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니가타현 (문단 편집) == 역사 == 예로부터 면적이 넓고 곡창지대다 보니 인구가 많았다. 이를 기반으로 전국시대에 이 곳을 다스린 [[우에스기 겐신]]이 '에치고(越後)[* 니가타현 본토에 있었던 옛 [[율령국]]]의 용' 또는 군신이라는 이름으로 위명을 떨치기도 했다. 1876년 [[폐번치현]] 당시에 다른 현들이 전부 통합되면서 니가타현이 성립될 당시까지도 일본에서 가장 인구가 많았던 지역이었다.[* 1790년부터 약 백 년 동안 [[도도부현]] 인구 1위를 놓치지 않았다.] 또한 혼슈 북부 해안, 즉 [[동해]]를 접한 일본 지역중 유일하게 사람이 살만한 지대다보니 항구도 발달해서, [[재일교포 북송]]은 물론, [[블라디보스토크]]를 접한 러시아와의 교역 규모도 니가타항이 제일 컸다. 한편 서쪽에 위치한 [[사도섬]]에서는 금은이 발견되어 에도시대부터 중요한 광산 구실을 하였다.[* [[https://ko.wikipedia.org/wiki/%EC%82%AC%EB%8F%84_%EA%B8%88%EA%B4%91]]] 관련 내용으로 세계유산 등재를 시도 중인데, 일제강점기에 조선인이 1천 명 이상 징용된 것으로 분석한 내용도 있어서 향후 세계유산 등재 관련 외교적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https://www.yna.co.kr/view/AKR20200630099600073]]] 기어이 등재한다면 [[군함도]]처럼 징용 사실을 밝히는 조건으로 등재할 가능성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