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예 (문단 편집) == 종류 == 사실 [[고대 로마]]에서도 노예는 그냥 인신의 자유가 없는 사람을 일컫었을 뿐이고 전부가 하급 육체 노동자는 아니었다. 고도의 기술을 가진 학자와 기술자 집단인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물론 그런 노예는 주로 [[그리스인]]이었다. 로마 귀족 자제에게 기초 교양인 [[리버럴 아츠]]를 가르치는 것은 거의 그리스인 노예 [[강사]]였으며 귀족의 대리로 상업활동을 하거나 토목, 건축, 미술 분야에서 전문인으로 활동하였다. 심지어 주인에게 명을 받아 배를 지휘하는 노예 선장이 자유민 선원을 부리는 경우도 있었다. [[고대 그리스]] 시대, 로마 시대의 노예는 사유재산과 가족을 가질 권리가 있었으며[* 다만 [[유대인]]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던 모양이다. [[탈무드]]에서 자신이 죽으면 아들이 먼 곳으로 여행간 틈을 타 노예가 재산을 가로채고 도망갈까봐 한 가지를 뺀 모든 재산을 노예에게 준다는 유언을 남겼는데, 돌아온 아들이 [[랍비]]와 상담했을 때 '노예의 재산은 주인에게 귀속되는 것이니 노예를 물려받는다 하면 되지 않느냐'고 답변했고 그대로 행해 재산을 온전히 물려받게 된다.] 일정액 이상의 재산을 모으고 주인에게 돈을 지급한 경우 해방되는 제도가 있었다. 이를 [[해방노예]]라고 불렀으며 이들은 로마의 기술, 경제인으로 활약했으며 [[프리기아 캡|프리기아 모자]]라는 독특한 모자를 썼는데, 이는 [[공화제]]의 상징이 된다. 해방노예의 자녀 대가 되면 온전한 로마 시민권을 받을 수도 있었다. [[성노예]]도 존재했다. 과거에도 광범위했고 현대에도 암암리에 행해지기는 하지만 가장 유명한 건 [[제국주의]] 시대 [[일본군]]에서 운영한 [[위안부 문제|일본군 위안부]]. 군 주도로 전선에다 [[공창]]을 운영한 것인데 여인들에게 사기를 치거나,[* '정신대'라고 해놓고(공장에서 일하는 것이다) 막상 모이니까 위안부로 끌고 가는 일이 빈번했다.] 아예 납치하다시피 해서 여기 투입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이른바 한국 사창가의 '[[인신매매]]' 패턴과 흡사하다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을 정부 주도로 행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