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다이호(항공모함) (문단 편집) === 성능 및 건조 === [[배수량]]은 일본의 쇼카쿠급과 비슷한 30,000t대였고, 실제로 다이호의 설계는 [[쇼카쿠급 항공모함]]에서 가장 많은 참고를 해서 설계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다이호의 가장 강력한 장점이 바로 방어력'''이라는 것이다. [[추축국]] 최초의 장갑항공모함으로써 비행갑판에 20mm의 특수강판(DS강판)과 75mm의 CNC 강판을 부착하여 급강하폭격기의 500kg 폭탄 투하 공격에 대한 방어력을 확보했으며, 주요부분에 16mm 고장력강과 32mm CNC 강판 장갑재를 부착하여 수평방어를 맡기고, 160mm~55mm 두께의 CNC 강판 장갑재를 부착하여 수직 방어를 담당하도록 했다. 또한 개폐식 격납고를 채택하여 함재기를 갑판 아래에서 관리하는 비중을 늘렸다. 다만 갑판이 장갑화되면서 엘리베이터 수가 2개로 줄어들었다.[* 일부에서는 [[미드웨이 해전]]에서 급강하 폭격으로 인해 격침당한 항공모함 4척의 전훈을 반영했다 하지만, 미드웨이 해전이 일어나기 한참 전인 1939년 [[마루 계획#s-3.4|마루 4계획]]에 의거해서 1940년에 개념과 설계가 완성되고, 41년 07월에 건조를 시작하여 43년에 진수하였으므로 장갑항모의 개념은 이전부터 정해져 있었다고 보는 쪽이 바람직하다.] 연돌배치도 아일랜드형 연돌배치로 바꾸고 이에 따라 함교도 대형화되었다. 이는 비행갑판에 장갑을 깔면서 함선의 복원성을 위해 무게중심이 위로 올라가는 것을 막아 기존의 일본 항모보다 함의 높이를 낮췄고,[* 히류와 비슷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낮아진 함의 측면에다 기존의 하향굴절식 연돌을 달 경우 연돌에 바닷물이 들어갈 우려가 있었기 때문. 이로인해 연돌이 갑판 위로 올라가게 되었고, 함교와 연돌을 일체화하면서 함교의 크기도 자연스레 커지게 되었다. 다만 탑재기 수는 비슷한 배수량을 지닌 항모들에 비해 적은 편. 상술했듯이 무게중심과 함의 높이를 낮추기 위해서는 격납고 갑판을 2층으로 만들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다른 일본 항모의 경우 3층). 하지만 남아있는 기록들의 수치가 제각기 천차만별이라 정확한 항공기 탑재량은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상황. 설계시에는 5~60기를 상정했다는데, 이는 전쟁 말기에 투입된 신형 대형기의 운용이 기준이었다는 설도 있다. 또한 실제로는 [[필리핀 해 해전]]에서 75기를 탑재했다는 기록도 있지만, 이 기록 역시 당시 [[쇼카쿠]]와 [[즈이카쿠]], 다이호에 실려있었던 601항공대의 225기를 정확히 1/3로 나눠 기록했을 뿐 실제로는 그보다 적었다는 설도 있다. 일단 건조 당시의 함재기 운용 계획상으로는 [[A7M 렛푸]] 24기, [[B7A 류세이]] 24기(+예비 1기), [[C6N 사이운]] 4기로 총 52기를 탑재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http://navgunschl2.sakura.ne.jp/tenji/zoukou/shipsdata_ijn_cv.pdf|31 페이지 참고]]). 또한 거주성도 향상되어, 해먹이 아닌 다층침대에서 취침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함내에 있던 신사에는[* 당시 일본 대형함들은 함내에 신사가 있었다.] "불침 항공모함" 이라고 쓰여 있었다고 한다. 당시 일본 해군의 다이호의 방어력에 대한 기대와 자부심을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