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다이묘 (문단 편집) == 상세 == 다이묘라는 칭호는 본래 '오오나누시'([ruby(大,ruby=おお)][ruby(名,ruby=な)][ruby(主,ruby=ぬし)])라는 단어가 변화하여 생겼다. '나누시'란 말 그대로 '이름을 가진 자', 즉 봉건사회에서 제대로 된 [[성씨]]를 칭할 수 있는 한 마을의 실권자를 뜻하고, 여기에 '크다'는 의미가 붙어 규모가 커지면 지방에서 세력을 떨치는 [[호족]]을 가리키는 말이 된다.[* 본래 성씨란 중국, 한국과 같은 방식이었고, [[헤이안 시대]]의 성씨들은 대개 [[겐지]], [[헤이케]] 하는 식으로 그저 성씨일 뿐이었지만, 봉건사회가 성립되면서 [[서양]]에서처럼 '''자신이 소유한 장원과 영토의 이름을 따서''' 성씨를 지었다. 본래 쓰이던 성씨가 씨(氏)라면 새로 등장한 봉건사회의 이름은 '묘지'(苗字)라고 불렸고, 이후 성씨는 아주 고상하게 이름을 부를 때나 사용되었다. 가령 겐지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옛날스럽게 호칭하면 '미나모토노 이에야스'다. 일본인의 성씨에 밭 전(田)이나 들판 원(原) 같은 한자가 많은 것도 이렇게 지명에서 유래한 '묘지'이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치자면 홍길동이란 성명은 족보상이나 공식 석상에서나 쓰고 평소에는 본관을 성씨 대신 써서 남양길동이라 불리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이것이 [[막부]]가 성립하고 무가사회가 되면서 많은 봉토와 부하를 거느리는 무사를 가리키는 의미가 되었다. 일정한 크기의 영토 이상을 소유하지 못한 작은 지역의 영주는 '쇼묘'(小名)라고 불렸다. 다이묘는 다스리는 영지의 쌀 생산량으로 구분되는데 이를 '[[고쿠다카]]'(石高, 석고)로 부르고, [[에도 시대]]에 이르러서는 고쿠다카 1만 석 이상은 다이묘, 그 미만은 [[하타모토]](旗本)라 부르게 되었다. 1석은 쌀 150 kg 으로 통상 성인 1인의 연간 쌀 소비량으로 여겨진다. 영주가 농민으로부터 징수하는 세율은 [[전국시대(일본)|센고쿠시대]]에는 약 2/3(67%)로 대단히 세율이 높았다. 이 세금의 절반 정도는 막부의 수장인 쇼군에게 바치고, 나머지 절반으로 영지와 군사를 운영했다. 즉 농민:영주:쇼군이 3:3:3으로 분배한 것. 나중에 평화가 정착되자 6공 4민으로 낮아지고 안정으로 인구가 늘고 경제가 좋아지자 번에 따라서 5공 5민이나 에도시대 말기에는 4공 6민이 확산되었다. 그래서 에도시대에 4공 6민하는 번은 선정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메이지 시대에는 30% 정도로 낮아졌다. 1만석의 다이묘는 약 250명의 병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사정에 따라 군사력은 편차가 커서 평화시에는 100명 정도로 낮을 때도 있었다. 대략 성인 인구의 1~2.5%를 징병했다고 볼수 있다. 1석을 생산하는 토지는 현재가치로 약 10만 엔의 값으로 거래되었다. 1만 석의 토지면 약 10억 엔이라고 볼 수 있다. 다이묘가 거느린 [[사무라이]]는 다이묘로부터 봉급을 받았다. 대략 10% 정도는 고위 관료로 직접 다이묘의 영지의 일부를 할당받아 그 영지에서 나는 쌀과 농작물을 받을 수 있었고, 80% 정도는 매년 3차에 걸쳐 다이묘의 창고에서 쌀 섬을 분배받았으며, 10~20% 정도의 하급무사는 금화 등 돈으로 봉급을 받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인자가 되어 처음 일본 전국의 생산량을 조사했을 때 일본의 고쿠다카 총합은 대략 1,850만 석이었다고 한다. 또 전력을 다해 병력을 끌어 모으면 대략 30~40석당 병사 한 명이 나왔다고. 하지만 그렇게 하면 [[대한민국 국군]] 수준으로 병력 밀도가 높아져 생업에 지장이 생기기 때문에 평상시에는 100석당 병사 한 명선을 유지했다.[* 좀 더 세심하게 따져보면, 당시 일본에서 쌀 1석은 성인 남성 1명이 1년간 먹는 양에 해당하는 단위였으므로 [[고쿠다카]] 1석은 곧 인구 1명의 부양력이라고 봐도 큰 무리는 없다. 이 기준에서 보면 100석당 병사 한 명(인구의 1%) 선이던 평시의 병력 비율이야말로 대한민국 국군 수준과 비슷한 수준이고, 전력을 다해 30~40석당 한 명 기준으로 끌어모을 경우 병력 비율이 인구당 2~3% 수준으로 대한민국 국군의 병력 밀도보다 훨씬 높고, 북한군의 병력 밀도에 상당히 근접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