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당개 (문단 편집) === 초기 생애 === 1010년 강릉부(江陵府)에서 태어났으며, 당개의 본적은 항주(杭州) 전당현(錢塘縣)이었으나 할아버지의 대에 강릉부로 옮겨 살아서 강릉부 출신이 되었다. 아버지 당공(唐拱)이 임지인 장주(漳州)[* 現 [[푸젠성]] [[장저우시]].]에서 죽자, 장주의 사람들은 당공의 집안이 가난하다는 걸 알고 돈을 모아 부의금으로 보냈지만 당시 나이가 어렸던 당개는 이를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당개는 뒤에 진사에 급제하여 무릉현위(武陵縣尉)가 되었고 평강현령(平江縣令)으로 선임되었다. 당시 평강현에는 이씨(李氏)라는 인색한 부자가 있었는데, 평강현의 관리들은 이씨에게서 재물을 갈취했고 그를 무고하여 죽인 뒤 귀신에게 제사를 지냈으며, 악주(岳州)의 지주사가 이씨의 집안 사람들을 모두 체포하여 남녀노소를 가리지않고 고문을 가했지만 자백을 받아내지 못했다. 당개는 현으로 부임해서 심문했지만 증거가 부족했고, 악주의 지주사가 분노하여 조정에 다른 어사를 파견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조정에서 파견한 어사(御史) 방해(方偕)도 심문을 진행했지만 당개의 심문과 똑같았다. 결국 이씨를 무고한 관리들은 모두 처벌을 받고 방해도 상을 받게 되었지만 당개는 자신의 공적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다. 당개는 다시 막주(莫州) 임구현(任丘縣)으로 부임했는데, 임구현은 [[요나라]]의 사신이 왕래하는 길목에 있었고 역참의 관리가 요나라의 사신으로부터 갈취를 당하는 문제가 있었다. 당개는 역참의 입구에 앉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법률에 공급이 규정되지 않으면 일체 공급해선 안 된다. 감히 우리의 생산 도구와 일상 집기를 훼손하는 자가 있다면 단호히 붙잡을 것이다. 당개가 위의 명령을 내리니 요나라의 사신들은 모두 법도를 따르게 되었다. 또한 당시 연변의 저수지가 해마다 넘쳐서 백성들의 밭을 해치자, 환관 양회민(楊懷敏)이 관리를 주관하며 읍 서쪽의 11개 촌의 저수지를 분할하자고 주장했는데, 당개는 여기에 제방을 축조하였다. 또한 덕주통판(德州通判)을 맡을 때 전운사(轉運使) 최역(崔嶧)이 곳집에 있는 명주를 백성들에게 고가로 팔려고 하자, 당개는 최역의 명령을 보류하여 하달하지 않았고 또한 사안을 안무사(安撫司)로 옮겨 최역의 잘못을 조목조목 알렸다. 최역은 분노하여 여러 차례 급하게 격문을 띄우고 당개를 심문하려 했지만 당개는 움직이지 않았으며, 결국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