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당개 (문단 편집) === 조정으로 돌아오다 === 영주로 좌천되고 몇 달이 흘러, 당개는 빈주(郴州)의 조세 사무를 주관하다가 담주통판(潭州通判), 지복주(知復州)를 역임하고 전중시어사로 임명되었다. 인종은 조정으로 복귀한 당개를 치하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경이 지방으로 좌천된 이래로 개인적인 서신을 조정에 보낸 적이 없으니 그대는 절개가 굳건하다고 할 만하오. 인종의 치하를 받은 당개는 언사에 거침이 없었는데 어떨 때는 다음의 직언을 올리기도 했다. >소신이 이미 간관을 맡고 있지만 말을 해도 행하지 않으면 장차 굳게 다툴 것이고 다툼이 치열해지면 폐하께 누가 될 것이니 저를 해직하시길 바랍니다. 당개는 뒤에 공부원외랑(工部員外郞), 직집현원(直集賢院)으로 전임되고 개봉부판관(開封府判官)이 되었으며, 다시 지양주(知揚州)로 전출되고 강동전운사(江東轉運使)로 옮겼다. 이때 어사 오중복은 당개가 오랫동안 지방에 있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또한 다시 재상으로 복귀한 문언박은 지난번 당개에게 탄핵 당했었던 안좋은 과거가 있지만 그 일을 잊고 당개의 능력을 높이사서 조정으로 복귀를 요청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개가 제게 했던 직언은 진실로 소신의 폐단을 지적한 것이니 오중복의 말을 따라주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인종은 명신인 문언박 등이 탄핵당했던 일을 잊지않았고, 결국 당개를 지방인 하동으로 부임시켰다가 후일 다시 조정으로 입조하게 하여 탁지부사(度支副使)로 임명하고 천장각대제(天章閣待制)로 진위되었으며, 다시 지간원(知諫院)을 맡았다. 인종이 지화(至和) 연간 이후부터 국정을 처리할 때 대신들과 대화를 하지 않자, 당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군신의 관계는 천지와 같고 천지의 교태야말로 올바른 도리입니다. 신하들을 항상 소집하시고 덕음을 펼치시고 정사를 토론하며 천하를 행복하게 하시길 바랍니다. 당개는 다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후궁이 은택에 청탁하는 것을 금지해야 하며, 왕명이 중서성을 거치지 못했다면 마땅히 규율을 세워서 제지해야 하며, 비빈에게 내리는 물품이 전대보다 수십 배나 많고 날마다 끝이 없으니 마땅히 제한해야 하며, 감사(監司)에서 천거한 관리들은 대부분이 문법만 터득한 아전들이니 감사에 단정하고 선량하며 돈후하고 소박한 선비들을 선발하되 간사함을 좋아하고 경박한 이들과 함께 승진하지 못하게 하며, 각지의 주마승수(走馬承受)가 군현을 침범하니 마땅히 파직하여 파견하지 말고 그 권한을 감사로 돌려야 하며, 연국공주(兗國公主)가 밤에 제멋대로 궁문을 여니 마땅히 숙위의 관리들에게 경고하여 궁성의 제도를 엄격하게 해야 합니다. 인종은 당개의 진언을 모두 널리 받아들였다. 어사중승(御史中丞) 한강(韓絳)이 재상 부필을 탄핵하자, 부필은 자신의 파면을 청했고 한강 또한 대죄하였다. 당개는 왕도와 함께 한강이 위법으로 대신을 중상하였다고 탄핵하여 결국 한강은 파면되었다. 당개는 다른 재상과 갈등을 빚어서 자신의 전출을 주청했고 형남으로 전출되었지만 칙서가 문하성(門下省)을 지날 때 지은대사(知銀台司) 하담(何郯)이 칙서를 봉환하여 개봉부에 남게 되었다. 그리고 진승지(陳升之)를 탄핵하여 지홍주(知洪州)로 전출되었다. 당개는 이후 용도각직학사(龍圖閣直學士), 하북도전운사(河北都轉運使)가 더해졌고 추밀직학사(樞密直學士), 지영주(知瀛州)를 맡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