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태우 (문단 편집) == 어록 == 시대순으로 배열하며, 일부 맞춤법은 현행에 맞춰 고쳤다. >'''"공산화가 되더라도 민족통일만 이루었으면 좋겠다는 감상적인 생각을 가진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대사를 돌이켜볼 때 공산침략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온 수십만 형제들의 소망과 울부짖음을 절대로 외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 >1987년 8월 18일 대학생과의 대화 >'''"우리에게는 세 가지 한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가난이었고 둘째는 무지였고 셋째는 외침으로 인한 핍박이었습니다. 지금 소득분배의 불균형에서 오는 상대적 빈곤감 때문에 갈등이 일어나고 있지만 빈곤과 무지와 외침으로 인해 맺힌 한은 어느 정도 풀었습니다. 이런 한을 푸는데 급급한 나머지 민주발전은 뒷전에 처지고 만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 시급한 것은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일입니다. 민주주의는 모두가 권리와 자유를 골고루 나누어 갖는 일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 >1987년 8월 18일 대학생과의 대화 >'''"한국에 있어서 [[민주주의]]의 역량이란 다름아닌 [[극단주의]]를 견제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극우]]이든 [[극좌]]이든 극단주의는 민주정치 발전과정에 대한 최대의 적입니다."''' >---- >1987년 9월 16일 미 내셔널 프레스클럽 연설 >'''"남북문제의 원칙은 ①긴장완화 ②평화공존 ③평화통일입니다. [[1988 서울 올림픽|올림픽]]을 치르고 나면 남북한 간에 국력의 격차도 생기고 주변의 변화도 올 것입니다. 올림픽을 치르면 우리는 '큰형'의 입장에서 북한과의 대화를 활발하게 촉진시켜 나갈 것입니다."''' >---- >1987년 9월 19일 일본 기자클럽 회견 >'''"대기업 위주로 경제를 운영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봅니다. 방향전환이 필요해요. 사실 대기업들은 정부지원을 많이 받았어요. 이제는 기업의 도덕성을 강조해야 합니다. 정부지원을 많이 받은 만큼 이를 사회에 환원시킬 시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 >1987년 10월 29일 [[매일경제신문]] 기자와의 인터뷰 >'''"보통사람의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경제정의가 확실히 실현돼야 하며 계층간 지역간 격차의 완화를 위한 차원높은 시책이 이제부터 다듬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1987년 11월 10일 기자회견 >'''"[[6.29 선언]]에 대해 국민들의 요구에 굴복하지 않았느냐 항복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에 대해 저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국민들에게 굴복했습니다. 항복했습니다. 국민들이 원한다면 한번이 아니라 수백번이라도 항복을 해야죠."''' >---- >1987년 11월 12일 관훈토론회 >'''"만약 제가 집권할 때는 그야말로 부조리를 나로부터 척결한다는 것을 내정 제1의 지표로 삼고자 합니다."''' >---- >1987년 11월 12일 관훈토론회 >'''"'보통사람'이란 잘난 것도 없지만 부끄러운 것도 없는 사람, 뽐낼 것도 없지만 꿀릴 것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싫어하는 것은 뽐내는 사람, 돈 있다고 해서 날뛰는 사람, 또 너무 많이 배웠다고 해서 독불장군인 사람입니다."''' >---- >1987년 11월 12일 관훈토론회 > '''"나 이 사람 보통 사람입니다. 믿어주세요."''' > ---- > 13대 대통령 선거 당시에 선거 유세에서의 발언 >'''"민주 [[광주직할시]]민여러분! 진정합시다![br]이 노태우는 이미 [[6.29 선언]]에서 국민의 뜻에 따라 항복할 것을 결심한 사람입니다. 국민의 뜻에 이 사람은 따랐고 항복한 것입니다.[br]그러나 시민여러분! [[화염병]]과 돌이라는 폭력 앞에는 절대로 굽히지 않을 것입니다.[br]여러분이 던지고 있는 화염병과 돌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화염병이며, 민족을 분열시키는 돌멩이입니다.[br]이 노태우, 한 사람의 희생으로 우리의 민주화와 우리의 화합이 이룩될 수만 있다면 이 한 몸 언제고 제물이 될 것입니다.[br]여러분 다시 한 번 자제할 것을 호소합니다. 모든 모순된 감정을 누르고 우리 모두 화합합시다. 우리가 나아가는 화합의 길, 민주발전의 길은 아무도 가로막지 못합니다.[br]여러분 우리 모두 다 같이 [[애국가]]를 부릅시다.[br]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 >1987년 11월 29일 [[광주광역시]] 유세 중 폭력시위대와 조우하자 >'''"이 작은 땅덩어리에 남북이 갈라진 것도 서러운데 지역 따라 쪼개지고, 종교 따라 갈라지고, 남자와 여자 다 차별하고, 정말 보통 일이 아닙니다.[br]이렇게 쪼개지면 아무 것도 못합니다.[br]먼저 사람을 쓸 때 지역출신을 묻지도 상관하지도 않고 능력 위주로만 기용할 것입니다.[br]이 노태우는 [[6.29 선언|6.29 정신]]을 바탕으로 집권 후 최우선적으로 [[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특별위원회|광주문제 해결]]에 심혈을 기울일 것입니다.[br]이제 우리 서로 용서하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돕는 대화합의 시대를 열어 나아갑시다."''' >---- >1987년 11월 29일 광주광역시 유세 중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어느날 갑자기 일어나는 일이 너무 잦아 성실하게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도 했습니다. 이 노태우가 당선되면 어느날 갑자기 식의 변동과 불안을 없애겠습니다. 자신의 미래를 안심하고 설계하고 또 설계한 대로 실현되는 '믿음사회'를 만들겠습니다."''' >---- >1987년 12월 12일 서울 여의도 유세 >'''"저는 [[노태우 정부|새 공화국 새 정부]]를 [[민주정의당|민정당]]의 단독정부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민적 갈등과 대립을 해소시켜나가는 전 국민의 화합정부라고 믿고 있습니다."''' >---- >1987년 12월 17일 대통령 당선 인사 >'''"이제 우리가 나갈 길은 명백합니다. 우리는 먼저 권위주의 체제의 껍질을 모두 철저히 깨뜨리는데 앞장서야 하겠습니다. 구시대적인 권위주의로써는 우리 4천만 국민의 우수한 창의력과 탁월한 근면성을 발휘하게 할 수 없습니다. 국민의 자발적 참여와 헌신적인 봉사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 >1988년 1월 15일 창당기념식 >'''"우리 정부는 국민의 의견을 최대한으로 수렴하여 국민들의 국정 참여의 폭을 외교 측면에서도 확대해 나갈 것입니다."''' >---- >1988년 2월 4일 외교사절단 초청인사 >'''"물가의 지속적인 안정이 모든 경제정책 목표 달성의 대전제라는 점을 명심하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물가 안정의 기조를 유지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주기 바랍니다. 선거기간 중 국민에게 공약한 조화된 사회·경제의 형평 이룩 등은 물가의 안정에 바탕을 두지 않고서는 이뤄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 >1988년 2월 4일 경제장관에 대한 지시 [[http://m.mk.co.kr/onews/1988/923269|출처]] >'''"부의 부당한 축적이나 편재가 사라지고 누구든지 성실하게 일한 만큼 보람과 결실을 거두면서 희망을 갖고 장래를 설계할 수 있는 사회가 바로 ‘보통사람들의 위대한 시대’입니다.[br]이 나라에 보탬이 되는 일이라면 어느 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보통사람들의 시대’가 왔습니다."''' >---- >1988년 2월 25일 대통령 취임식 연설에서 >''''나는 제24회 근대 올림픽 대회를 경축하면서, 서울 올림픽 대회를 개최하는 것을 선언합니다.'''' >---- >[[1988 서울 올림픽]] 개회 선언 >'''"전쟁의 참화와 분단의 고통을 당해온 우리가 이제 화해와 평화의 횃불을 온 인류의 가슴속에 지폈습니다."''' >---- >1988년 ‘서울올림픽 폐막에 즈음해 국민께 드리는 감사 말씀’에서 >'''"물, 그것은 마시면 들어가고 흘리면 떨어집니다. 그러나 그 물 한 방울 한 방울이 모여 큰 [[바다]]를 이루는 과정을 보면 물의 힘은 참 크지요. '물대통령'이란 별명 참 잘 지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 >1989년 [[프랑스]] 교민 리셉션 중 별명 "물태우"를 가지고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글라스노스트/페레스트로이카|신사고]]에 의한 개혁이 세계를 변화시키고 있는데 [[히말라야 산맥]]이 높아서인지 [[한반도]]에는 아직 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럽만이 아니라 이 지역에도 개방과 개혁의 물결이 오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1990년 한ㆍ소 정상 간 대화 >'''"[[북방정책]]이라는 것은 가까운 길이 막혀서 도저히 갈 수 없다면 우회를 해서라도 가려는 것입니다. 더 먼 길이라고 하더라도 도중에 가시밭길이 있어 다리에 피가 나더라도 그것이 통일로 이르는 길일 때에는 우리는 서슴지 않고 가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나의 [[북방정책]]의 기본 구상이며, 철학이기도 합니다."''' >---- >1990년 MBC 창사 기념 특별회견에서 >'''"페어플레이를 벌여야 할 경기장에서 난동을 부린 행위는 어떤 이유에서든지 용납될수 없으며 특히 올림픽까지 치른 나라에서 이같은 행위는 더욱 용납될 수 없다. 민주주의는 법과 질서를 바탕으로 해야 함에도 폭력을 행사하고 폭력으로 자기 목적을 달성하려는 풍조는 뿌리 뽑아야 할 것이다. 관련자를 가려 법에 따라 엄정 처리하라."''' >---- >1990년 [[잠실야구장 패싸움 사건]] 보고를 받고 >'''"첫째는 저는 우리의 공동체를 파괴하는 범죄와 폭력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고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의 모든 권한을 동원해서 이를 소탕해나갈 것입니다. 둘째는 민주사회의 기틀을 위협하는 불법과 무질서를 추방할 것입니다. 셋째는 과소비와 투기 또 퇴폐와 향락을 바로 잡아 일하는 사회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 >1990년 10월 13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우리가 [[유엔]] 가입을 신청한 지 42년 8개월, 오랜 기다림 끝에 회원국이 됩니다. 이제 남에 의해 우리의 운명이 결정되던 어두운 타율의 역사는 끝이 났습니다."''' >---- >1991년 [[시애틀]] 교민 오찬 연설에서 >'''"국회는 어디까지나 여당이 이끌어 나가는 '[[여의도]]'가 되어야지, 야당에 끌려 다니는 '야의도'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 지난날 [[여소야대]]의 국회가 주는 교훈입니다."''' >---- >[[3당 합당]] 후인 1992년 제14대 총선 민주자유당 공천자 공천장 수여식 자리에서 >'''"[[문화대혁명|문화혁명]] 때 수천만 명이 희생 당하고 엄청난 걸로 말하자면 우리 [[광주사태]] 저거는 아무것도 아니야..."''' >---- >1995년 10월 5일, [[서울신라호텔]]에서 열린 [[경북고등학교]] 동창회 중(...) >'''"안 준다."''' >---- >-1996년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사건/재판|내란혐의로 재판]] 과정에서 상봉한 [[전두환]]이 [[계란 후라이]]를 묻자(...) >'''"사람들은 이제 고물딱지로 쓰레기통에 버렸겠지만, 10년 전의 오늘 6·29는 나에겐 목숨보다 소중한 길이 물려줄 보물이었다."''' >---- >1997년 6월 29일, 수감생활 중 쓴 일기에서 >'''"[[전두환|전 대통령]]의 성격은 [[불|일이 벌어지면 누구보다 먼저 뛰어나가는]] 스타일입니다. 그런데 열심히 뛰다 보면 기회도 많지만 자칫 남과 충돌할 수도 있고, 고립될 수도 있고, 쓰러질 수도 있지 않겠어요? [[물|그렇게 쓰러지지 않도록 중심을 잡는 것]]이 내 역할이었다고 봅니다."''' >---- >1999년 9월 [[월간조선]]에 실린 노태우 육성 회고록 중 전두환과의 관계에서 >'''"13대 대통령 노태우, 5.18 민주영령을 추모합니다."''' >---- >2020년 아들 [[노재헌]] 변호사가 헌화한 조화 리본 문구.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겸허하게 그대로 받아들여, 위대한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어서 참으로 감사하고 영광스러웠다.[br]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그럼에도 부족한 점 및 저의 과오들에 대해 깊은 용서를 바란다.[br]자신의 생애에 이루지 못한 [[남북통일|남북한 평화통일]]이 다음 세대들에 의해 꼭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 >[[유언]]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