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다신론 (문단 편집) === 다신교는 관용적인가? === 일각에서는 '다신교는 여러 신들, 신앙을 인정하는 태도를 지니기 때문에 다신교가 유일신교 또는 이신교보다 다른 종교나 외국 선진 문물에 관용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이라는 생각을 갖기도 하는데, 이는 언제나 사실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특정 종교의 관용적 특성 여부는 해당 종교의 교리나 그 종교를 가진 사회/역사의 특성에 따른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 봐야 정확하다. 단적으로 현대 인도에서 득세하는 [[힌두교]] [[근본주의]]자들만 봐도 '다신교이기 때문에' 유일신교보다 마냥 관용적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고정관념]]임을 알 수 있다. 과거 역사속의 유명한 다신교 국가였던 [[로마]]는 피지배민족의 종교에 관용적이었지만, [[드루이드]]를 탄압하는 등 무조건적으로 모든 종교에 관용적이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로마 제국이 드루이드를 탄압한 것은 로마에 저항하는 켈트계 민족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반체제적인 면이 있었으므로 종교적 이유보다는 정치적인 이유로 탄압했다.[* 드루이드의 경우는 인신공양을 했기 때문에 이를 금하던 로마에서 탄압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정말로 드루이드가 인신공양을 했는가, 에 대해서 이견이 존재하고 마찬가지로 인신공양을 하는 다른 종교에 대한 탄압이 없었던 점, 그리고 로마인들 또한 위기상황에서는 인신공양을 한 사례가 있는 점을 들어서 회의적 시각이 있다.] [[갈리아]]와 [[브리타니아]]가 완전히 로마제국에 편입된 뒤에는, 위 정치적 탄압을 제외하면 켈트교를 탄압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료가 너무나 많다. 로마 제국 시절 갈리아와 브리타니아의 목욕탕이나 검투장 등의 유적에서 켈트 신화 석상, 벽화, 유물등이 수도 없이 발굴되었다. 탄압은 커녕 로마제국 신화와 켈트 신화가 서로 융합된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이를 일컬어 갈로-로망스교(gallo-roman religion)라고 부르기도 한다.] 태양의 신이나 전쟁의 신 등은 로마 신화에도 있으니 로마인들이 일부러 켈트신을 믿을 필요는 없었지만, [[말(동물)|말]]과 관련된 신은 로마 신화에 없었다. 그러다 [[로마군]] [[기병]]들이 '켈트인들은 [[에포나]]라는 말의 [[여신]]을 믿는데 우리도 한 번 믿어볼까?' 하던게 시초로 다른 지방에 주둔하던 로마군 기병들 사이에도 에포나 신앙이 퍼졌고, 나중에는 로마제국 전역에서 마부, 마굿간지기 등 말, 당나귀, 노새등에 관련된 직종의 사람들이 에포나를 섬기게 되었다. 심지어 [[시리아]]인 중에도 에포나를 믿는 사람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이렇게 켈트의 신이 로마신화에 편입된 것이다. 켈트인 또한 로마 신화의 영향을 받아서 [[메르쿠리우스]]나 [[아폴로]]같은 로마신들에게 켈트신화의 여신들을 짝지워주기도 했다. 이런 일은 유일신교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다신교는 관용을 '''금지하는 교리가 없다'''. 즉 기독교나 이슬람교처럼 타 종교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배척하는 교리는 없다. 따라서 다신교 문명은 관용적일수도, 불관용적일수도 있지만, 일신교 문명은 엄밀히 말하자면 교리상 '''관용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동아시아에서는 [[삼무일종법난]]같은 종교 탄압사가 없지는 않았지만 서양과 중동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심지어 조선의 [[숭유억불]]마저 그들에 비해선 다소 온건했다.] 예를 들어 고대에는 '''다신교를 믿는 피지배 민족이 지배민족의 신을 자기들도 신앙해주는''' 형태로 제국이 유지되는 경우가 많았다. 말하자면 로마 지배하의 [[이집트]]나 [[그리스]]가 로마의 신들을 자기들이 믿는 신과 동일시 하거나 자기들 신화에 한자리 끼워주는 형태로 나갔던 것이다.[* 예를 들어 오이디푸스 설화에서 스핑크스가 갑툭튀하는 것이 이러한 면모의 흔적이다.][* 다만 이런 식의 행보는 일신론적 종교나 그런 곳과 무관한 역사에서도 자주 보인다.] 다신교 국가라고 해도 대부분의 경우 국가적으로 높이 치는 신은 10여개 이상, 특히 중요하게 여기는 '최고 주신'은 한 신과 그 배우자 정도를 넘어서지 않았다. 단지 특정 지역에서 믿어지는 신이나, 일부 분야만을 관장하는 신이 별다른 탄압을 받지 않고 모두 다 같이 '신'이라고 존중되었을 뿐이다. 이런 식으로 다신교 국가들끼리는 신화체계에서 한 자리 끼워주거나 동일시하는 것으로 지배국가의 지배를 인정했다. 반면 [[기독교]]나 유대교가 로마에 박해를 당했던 것은, 이와는 정반대로 자신들이 믿는 신을 하나만 인정하는 종교를 이해하지 못하고 '지배에 저항한다'는 의미?'으로 받아들인 면이 있다.[* 다만 교리에 대한 무지도 있으려니와 애초에 다신론과 일신론이 같이 가기 어렵기도 하다. 다신론에서는 일신론을 굳이 공격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일신론은 태생적인 특성상 다신론에게 비판적일 수 밖에 없고 결국은 갈등을 낳을 수 밖에 없다. 당장에 무함마드가 헤지라 전, 메카에서 받는 고난의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유대교의 예를 들자면 오히려 일부 유대인들은 마카베 왕조를 무너뜨린 반쪽 유대인 [[헤롯]] 왕가[* 헤롯은 본래 정통 유대인이 아니라 오늘날의 요르단에 해당하는 [[에돔]] 지방, 이두매인 출신이다. 본래 유대인이 아니었던 이들은 마카베 왕조에 정복당한 후 유대교를 받아들여 유대인이 되었다. 그나마 이 시기에는 에돔인도 유대인에 동화되었기에 헤롯이 정통 유대인들과 완전 남이 아니었기에 유대인의 왕이라 해도 되었을 뿐이다. 실제로도 혈통이 어쨌든 헤롯 왕가는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는 등 유대교에 친화적이었다.]보다 로마의 직할지가 되기를 더 바랬을 정도 였으나, 로마가 자기들의 상징물인 독수리 군기를 성전에 부착하거나 로마 신앙을 강요하자 반란이 일어난 것.[* 유대인이 박해당한 것은 병역과 세금을 거부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성경의 유명한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라는 말은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야 하느냐는 질문(함정의 의도가 있었다)에 대한 답인데, 한마디로 세금을 내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유대인들이 많았다는 것(...) 병역이야 뭐 말할 것도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