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당랑권 (문단 편집) === 당랑권의 기원 === 한때 널리 퍼졌던 바에 따르면, 당랑권은 청대(淸代)(1644~1911) 초기, 산동성 묵현(墨縣)의 반청복명(反淸復明)[* 만주족의 나라인 청나라에 반대하고, 이전의 한족(漢族)의 왕조인 명나라를 되살리자는 운동]지사인 왕랑(王朗)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했다. 한때 한국에도 있었고, 이후 대만에서 무술을 전수했던, 장상삼(張詳三) 노사(老師)의 말을 인용하면 : || “왕랑은 먼저 소림사에서 권법을 배웠다. 절을 떠나 수행 중 단통이라는 권법가와 시합을 했다. 단통은 양팔이 마치 하나로 이어진 듯이 팔을 길게 늘여 먼 거리에서 기술을 사용했다. 통이란 통비, 즉 양팔을 이어진 듯이 쓴다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었다. 왕랑은 3일에 걸쳐 그와 싸웠으나 이길 수가 없었다. 3일째 시합 후, 왕랑은 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는데 매미 소리가 요란해, 그쪽을 보니 사마귀가 매미를 잡으려는 중이었다(당랑포선 : 螳螂捕蟬). 왕랑이 나뭇가지를 하나 주워들어, 사마귀를 찔러 방해하자, 매미는 도망가 버렸고, 사마귀는 나뭇가지를 향해 공격 태세를 취하였다. 흠칫 놀란 왕랑은 나뭇가지로 이리저리 찔러보며 사마귀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양앞발을 자세히 보니, 때로는 오른쪽이 앞, 왼쪽이 뒤, 때로는 왼쪽이 앞, 오른쪽이 뒤였다. 한쪽 발은 끌어당기고 다른 발은 차듯이 하며. 한동안 보니 사마귀의 움직임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었다. 왕랑은 이 때 짧은 것을 가지고 긴 것을 치는 극의를 깨달았다. 왕랑은 다시 단통과 겨뤄 그를 물리쳤다. 그 뒤, 왕랑은 사마귀를 가지고 소림사로 돌아가 아주 세밀하게 그 움직임을 분석해 결국에는 모든 것을 깨우쳤다.” || 당랑권의 수기(手技)와 보법(步法)에 대해서 장상삼 노사는 전하는 바가 있다. || “어느 날, 왕랑은 상의를 벗어두고 나무 아래에서 연습을 했다. 그런데 원숭이 한 마리가 왕랑의 상의를 집어가고 말았다. 왕랑은 놀라 뒤쫓아 갔다. 그러나 원숭이를 거의 다 쫓아갔다 싶으면, 원숭이는 몸을 돌려 피하고는 다시 달아났다. 그러길 반복하는 동안 한나절이 흘렀다. 그 사이 원숭이도 지쳤는지 그냥 상의를 내버리고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 이에 왕랑은 나중에 원숭이의 발놀림을 연구하여, 자신의 권법에 덧붙였고, 다시 말의 발놀림을 연구하여, 거기에 더했다 한다. 그리고 자신이 정리한 권법을, 자신에게 영감(靈感)을 준 사마귀의 이름을 따, 당랑권(螳螂拳)이라 명명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창시설은 어디까지나 전설이다. 그리고 이후 밝혀진 것이지만, 전승 과정에서 태사조(太師祖)의 이름이 잘못 전해지는 등의 오류가 있었다고도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