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르망디 (문단 편집) == 역사 == 서유럽 전역이 그랬듯 서력 전에는 [[켈트족]]이 자리를 잡고 살다가, [[율리우스 카이사르|카이사르]]의 [[갈리아 정복]]으로 [[고대 로마]]의 속주가 되었다. 이후 [[로마 제국]]의 분할로 [[서로마 제국]]에 속하였다가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프랑크 왕국]]령이 되었다. 9세기 경에는 대대적인 [[노르드인]]의 침략을 겪게 되고, [[샤를 3세]] 시대에 결국 버티지 못하고 지역 내 유력한 [[바이킹]] 집단의 수장 [[롤로]]를 루앙 백작으로 임명하였다. 롤로와 그 후손들이 루앙 인근으로 지배영역을 넓히면서 오늘날과 거의 같은 경계까지 확장하였고, 이 지역의 이름도 노르드인의 땅이라는 의미로 '노르망디'라 명명하여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노르망디가 성립한 시대에 대한 상세한 서술은 [[노르망디 공국]] 문서 참고. 이들은 이곳에서 라틴화를 겪으면서 기존 노르드인에서 분화한 [[노르만족]] 정체성을 형성하였고, 정복왕 [[윌리엄 1세]] 시대에 [[잉글랜드 왕국]]을 정복하면서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잉글랜드]]의 국가 기틀을 닦게 된다.[* 예컨대 현대 [[영국]]의 상징인 사자는 원래 노르망디의 상징이다. [[노르만 정복]] 이전에 영국의 상징은 앵글로색슨계 왕국인 [[웨식스]]의 상징인 용(정확히는 [[와이번]])이다. ~~대신 드래곤은 이제 웨일즈의 상징으로 활약 중~~ 그런데 정작 웨일즈인 또한 앵글로색슨인의 침공으로 쫓겨난 선주민들이다(...).] 윌리엄 1세 이래 노르망디는 잉글랜드와 [[동군연합]] 상태였는데, [[노르만 왕조]] 및 그 후계 왕조의 권세가 대단한 데다가 핵심적인 왕실령이었기에 오랜 기간 정치적으로 잉글랜드 왕국에 종속되었다. 법적으로는 [[프랑스 왕국]]령이었으므로 양국 왕가 간 분쟁의 요소였으며, [[백년전쟁]] 때 프랑스가 승리하면서 비로소 완전하게 프랑스에 귀속되었다.[* 다만 [[채널 제도]]만큼은 아직도 영국령이다.] 오랫동안 정치적으로 프랑스 왕국과 분리되어서인지 지역색이 강한데, 그래서 프랑스로 귀속된 이후로도 부침이 계속되었다. [[종교개혁]]기 노르망디 지역 도시들은 프랑스 정부에 반기를 들어 개신교에 투신하였다. 결과적으로는 노르망디 지역이 다시 한 번 피로 물들게 되었고, 부르봉 왕조의 절대왕정기를 보낸다. 이후 [[프랑스 혁명]] 시대에는 파리의 자코뱅에 대항하여 연방공화국 설립을 추진하는 파벌에 가담하였다가 또 피를 보았다. 나폴레옹에게 [[데꿀멍]]하긴 했지만. '''[[제2차 세계 대전]] 때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이 곳에서 일어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