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능지형 (문단 편집) == 능지형의 형제들 == 한국 역사에서는 [[공민왕]] 때부터 능지형에 대한 기록이 있으며 특히 [[조선]] [[태종(조선)|태종]], [[세조(조선)|세조]], [[연산군]], [[광해군]] 때에 많이 집행되었다고 하는데, 중국과 달리 거열형으로 대체했고 그 방식도 대부분 사형 자체는 참수형으로 집행하되, 시신을 절단하는 과정만 추가하는 것으로 마지막 모습만 능지형 비슷하게 하고 실제로는 고통을 덜어주는 형태였다.[* [[팽형]] 항목에서도 알 수 있듯, 조선은 참혹한 형벌은 가능한 한 사용하지 않은 국가였다.] 또한 살아있는 죄인을 토막내는 것 외에 이미 죽은 죄수의 시체를 토막내 공공장소에 전시하는 형벌도 능지라고 하였는데, 후자의 대표적인 예는 상하이에서 암살당한 후 본국으로 이송되어 토막난 [[김옥균]]을 들 수 있다. 죄인의 시체나 목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형벌을 실질적으로는 [[효수|효시]](梟示)라고 부른다. [[야사(역사)|야사]]인 [[청성잡기]]에 의하면 인조 시절 권신 [[김자점]]이 역모를 일으킨 과거 반정 공신인 심기원을 잔혹하게 처형해야한다면서 기존의 방법인 시체 상태에서 능지형을 집행하지 않고 '''"저 놈은 산 채로 팔, 다리를 절단한 뒤 머리를 잘라 죽여야한다!"'''--쏘우 랙 트랩--라고 주장했고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김자점의 권세가 워낙 엄청나던 시절이라 심기원은 그대로 형이 집행되었다. 그러자 심기원은 죽기 전 분노에 차서 '''"너도 똑같이 될 것이다. 이놈아!"'''라고 외치며 죽었고 훗날 김자점은 반역자가 되어 [[효종(조선)|효종]]의 명령으로 능지형에 처해졌다. 그래도 김자점은 규정대로 처형되었고 김자점이 처형된 직후 능지형은 다시 폐지되었다고 한다.[* 김자점의 능지형을 전 [[드라마]] [[궁중잔혹사 꽃들의 전쟁]]에서 팔다리부터 잘라내도록 지시하는 것으로 나왔는데, 실제 그렇게 집행되었으면 기록에 남았을 것이다. 별다른 언급이 없는 걸 보면 원칙대로 참수형을 집행한 뒤, 시신을 절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러한 형벌이 시행된 경우는 역사적으로도 드문 편이었으며 [[인조]] 때부터는 금지했다. 대신 참수형을 집행한 뒤 시신을 훼손하는 방식의 처형을 추가하여 역적에 대한 처벌수위를 높였는데, 어차피 이전에도 간판만 능지형으로 달고 실제로는 이렇게 집행했으므로 의미는 없다. 갑오개혁이 이뤄진 후 모든 사형을 교수형, 총살형으로 대체하게 되면서 참수형 자체가 없어짐과 함께 완전히 폐지되었다. 한편 서양 세력이 중국으로 들어온 이후 유럽인들은 능지형을 중국의 야만성을 대표하는 예로 들었다.[* 이는 티모시 브룩, 제롬 부르곤, 그레고리 블루 등이 지은 책에 잘 나와있다. 너머북스에서 번역본이 나왔는데 제목은 능지처참.] 그런데 [[영국]]에는 거열형과 비슷한 형벌이 실존했었다. 바로 ''''교수척장분지형''''(Hanged, drawn and quartered)으로, [[http://www.wired.com/science/discoveries/news/2007/10/dayintech_1003|묘사 장면은 여기서 볼 수 있다]]. 국가에 대한 남성 반역죄인에게 행해지는 형벌로[* 참고로 여성 반역자는 교수척장분지형 대신 화형을 당했다.] 처음에 목을 매달아 죽기 직전 상태까지 만든 후 내려주고, 이후 칼로 죄인의 장기나 생식기를 차례차례 잘라 [[불]]에 구워 그것을 죄인 스스로가 지켜보게 한다. 그리고 [[참수형|목을 베고]] 마지막으로 칼이나 말로 사지를 찢는 [[오체분시]]로 몸을 찢는다. 경우에 따라 참수가 제일 마지막에 행해지기도 한다. [[가이 포크스]]가 이 형벌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러나 형벌을 받기 전에 고문을 너무 많이 당해서 집행 중에 죽었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에서 붙잡힌 윌리엄 월레스가 실제로 이 방식으로 처형당했다. [[튜더스]] 시즌 4의 5화에도 같은 방식의 처형을 볼 수 있다. 단, 거기에선 사지가 잘리는 것까지만 표현되어 있다. '''참고로 둘 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영문 위키에는 아예 교수척장분지형을 당한 사람에 대한 리스트가 있을 정도(...). 이 끔찍한 처형법은 18세기 말 대역죄인도 교수형을 하도록 하는 법이 생김에 따라 영국 땅에서 사라지게 된다. 또한 프랑스에도 비슷하게 범죄자의 신체를 공개적으로 심하게 훼손하는 형벌이 있었는데, [[루이 15세]]의 암살 미수범 [[로베르프랑수아 다미앵]]에게 가해진 사형판결문에는 다음과 같이 사형방법을 매우 상세하게 지시하고 있다. >"손에 2파운드 무게의 뜨거운 밀랍으로 만든 횃불을 들고, 속옷 차림으로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의 정문 앞에서 사형수 호송차로 실려와, 공개적으로 사죄를 할 것. 다음으로, 상기한 호송차로 그레브 광장에 옮겨간 다음, 그곳에 설치될 처형대 위에서 가슴, 팔, 넓적다리, 장딴지를 뜨겁게 달군 쇠집게로 고문을 가하고, 그 오른손은 국왕을 살해하려 했을 때의 단도를 잡게 한 채 유황불로 태워야 한다. 계속해서 쇠집게로 지진 곳에 불로 녹인 납, 펄펄 끓는 기름, 지글지글 끓는 송진, 밀랍과 유황의 용해물을 붓고, 몸은 네 마리의 말이 잡아끌어 사지를 절단하게 한 뒤, 손발과 몸은 불태워 없애고 그 재는 바람에 날려 버린다."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1장) [[기독교]] 문명권은 아니지만 북유럽의 [[바이킹]] 문화권에서는 사람을 산 채로 등 쪽에서 해체하던 [[피의 독수리]]라는 형벌이 존재하기도 했다. [[자무카]]가 [[칭기즈 칸]]에게 잡혔을 때 자신을 이 형벌로 죽여달라고 했다고 한다는 말이 있으나, [[몽골인]]들의 세계관에 따르면 피를 보지 않고 죽는 것이 영적으로 가장 좋으며 반대로 최악은 물 또는 기름에 익사하는 것임을 감안할 때, 칭기즈 칸을 비하하고 몽골인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를 위해 넣은 엉터리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인지 정반대로 가죽푸대에 넣어서 말에게 밟혀죽거나 아니면 푸대에 넣은 채로 질식사 같은 식으로 '피를 흘리지 않는' 다른 방법으로 죽였다는 기록이 위인전이나 다른 창작물에 더 자주 나온다. 몽골인들도 이것을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