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니탕개 (문단 편집) == 생애 == [[조선]]에 귀화해 [[4군 6진|6진]][* [[종성군|종성(鐘城)]], [[온성부|온성(穩城)]], [[회령시|회령(會寧)]], [[경원군|경원(慶源)]], [[경흥부|경흥(慶興)]], [[부령군|부령(富寧)]]]에 드나들었고 [[조선]]에서는 후하게 대접했는데, 1583년 2월 1일에 [[우을기내]]가 군사를 일으키자 니탕개는 율보리와 함께 호응했는데, 7일에 경원, 아산보 등을 포위하고 9일에는 경원부, 안원보 등을 함락했다. 니탕개는 10여 기를 보내 [[사람]], [[가축]]을 [[약탈]]해 [[조선군]]을 시험했고 5월 1일에 율보리와 함께 1만여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종성의 요새지로 들어가 강 여울에서 조선군을 격파했으며, 성을 포위했지만 [[신립]]의 구원군이 도착하자 도망갔다가 강까지 추격받았다. 5월 17일에 조선군이 성에 올라 지키고 있다가 대포를 쏘자 퇴각했으며, 또한 효정이 니탕개와 원수의 사이라 니탕개가 비운 틈을 타 군대가 머무는 가옥들을 모조리 불태우면서 할 수 없이 군대를 철수해 강을 건넜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조선의 장군인 [[신립]]에게 붙잡혀 [[죽음|죽임]]을 당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