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다카히토 (문단 편집) === 전후의 삶 === [[도쿄대학]] 문학부에 입학하여 고고학, 중동 역사, 셈어 계통 언어(Semitic languages)를 공부하였다. 특히 아나톨리아 고고학 전문 역사학자로서 알려졌다. 오랫동안 [[도쿄여자대학]] 등에서 고대 중동역사의 강의를 담당하면서 '황족 강사(宮さま講師)'로 불렸다. 사단법인 일본중동역사학회 설립에 관여했으며, 학회장을 맡았다. 이 학회에서는 미카사노미야 오리엔트 학술상을 수여하고 있다. 이외에 오카야마시립오리엔트미술관 명예고문이기도 하다. 재단법인 중근동 문화센터의 설립에도 진력하여, 센터의 총재로서 [[터키]]에서 카만 칼레후유크 유적의 발굴조사를 진행하여 서거 시까지 현지에서 상설연구기관으로서 아나톨리아 고고학 연구소의 건설을 진행해 왔다. 또한 전후 "[[여제|여성 천황]] 허용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의견을 주장하였다는 게 알려졌다. 과거 평화헌법을 제정하는 책임자의 유품 중에서 다카히토가 직접 쓴 내용의 원고가 발견되었는데, 그 원고에서도 이러한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 결국 당시 의회가 이를 무시한 덕분에 [[일본 헌법]] 및 [[황실전범]]에 이를 넣는데 실패했고, 그 직후에 라디오를 통해서 이에 대한 불만을 표출할 정도였다. 사망하기 수 년 전에는 라디오를 통해서 '현 일본 언론들의 행태 때문에 내가 과거에 주장한 여제 허용이 상당히 어렵지 않나'라는 의견을 표시하기도 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