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달성군 (문단 편집) == 역사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대구광역시/역사)] ||<-5> {{{#fff {{{+1 '''달성군 행정구역 변화'''}}}}}} || || '''1895''' ||<|3> {{{#!wikistyle="margin: 0px -10px;" →}}} || '''1914''' ||<|3> {{{#!wikistyle="margin: 0px -10px;" →}}} || '''1995''' || || {{{#!wikistyle="margin: 0px -10px; word-break: keep-all" 대구군[br]{{{-2 (大邱郡)}}}}}} ||<|2> {{{#!wikistyle="margin: 0px -10px; word-break: keep-all" 경상북도 달성군[br]{{{-2 (慶尙北道 達城郡)}}}}}} ||<|2> {{{#!wikistyle="margin: 0px -10px; word-break: keep-all" 대구광역시 달성군[br]{{{-2 (大邱廣域市 達城郡)}}}}}} || || {{{#!wikistyle="margin: 0px -10px; word-break: keep-all" 현풍군[br]{{{-2 (玄風郡)}}}}}} || || [[파일:경상북도 달성군 휘장(1995년 이전).jpg|width=100%]] || || 과거 휘장 || 현풍군([[현풍읍]], [[논공읍]], [[유가읍]], [[구지면]])은 대구와는 별개의 고장이었다가 1914년에 [[부군면 통폐합]]을 실시하면서 달성군과 합친 것이다. 달성군이 대구로 돌아간 1995년에 현풍 지역은 다른 달성군의 동네와는 달리 '''(행정적으로는) 처음으로''' 대구에 속하게 되었다. '행정적'이란 의미는 달성군이 대구권의 외곽지역을 대구권의 도심인 대구부와 분리하면서 설치한 행정구역이란 점과 '달성'이 대구의 옛 이름에서 따온 이름이란 점에서, 행정적이 아닌 생활권(도시권)과 문화권적 의미에서는 이미 1914년부터 대구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 사실 행정적으로도 달성군청을 비롯한 달성군 관련 행정기관들이 원래 대구 시내에 있었으니, 행정구역만 대구부-대구시-대구직할시에 속하지 않았을 뿐 현풍권 역시 어느 정도는 대구의 일원이었다고 볼 수 있다. 1914년 [[경상북도]] 대구부 중 중구 도심과 북구 [[고성동]], [[칠성동]]을 제외한 나머지와 현풍군을 통합하여 [[경상북도]] '''달성군'''이 되었다.[* 그래서 2014년에 개청 100주년 행사를 거하게 했다.] 대구를 감싸던 지역이었지만 여러 차례 읍면이 대구시로 편입되었다가 [[1995년]] [[3월 1일]] 대구직할시가 광역시로 전환되면서[* 광역시로의 명칭 개칭은 1995년 1월 1일이다.] 도농통합시 정책과 직할시 시역 확장 정책[* 이에 따라 당초에는 [[경산시]]도 대구 편입 대상으로 거론되었으나 최종적으로 경산의 대구 편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에 의해 달성군을 [[대구광역시]]에 편입하였다. 달성군의 특징은 현재 [[대구광역시]]의 구(區) 지역 상당수가 원래 달성군의 영역이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사라진 달성군 공산면[* 동구 덕곡동, 송정동, 중대동, 신용동, 지묘동, 내동, 미대동, 신무동, 백안동, 용수동, 미곡동, 도학동, 진인동, 능성동, 평광동, 북구 연경동], 해안면(동촌면)[* 동구 지저동, 도동, 입석동, 불로동, 봉무동, 검사동, 둔산동, 방촌동, 부동, 신평동], 수성면[* [[수성구]] 두산동, 지산동, 범물동, 황금동, 범어동, 만촌동, 상동, 중동, 수성동 일부, 남구 대명동, 봉덕동, 이천동과 중구 남산동 일부, 대봉동 일부, 북구 대현동] 성북면[* 침산동, 산격동, 검단동, 복현동, 동변동, 서변동], 성서면[* 달서구 파호동, 호산동, 호림동, 신당동, 이곡동, 용산동, 죽전동, 갈산동, 장동, 장기동, 송현동, 본리동, 본동], 월배면[* 달서구 상인동, 도원동, 진천동, 유천동, 월성동, 월암동, 대천동], 달서면[* 서구 평리동, 비산동, 상리동, 중리동, 이현동, 원대동, 내당동, 북구 조야동, 노곡동, 노원동, 달서구 감삼동, 성당동, 두류동]이 현재 대구의 각 구를 이루고 있다.[* 이는 [[서울특별시]]의 경우도 비슷한데, 현재의 서울 강북의 대부분은 조선시대 한성부 영역이었으나 1914년 대개편에서 경성부 중 사대문안과 용산을 제외한 옛 [[성저십리]] 지역이 [[경기도]] 고양군에 넘어갔고, 1936년과 1949년에 순차적으로 서울로 재편입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건 현풍군을 제외하면 원래 대구의 영역이었던 달성군 영역이 도로 대구로 돌아가는 과정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실제로 1980년대 초반에 출간된 '한국의 발견' 경상북도편을 보면, 당시 경상북도에 속해 있던 달성군의 첫 소개글은 '대구에서 나와서 대구로 돌아간다'이다. 이 책에서는 '달성군이 언젠가는 대구에 모두 편입될지도 모른다'고 예측하기도 했는데 정확히 적중하였다. 예언이라기보다는 당시의 추세로 봐서도 쉽게 추론할 수 있는 내용이다. 이 중 성북면, 달서면, 수성면은 일제강점기 때인 1938년 편입되었고,[* 이 때문에 해안면과 공산면이 달성군의 [[월경지]]가 되었다.] 해안면은 1940년 동촌면으로 개칭되었다. 해방 이후 1957년 공산면, 동촌면, 성서면, 월배면, 가창면의 5개 면이 대구시에 편입되었다가, 1963년 동촌면을 제외한 나머지 4개 면이 도로 달성군으로 환원되었다. 이후 1979년 월배면이 읍으로, 1980년 성서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가 1981년 대구시가 대구직할시로 승격되면서 월배읍, 성서읍, 공산면이 다시 대구로 편입됨으로서 현재의 달성군 영역이 이루어졌다. 1995년 전국적인 도농통합, 직할시역 확장에 맞춰 대구직할시가 [[대구광역시]]로 변경되며 달성군을 편입하여, 대구직할시 시절엔 대구에서 벗어나서 [[경상북도]] 영역인 달성군을 통과해 경남으로 갈 수 있었다면, 지금은 대구에서 바로 경남으로 갈 수 있는 곳이 됐다. 대구 편입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는데 대구에 군청이 있었고 대구와 역사성을 공유하는데도 경북도는 편입에 완강히 반대했고, 주민들이 [[http://mnews.imaeil.com/SocietyAll/1994052712514208200|달성군수실에]] [[http://mnews.imaeil.com/PoliticsAll/1994051823521662956|찾아가고]], [[http://mnews.imaeil.com/SocietyAll/1994052712514208200|학생들까지 서명운동에 나서는 등]] 강력하게 요구한 끝에 결국 경북도의 반대를 꺾고 대구에 편입될 수 있었다. 다만 시내버스나 택시의 [[시계외요금]] 문제는 대구광역시 편입 후에도 바로 해결되진 않았는데, 택시는 위천삼거리, 달성터널 이남에 대해선 [[http://mnews.imaeil.com/page/view/1995022800310114071|계속 할증요금을 받았고]], 시내버스 역시 편입 직후에는 논공, 현풍, 유가, 구지에서 [[http://mnews.imaeil.com/page/view/1995030100304037072|할증요금을 받았다.]] 심지어 시계외요금이 없던 좌석버스도 예외가 아니라 대구 관할이 아닌 하양은 기본요금만 받는데, 대구 관할인 현풍은 할증요금을 받아 달성군 주민들의 불만이 [[http://mnews.imaeil.com/page/view/1997071614120629881|많았고,]] 결국 1997년 8월 17일자로 시내버스 요금이 대구 시내와 동일하게 [[http://mnews.imaeil.com/page/view/1997081800044684021|조정되고,]] 택시 역시 복합할증이 [[http://mnews.imaeil.com/page/view/2001030915292105257|폐지되었다.]] [[화원읍]], [[다사읍]]은 대구 시내와 연담화되어 이름만 읍 소재지이며, 어지간한 지방 중소도시의 시가지보다도 더 발전되었다. 2005년 10월 18일 비 도시권 지역, 즉 군(郡)지역인 '''[[다사읍]]에 [[대구 도시철도 2호선]] [[문양역]], [[다사역]], [[대실역]]'''이 개통되었고,[* 국내 최초는 아닌데, 국내 최초 군 단위 행정구역 소재 도시철도역은 1990년 개통한 [[지축역]]이며 옛 [[고양시|고양군]] 시절에 개통했다. 광역철도의 역까지 포함할 경우 [[군포역]]과 [[의왕역]]이 최초이다.] 2016년 9월 8일 '''[[화원읍]]에 [[대구 도시철도 1호선]] [[화원역]], [[설화명곡역]]'''이 개통하였다. 대구광역시에 편입된 지 20년 가량밖에 지나지 않은 데다가, 화원읍, 다사읍, 가창면 등 대구시 지역과 직접 접하고 있는 곳들을 제외[* 이것도 직접 시가지와 연담되거나 접경하고 있는 일부 리 지역에 해당하는 것이지, 해당 읍면 중에서도 시 지역으로 나가기가 상당히 불편한 리 지역들도 꽤 있다.]하면 대구 시내로의 이동 시간이 제법 소요되기 때문에 아직까지 대구광역시에의 소속감은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그래서 특히 연령대가 있으신 분들은 지금도 시 지역으로 갈 때 '대구 간다'는 표현을 많이 쓰는 편이다. 반대로 대구 지역 사람들도 '논공 간다', '현풍 간다', '구지 간다' 등 각각의 읍면을 얘기하는 식의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단, 이상하게도 유가읍의 경우 '유가 간다'는 표현은 잘 하지 않는다. 그 전에는 과거 현풍군 영역이기도 했고 현풍과 가까워서 그런지 현풍에 묻어 가는 듯 했고 테크노폴리스가 조성된 뒤로는 테크노폴리스 한정으로는 '테크노(폴리스) 간다'는 표현을 많이 한다.] [[대구광역시청]] 신청사 부지를 둘러싸고 대구 관내 기초자치단체들이 유치 경쟁을 하였는데, 달성군 측은 화원읍, 정확히는 설화리의 [[설화명곡역]] 인근에 있는 LH대구경북본부 분양홍보관 자리를 주장했다. 그러나 2019년 12월 22일 옛 두류정수장 터로 시청사 부지를 확정하면서 무산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