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다이아몬드 (문단 편집) === 드 비어스의 독점과 현재 === 유명한 인도의 코이누르나 이란의 다리아이누르(Daria-i-Noor), 저주로 유명한 호프 다이아몬드 등에서 알 수 있듯이 다이아몬드는 고대부터 보석의 제왕이었다. 그리고 저런 유명한 다이아몬드들이 전부 인도산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고대의 다이아몬드는 대부분 인도산이었다.[* 소설 [[소공녀]]에서 일개 인도 주둔 군인인 [[세라 크루]]의 아버지가 동창과 함께 다이아몬드 광맥 개발에 손을 벌리는 장면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간디(문명 시리즈)|괜히 간디가 빼앗긴 다이아몬드를 옥수수와 바꿔먹으려 하는게 아니었다.]]-- 하지만 1800년대로 오면서 골콘다(Golconda)로 대표되는 인도의 다이아몬드 광산은 고갈되었고 이후 남아프리카에서 새로운 다이아몬드 광맥이 발견되는1870년대까지 다이아몬드는 1년에 생산량이 수KG 밖에 안되 않는 몹시 희귀한 보석이 되었다. 1870년 남아프리카의 킴벌리 광산에서 새로운 다이아 몬드광맥이 발견됨에 따라 남아프리카가 새로운 다이아몬드의 중심이 된다. 남아프리카에서 전례없이 거대한 다이아몬드 광맥이 연쇄적으로 발견됨에 따라서 생산량이 수십톤단위로 뛰었고 이후로 다이아몬드는 더는 희귀한 보석이 아니게 된다. 현대에 들어와서 다이아몬드는 대표적인 [[독점]] 사업 중의 하나가 된다. [[세실 로즈]]가 세운 남아프리카의 드 비어스 (De Beers) 사가 오랫동안 다이아몬드 산업을 독점하였다. 1870년 남아프리카에서 대규모 다이아몬드 광맥이 발견된 후, 수많은 다이아몬드 광산회사들이 설립되었다.1880년대 다이아몬드 광산회사들간의 경쟁으로인해 다이아몬드가 과잉공급되었고, 다이아몬드 업계는 다이아몬드의 가치가 낮아지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게 되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실 로즈의 주도로 다이아몬드 광산업체의 통합하여 1890년 드 비어스사를 설립하게 된다. 남아프라카 다이아몬드 광산의 대부분을 장악한 드 비어스사는 새로이 발견되는 다이아몬드 광산마다 인수합병하여 경쟁자의 등장을 막고, 다이아몬드 생산량을 절반으로 줄이면서 다이아몬드 가격을 유지에 성공하게 된다. 1917년 드 비어스는 마지막 강력한 경쟁자였던 어니스트 오펜하이머(Ernest Oppenheimer)의 컬리넌사와 합병계약을 맺었고 1920년대가 되면 전세계 다이아몬드 광산의 90%를 소유한 독점기업이 된다. 드 비어스사는 다이아몬드 원석의 90% 이상을 생산하는 킴벌리 광산을 소유하여 사실상의 독점을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유지하였고, 보석으로서의 다이아몬드의 현재 위치를 수립했다. 그리고 그 회사는 오펜하이머 가문과 그 가문이 남아공에서 설립한 회사인 앵글로 아메리칸이 거의 90%를 소유하고 있었다. 즉, 한 가문이 전세계 다이아몬드를 지배했던 것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 '다이아몬드를 구매하는 일'은 곧 드비어스의 다이아몬드를 사는 것과 동일시 되었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라는 드비어스의 광고 문구를 곰곰히 곱씹어 보면, '드비어스의 다이아몬드를 구매하라'는 말이 아니라 그냥 '다이아몬드를 사라'는 뜻이다. 어디서 다이아몬드를 구매해도 곧 드 비어스의 다이아몬드를 구매 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 시장은 1920년대 [[대공황]]이 찾아오기 전까지만 해도 지금과는 달랐다. 대공황이 오기 전 까지는 지금과 같은 선호하는 보석이였던건 마찬가지였지만 예나 지금이나 금에 비해 환금성이 떨어지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경제가 호황일 때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대공황이 찾아오며 다이아몬드보다 환금성이 좋은 금으로 수요가 몰리며 가치가 폭락할 위기에 처하게 된다. 마침 미국에서는 '약혼 위반에 따른 처벌(Breach of promise)'이 주마다 점차 폐지되기 시작했다. 해당 법률은 한국에서 폐지된 [[혼인빙자간음죄]]와도 비슷했다. 미국에서는 처녀가 약혼을 한 뒤 안심하고서 약혼자와 혼전 성관계를 맺는 경우가 많았고, 순결을 상실했으리라 짐작되는 상태에서 약혼이 파기되면 혼인 시장에서 그녀의 가치가 폭락했기에 이를 처벌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법적 제재가 사라지니 여성 측에 약혼의 담보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드 비어스는 다이아몬드를 [[프로포즈]]링의 상징으로 만드는 마케팅 작업을 하였다. 그래서 '연인에게 다이아몬드를 선물하세요.', '다이아몬드는 영원합니다.'라는 이미지를 구축, 이런 견고함과 영원성을 주제로 한 이미지 마케팅에 성공하여 프로포즈 반지 시장을 개척하여 다시 시장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때는 미국을 중심으로 중산층이 급속하게 성장하기 시작 이미 전체적의 부의 규모에서 상류층을 압도하기 시작하고 있었고 마침 드 비어스의 마케팅 성공과 맞물려 다이아몬드 소비가 급증하게 된다. 그리고 2차대전 이후 아시아의 경제력이 성장하자 일본을 중심으로 아시아 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했고 이 시도 또한 대 성공을 거두어 드 비어스의 독점이 계속되는 원인이 된다. 이런 드 비어스의 독점은 남아프리카 광산이 점점 메마르고 아프리카 곳곳에서 새로운 다이아몬드 광산이 개발되는 1970-80년대부터 이미 흔들리기 시작했고, 1990년대 동구권이 무너지면서 거의 절반 가량 무너졌다. 이후 [[러시아]]의 다이아몬드 회사들의 M&A를 통해서 거대 기업으로 성장해서 독점 구조에 도전하였고, 그 결과 2000년대 이후에는 40% 미만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드 비어스의 독점이 깨지면서 나타난 부작용의 하나가 바로 유명한 [[피의 다이아몬드]]다. 물론 드 비어스가 계속 독점했다고 해도 피의 다이아몬드가 나오지 않았을 거라는 보장은 절대 없다. 유통의 독점 덕분에 투명성은 높아졌을지 몰라도 드 비어스는 업계의 이익을 위해 지속적으로 다이아몬드 가격을 상승 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그 부담을 전부 소비자가 떠안아야만 했다. 러시아가 드 비어스의 독점을 깨뜨리지 않았다면 다이아몬드 가격 역시 고급 시계나 다른 사치품들처럼 지금보다 3~4배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 했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 고급 시계 만들어 파는 업자들이 예전에 다이아몬드도 거래하던 업자들이었다. 드 비어스가 세계 다이아몬드 광산을 전부 장악한 것도 아니면서 100년 이상 다이아몬드 시장을 독점에 가깝게 장악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통 시장을 장악하여 물량을 조절하고 다이아몬드의 높은 가격을 계속 유지 및 상승 시키면서 시장을 확장했다. 드 비어스는 세계 각지의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생산되는 다이아몬드 원석을 대부분 구입하여 물량을 조절해서 출하하고 마케팅까지 했다. 매우 높은 가격 유지 및 상승 시키기 위한 물량 조절과 막대한 마케팅 비용. 한 가문에 독점되어 가격이 어마어마한 다이아몬드. 그것을 독점한 것이 드 비어스. 그러나, 20세기 내내 다이아몬드 유통의 대부분(80%)를 차지하던 드 비어스의 독점은 21세기가 되자마자 흔들리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드 비어스를 거친 다이아몬드는 약 45%로 감소했고, 2013년이 되자 드 비어스를 거친 다이아몬드는 금액 기준으로는 38%, 수량 기준으론 그것보다 더 낮은 점유율을 가지게 되었다. 2008년, 드 비어스와 러시아 최대 다이아몬드 국영 기업인 알로사간에 관계가 단절되었다.[* 러시아는 당시나 지금이나 세계 다이아몬드 매장량 1위 국가이다.] 따라서, 20세기 드 비어스의 독점은 당대 시대를 고려할 경우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냉전 시기 세계 다이아몬드의 무려 1/3을 차지하는 소련은 서구 시장에 별다른 영향을 줄 수 없었다.[* 현재 드 비어스는 공식적으로 캐나다, 보츠와나, 나미비아, 그리고 남아프리카공화국산 다이아몬드만 취급한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다이아몬드는 굉장히 환금성이 떨어지는 물건이다. 세공, 장식, 판매의 중간 유통 과정에서 비용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인데 그래서 다이아몬드를 되팔면 최소 절반밖에 안 되는 가격을 받게 된다.[* 물론 대부분의 국가는 소비자보호제도를 실시해서 그런 경우 전액을 환불받는다. 시장에 정부의 개입이 없을 때의 가정이다.] 가장 환금성이 좋은 금도 팔 때는 살 때보다 10% 가까이 까고 주는데, 다이아몬드는 그나마 나석은 좀 돈을 받는데, 반지나 목걸이로 만든 것은 더 떨어진다. 비자금용으로 두기 위해서라면 다이아몬드를 사지 말고 그 값어치의 금괴를 사라. (가격 대비 크기가 매우 작고, 금속탐지기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장점은 있다.) 세계 다이아몬드 거래는 [[벨기에]]의 [[앤트워프]]에서 대부분이 이루어지며 원석의 80% 가공 다이아몬드의 50% 거래가 앤트워프에서 이뤄진다. 그러다보니 1억 달러에 달하는 절도 사건이 발생하기도. [[안트베르펀 다이아몬드 강도 사건]] 참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