후기에 재산상속권이 장자에게 주로 물려주는 식이 된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 양반가 장남들이 제사일까지 맡으면서 일처리를 해야되는것이 부담스러우니, 이걸 감안해서 장자에게 주로 물려주는 식이 된것이다. 또한 때로는 맏이가 낳은 자녀보다 늦둥이 동생이 더 어린 경우도 있어서 나이 어린 [[삼촌]], [[이모]], [[고모]] 등과 [[조카]] 사이에 호칭과 서열 문제로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코로나바이러스-19]] 대유행 이후 집단 감염을 막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는데, 대가족은 거리두기 시행령에서 정한 인원을 초과하는 경우가 많아 애로사항이 꽃핀다. 그래서 [[사회적 거품]] 같은 대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