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예 (문단 편집) ==== [[성노예]] ==== 이슬람에서 성노예는 적어도 20세기까지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다른 문화권에서 노예는 남자가 많았지만 이슬람에서 노예의 대부분은 여자였다. 쿠란과 샤리아는 성노예의 사용을 공식화하고 후대의 율법학자들도 이를 지지했다. 왕실하렘은 물론 일반가정도 가사와 성적봉사를 제공하는 노예 서넛정도는 두는게 일반적이었다. 부인과 친척의 노예를 돌려쓰는 경우도 흔했다.[* 율법상 노예와의 간통은 채찍형으로, 자유민과의 간통은 투석형으로 처벌되어야 했지만 둘다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노예는 이슬람으로 개종해도 노예였다. 남자가 소유할 수 있는 성노예의 수에는 제한이 없지만 여자가 성노예를 두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성노예는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고 종류와 역할도 매우 세분화되어 있었다.[* 일부는 아주 어린 나이에 성노예로 육성되기도 했다. 이런 성노예는 비싼 값에 팔렸다.] 성노예를 빌려주고 돈을 받는 사업도 성행했다. 이슬람 초기 성노예는 자유롭게 매매될 수 있었고 노예의 아이도 노예였지만 후에 법이 개정되면서 주인의 아이를 낳은 움왈라드는 매매가 불가능해진다.[* 주인의 아이를 낳는다고 자유민이 되는 것은 아니고, 주인이 결혼을 통해 해방시켜주거나 죽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물론 흑인노예의 아이들은 얄짤없이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대대손손 노예로 부려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를 무왈라드라고 한다.[* 무왈라드가 해방되도 무왈라드의 자식은 노예였다.] 이슬람 법학자들은 무왈라드가 친자식과 산파와 함께 주인의 아이를 낳은 것을 증언하면 움왈라드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했지만 자유민 여성도 외출이 자유롭지 않은 마당에 성노예가 증인을 데리고 나돌아다닐 수 없었으므로 유명무실한 조항이었다.[* 율법상 노예는 재산으로 취급되었고 매매시 품질을 검사받아야 했기에 얼굴과 몸을 가리지 않아도 되었다. 이를 통해 자유민과 노예를 구별할 수 있었다.][* 노예를 실은 배가 풍랑을 만나면 화물을 버려서 가볍게 해야 했다.] 물론 피임을 하는 편법도 있었다. 저명한 이슬람 법학자 알 가잘리는 성노예의 상품성을 유지하기 위한 피임을 권장했다.[* 이슬람에서 피임은 불법이 아니다.] 이슬람 법학자들은 불임이거나 월경을 안 하는 척하는 노예들이 많으니 월경을 눈으로 확인한 후 구입하라고 충고했다. 위의 언급된 오스만 제국과는 딴판인 상황이다. 오스만 제국도 16세기 이후로는 무슬림 인구가 다수인 국가가 되었으나 오스만 제국의 노예법은 노예의 세습을 금지하고 (단 농노와 같이 영주에게 매인 영민들은 존재함) 노예가 이슬람을 받아들인 즉시 자동해방이고, 성노예는 아예 교리상의 해석을 근거로 금지했다. [[하렘]]같은 예외도 있지만 그야말로 예외일뿐 군주를 제외한 사람들에게는 해당사항 없는 내용이다. 애초에 하렘제도는 고대 튀르크인들에게서 이어져온 것으로 이슬람과는 무관한 전통이다. 성노예나 첩을 금지하는 해석은 상호 평등한 신분이고, 상호 자유의지로 동의해 결혼계약을 체결한 부인 4명까지만 허용하는 샤리아법에 근거한 것이다. 말하자면 아랍권의 성노예 관행은 이슬람교가 나오기 이전부터 있었던 아랍권의 악습에서 이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