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리타(김성근) (문단 편집) == 분석 == '노리타들이 왜 이렇게 김성근에게 집착하는가?'에 대한 분석으로서 이들이 김성근식 야구(그리고 언플)의 '스토리텔링에 빠져있다'는 주장이 있다. 김성근은 항상 일본야구에 대한 동경과 찬양의 정서를 내비쳐왔는데, 여기서 말하는 일본야구는 바로 재일교포 출신인 김성근이 일본에서 성장하던 시기인 1950~60년대의 일본 야구라는 분석이다. 그 당시의 일본야구는 '노력'과 '투혼'을 강조하고, 자신의 몸이 부상을 입거나 한계에 도달해도 '''포기하지 않고 승리를 위해 정진하는 선수들의 투쟁'''이라는 스토리텔링을 대중들에게 선사하였다. 2차대전의 패전으로 전국토가 잿더미가 된 극한 상황에서 믿기지 않는 고도성장을 통해서 [[1964 도쿄 올림픽]]과 [[1970 오사카 엑스포]]를 개최하고 다시금 [[선진국]]에 진입한 일본인들에게 이런 스토리텔링이 먹혀들어가면서 일본야구는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마치 15라운드의 복서가 온 몸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다운에서 일어났을 때 느끼는 감동 같은 것을 야구에서 연출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시즌 중에도 보란 듯이 (효율도 의문인) 고된 훈련을 계속했고, 노력을 끊임없이 강조했으며, 투수 [[혹사]]를 승리를 위한 헌신으로 미화했다. 실제 승리나 훈련과는 거리가 있고[* 다만 당시 상당수 일본야구인들은 실제로 [[지옥훈련]]이 효과가 있다고 '''확신'''했다. 물론 당시 [[스포츠 의학]]과 [[피지컬트레이닝]]이 지금처럼 체계화되지 않은 점은 감안해야 한다.] 그저 대중들의 노력과 투혼에 대한 드라마를 보고자 하는 욕구를 채워줄 뿐이었던 모습이 야구라는 이름으로 행해졌으며 대중들은 그것에 여러가지 의미를 부여하면서 열광했다. 지금도 나이어린 고교 야구선수들을 억지로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붙여 부상과 혹사의 위험에 노출시키면서 작위적으로 감동과 투혼의 드라마를 만들어내고 있는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고시엔]]은 일본에서 국민적인 축제로 받아들여지지만, 정작 야구의 본산인 미국에선 아동 학대 포르노나 다름이 없다고 욕을 먹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1960년대 일본의 프로야구'''는 이런 모습이었고, 김성근이 동경하고 따라하려는 '''일본식 야구'''는 바로 여기서 유래했다는 게 핵심 주장이다. 정작 2000년대 이후의 일본야구는 6일 휴식후 일주일에 한번 등판해서 매 경기 완투를 목표로 던지는 6인 선발 시스템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이에 따라 [[마무리 투수]]를 제외하면 [[불펜]]의 역할은 메이저리그나 KBO에 비해서 현저하게 작다. 오히려 현대 일본야구는 경기마다 130구 내외로 던지는 선발투수의 혹사가 심각해서 문제인 수준이다. 선발은 첫 번째 나오는 투수일 뿐 [[퀵후크]]를 남발하고 잘 던지는 투수일수록 [[불펜]]에 때려박아서 매경기 연투시키는 모습은 김성근 본인이 성장하던 1950~60년대 일본 야구이지 현대의 일본야구와는 전혀 다르다. 실제 2016년 한화 이글스의 경기를 관람한 일본인이 이것은 옛날 일본야구라고 평한 기사가 [[야구친구]]에 실리기도 했다. [[최동원]]이 롯데 팬들, 나아가 한국 야구 팬들 전체에게 신화적 존재로 자리매김한 것은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보여준 그의 투혼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 시리즈에서 최동원이 빛날 수 있었던 것은 상대방인 삼성에 비해 약팀이었고, [[져주기 게임]]으로 편한 롯데와의 대진을 선택한 삼성에 대한 반발심 등 여러 가지가 어우러져 그 혹사와 희생에 충분한 당위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때의 투혼을 기억하는 팬들도 한국야구에서 다시는 이런 사례가 나와선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은 그런 과거 일본식 야구의 스토리텔링에 빠져서 감동과 투혼의 드라마를 억지로 모든 경기에서 연출하려고 하고 있으며, 나약한 선수들을 일으켜 세워서 한계를 뛰어넘게 하는 야신 김성근의 이미지가 바로 스토리텔링의 정점이란 분석이다. 즉 노리타라고 불리는 김성근의 (광신적인) 팬덤들은 분명히 한 해에도 수십명의 선수들의 미래를 망쳐놓고 있는데도 그걸 묵인하는 일본 고시엔의 팬들처럼 그 스토리와 프레임에 빠져, 통계와 과학으로 실증된 현실을 무시하고 그 감동에만 광적으로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야구를 보는 것이 아니라, 김성근이라는 연출가가 수십명의 선수들의 선수 생명을 담보로 찍고 있는 드라마에 열광하는 것이다. 실제 김성근 사단과 일부 미디어의 합작으로 구축된 이런 스토리텔링은 라이트팬이나 야구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는 지금도 대단히 잘 먹혀 들어가고 있으며, 이것은 한화 이글스 경기의 높은 시청률과 대전 야구장의 구름 관중으로 증명되고 있다. 김성근 본인의 인터뷰와 자서전 등을 보면 근거 역시 명확하다. 2017년 인터뷰에서도 '''[[http://v.sports.media.daum.net/v/20170430061028358?f=p|"사람들은 포기하지 않는 야구를 통해 인생을 느낀다"]]'''라는 명언(?)을 날리면서 선진야구, 관리야구를 싸잡아서 폄하했다. 한마디로 자신의 망상에 사로잡혀서 시대의 변화에 뒤쳐진 구시대의 퇴물인 것이다. 실제 스포츠가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가장 큰 요소는 각본없는 드라마라는 스토리텔링이지만, 이것을 모든 경기에서 억지로 재현하겠다고 투수들에게 최동원 같은 혹사를 가하면 선수 및 리그 수준은 그만큼 추락하게 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혹사와 희생에서 손해를 보는 것은 결국 선수일 뿐 명령자인 감독과 즐기는 자인 팬덤은 거기서 쏙 빠져 있다는 것이다. 노리타들은 이걸 인정하려 들지 않으며 온갖 정신승리와 논리적 오류로 점철된 옹호론으로 혹사를 정당화시키려고 든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투수가 너무 많이 던진 것을 걱정한다고 한화팬들은 혹사무새들밖에 없다며 비아냥대지만 정작 혹사로 투수가 부상을 당하거나 감독 퇴임 후 기량을 회복하지 못하면 '그 돈 받고 비시즌에 쉬었으면 충분하지 않냐'거나 '기회를 받았으면 감사하기나 하라'며 본질을 무시한 채 선수를 비난하기 바쁘다.[* 다만 이건 당장 성적에만 관심이 있는 야구 팬들이 적지 않은 이상 꼭 이들에게만 한정된 이야기로만 보긴 어렵다.] 한화와 접점이 떨어지거나 한화를 상대하게 되면 다시 입을 씻고 선수를 응원하는 뻔뻔함의 극치를 보여주기까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