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당나라 (문단 편집) == 개요 == [[수나라]]의 뒤를 이은 중국의 통일 왕조로, [[618년]]에 수의 당국공인 [[고조(당)|이연]]이 건국해 [[907년]] [[애제(당)|애종]] 때 [[후량]]의 [[주전충]]에게 멸망하기까지 20대 289년간 유지되었던 왕조이다. 이칭으로는 당조(唐朝), 이당(李唐)이 있다. 전조인 수가 단명한 탓인지 [[국성]]이 바뀌었다는 점을 제외하고 수나라의 정치체제, 제도, 문화, [[관롱집단|집권세력]] 등을 그대로 계승한 모습을 보인다.[* 비슷한 예로 영씨의 진과 유씨의 한이 묶여서 때때로 '''진한시대'''로 불리는 것처럼, 양씨의 수와 이씨의 당을 묶어서 '''수당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게다가 [[진시황]]과 [[한 고조]] 유방이 아무 혈연관계가 없었던 것과는 달리, [[수 양제]]와 [[당 고조]]는 서로 [[이종사촌]]이므로 수와 당은 혈연관계로 묶이기도 한다.] 수도는 장안이었으며 고대, 중세 중국 제2의 도시인 낙양이 부수도로 기능했다. 장안은 인구가 100만명이라 식량 부족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관중 지역의 식량 생산량이 크게 줄어들었던 당대 후기에는 거의 대부분의 식량 공급을 강남 지역의 생산력에 의지하게 된다.] 전통 [[중국]] 문물을 발전시킨 왕조이자 동시에 대외 활동을 활발하게 추진했고, 이민족의 문화와 그들의 자치를 인정하는 등 '''다민족적이고 국제적인 요소가 가장 짙었던 왕조로 평가받는다.''' 북쪽으로는 [[위구르 제국|회흘]](위구르), [[토번 제국|토번]](티베트), 남방의 [[베트남]]과 교류했다. [[한국사]]에서는 [[백제]]의 맹공과 [[고구려]]의 협공으로 인해 위기에 빠졌던 '''신라의 [[삼국통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들려고 해서 이를 저지하려는 [[신라]]나 [[발해]]와 군사적으로 충돌하기도 했다.] 또한 [[일본]]이 백제 멸망 이후 [[견당사]]를 보내 중국의 문물을 수입하여 국가 체제를 정비하는 등,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 상당히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반도는 위치상 중국에 많은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지만, 당나라는 그중에서도 한반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고,[* 역대 중국 왕조 중 한반도에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왕조를 꼽자면 당나라가 [[원나라]]와 더불어 양대산맥이다.] '''향후 1,000년 이상 지속되는 [[중화사상|동아시아의 중국 중심 세계관]]을 완성한 나라였다.''' 후기에는 [[안록산의 난]] 이후 이민족들과 중국 민중의 불만이 폭발했고, 당나라 중앙정부 자체의 동요는 물론 사회 및 경제적으로도 불안이 가중되어 쇠락의 길을 밟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