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단국대학교/역사 (문단 편집) === 단국대학교 법인 부도 === 1997년 한국경제를 강타한 [[1997년 외환 위기]]는 단국대학교를 빗겨가지 않았다. 수지캠퍼스 시공사인 [[극동건설]]과 [[기아그룹|기산]]이 1997년에 도산하면서 수지캠퍼스 건설이 중단된 것이다. 건설 중단은 단국대학교에 큰 타격이 되었다. 단국대학교는 이미 1994년 말에 약 1,570억 이상의 부채가 있던 상황이었다.[* 출처: 1994년 12차 이사회회의록] 1990년대 이후 [[단국대학교병원]] 신축 사업과 [[내곡동(서울)|내곡동]] 부지 강제 매각으로 이어진 대학 법인의 재정은 그 기반이 매우 취약한 상태였다. 게다가 재단이 마련한 자구책의 일환인 서울캠퍼스 매각 대금 역시 매수자인 세경진흥의 지불능력 부재로 이행되지 않고 있던 상황이었다.[* 결국 이후 세경진흥은 매매약정을 취소당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자로만 매달 17억 원씩 빠져나가야 했다. 대학 당국은 자구책으로 각종 자산 및 부동산 매각을 적극 추진하였다. 그러나 이미 경제위기로 인해 재벌 대기업들이 갖고 있던 부동산 매물이 발에 채일 정도로 많아 부동산 매각도 쉬이 성사되지 않았다. 더욱이 이 과정에서 단군 이래 최대의 금융사기 사건이라는 '변인호 어음 사기사건'에 휘말리기도 했다. 결국 수지캠퍼스 공사 중단은 신탁계약으로 이뤄진 공사가 중단됨에 따라 막중한 채무관계로 되돌아 왔다. 대학은 자금 융통을 통해 해당 부채들을 갚으려 하였으나, 경제 위기로 인해 금융기관 역시 돈을 빌려줄 여건이 되지 않았다. 결국 학교법인은 1998년 3월 6일, [[서울은행]] 한남동 지점에 돌아온 어음 166억 8천만 원을 결제하지 못해 '''국내 대학으로는 최초로 최종 부도 처리 되었다.'''[* 서울은행도 당연히 단국대학교를 포함한 다양한 기업에 승인한 채무를 제대로 회수하지 못해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되어 조각조각 해체되었다.] '''사상 최초의 학교법인 부도 사건'''이었다. 단국대 관계자는 수익용 자산이 2조원 대에 달하고 당장 부동산 매각을 통해 3,000억 원 가량을 조달할 수 있을 것이고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며 [[한겨레신문]]이 보도하였다. 이사회는 학교법인 부도라는 사태에 대한 해명으로 아래의 사과성명을 발표하였다. > "3월 6일자 학교법인 단국대학의 예기치 못한 부도사태로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하기 그지없습니다. (중략) > 학교법인 단국대학은 지난 '89년 천안캠퍼스에 의과대학 부속병원을 건립하며 1천 5백억원을 투입하였고, 이로 인한 차입금 급증으로 그동안 적잖은 재정난에 시달려 왔습니다. 특히 1996년 착공한 신캠퍼스 신축공사에 1천 8백억원이 투입되어 어려움이 가중되던 중, 지난 해 말부터 IMF체제로 인하여 자금 시장이 경색되면서 이자부담이 크게 증가하여 끝내 부도를 맞게 된 것입니다. > 우리 학교법인은 당면한 재정적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충분한 가용재산을 갖고 있습니다. 관계당국에서도 학생이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학사운영을 정상화하는 데 큰 관심을 두고 있으며 이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해줄 것을 확신합니다. 저희 구성원 모두는 앞으로 혼연일체가 되어 뼈를 깎는 자구노력과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경영합리화를 기하겠습니다." > -------- > - 단국대학교 이사회, 『단국대학교 70년사』, 234쪽 단국대 법인 부도 소식을 접한 교육부는 1998년 3월 9일 단국대에 대한 특별 감사를 실시했다. 이후 교육부는 대학의 부채는 3월 6일 현재 총 2,562억 원, 자산은 5,320억 원으로 학교 재산의 일부를 처분하면 빚을 모두 갚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특히 단국대학이 차입금 전액을 병원 건축비와 학교운영비로 사용하였으며 재산을 은닉하거나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등의 비리는 발견되지 않았다면서 일부 재산의 매각을 허용해줄 방침이라고 밝혔다. 대학 법인 부도 이후 학생과 교수, 동문들의 구교운동으로 장학금, 상여금 반납 운동이나 기부금 운동이 벌어졌다. 이렇게 해서 모인 기금은 총 38억 3,268만여 원이었다. 이러한 구교운동과 IMF 체제 해소라는 시대적 배경은 결국 단국대 부도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게 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