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부히토 (문단 편집) == 전쟁 후, 노년과 죽음 == [[파일:external/www.dainihon-noukai.jp/5_5.jpg]] 전쟁이 끝난 후 [[미군]]이 [[다이쇼 덴노]]의 직계들 이외의 모든 [[황족]]들과 [[화족]]들을 [[황적이탈|신적강하]]시킬 때, 자신의 관저에 미군 간부들을 초청하여 [[쇼와 덴노]]의 의사를 전하고 황실의 유지에도 노력했다. 1970년 [[의민태자]]([[영친왕]])가 사망하자 [[한국]]에 조문을 오기도 하였다. 영친왕비 [[이방자]](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 여사가 일본 방계 황족 출신이고, 형수인 [[고준 황후]]의 사촌 언니이기도 했기 때문. [[1953년]]에 [[야스히토|지치부노미야 야스히토]] 친왕(秩父宮 雍仁親王)이 [[결핵]]으로 사망했을 때, 전염을 우려한 어의가 문병을 극구 반대하여 쇼와 덴노는 동생 야스히토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그것을 후회하면서, 노부히토 친왕이 폐암으로 투병할 때 3차례씩이나 문병을 왔다. 마지막 문병을 갔던 [[1987년]] [[2월 3일]]은 노부히토 친왕이 위독한 상태였다. 당시 쇼와 덴노가 노부히토 친왕을 보았을 때는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고, 쇼와 덴노는 동생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날 오후 1시 10분경 노부히토 친왕은 도쿄의 일본 적십자사 의료센터(日本赤十字社医療センター)[* [[1886년]] [[11월]]에 개원한 일본의 대표적인 병원]에서 사망하였다. 향년 82세. 동년 [[2월 10일]]에 그의 유해는 토시마오카 묘지(豊島岡墓地)[* [[천황]]과 천황의 [[황후]] 이외의 황족들이 묻히는 곳. [[도쿄도]] [[분쿄구]](文京区)에 위치.]에 안치되었다. 쇼와 덴노는 꽤 오랫동안 노부히토의 죽음을 슬퍼했다. 사실 쇼와 덴노와 노부히토는 전후에 관계가 영 좋지 못했다. 사람들이 추측하길 "아마도 쇼와 덴노는 전쟁을 그만두자던 노부히토의 말을 따라서 군부를 적극적으로 대적하지 않았던 것을 줄곧 후회했을 것이고, 노부히토가 화낼 때마다 그를 볼 면목이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 때문인지 실제로 쇼와 덴노는 노부히토에게 비난받을 때마다 별 대꾸도 못하고 조용히 있었을 정도였는데, 그렇게 자신이 저지른 잘못들을 언제나 직설적으로 꼬집고 쓴소리를 해주던 유일한 사람이었던 노부히토가 세상을 떠나자 쇼와 덴노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지난 잘못들도 떠오르며 마음이 무거우면서도 허전했을 것이라는 얘기가 많았다. 오직 노부히토만이 쇼와 덴노의 과오를 곁에서 직접적으로 비판했으니 쇼와 덴노에게 그의 존재는 확실히 남달랐을 것이다. 노부히토가 죽고 2년 뒤인 1989년, 큰형 쇼와 덴노도 노부히토의 뒤를 따라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