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력충 (문단 편집) == 특징 == 불황과 [[청년실업]] 문제가 지속되면서 경쟁의 중요성이 두드러졌고, 그 와중에 노력과 비하적 의미의 충(蟲)을 합성한 노력충이라는 신조어가 빈번히 쓰이고 있으나, 노력충은 원래는 노력하는 자를 비하하는 단어가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현재의 의미로 변질되었지만, 처음에는 [[의지드립]]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을 비꼬려고 쓰였다. 자조적 의미의 [[갓수]]가 자부심의 표현으로 쓰이는 것도 비슷한 사례다. 최초 발생지(?)는 [[(구)주식 갤러리]]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만물일베설]]의 영향을 받아 일베 용어와 취급되는 상황이다. '노'자를 길게 늘려 말하는 게 고 노무현 대통령의 성을 따 비꼬는 듯한 어감 때문인 듯 하다. 하지만 최근 그런 인식은 많이 없어졌다. 본래 의미의 노력충에 한하여, 이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사회 구조적 문제를 간과 혹은 무시한다. 이런 경향이 있는 사람들은 사회의 문제도 모두 개인의 문제로 간주하곤 한다. * [[논리적 오류/비형식적 오류#s-3.5|사회적 문제 때문에 받는 피해에 반발하는 사람을 노력하지 않은 사람으로 간주]]한다. 이렇게 되면 반대 주장은 자연스럽게 묵살되고, 논쟁 자체가 불가능하다.[* 어느정도 경쟁에서 앞서있는 사람이 사회적 문제 때문에 피해받는 사람의 편을 들 경우에는 "[[강남좌파|요즘은 먹물든 것들도 다 좌경화돼서]] 조만간 적화통일되겠네..."같은 말을 들을 수 있다.] * 젊은 세대를 '''노력하지 않고 사치가 심하다'''고 일반화 하는 경향이 있다. 나이 든 사람이라면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내가 그 나이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라면서 무용담을, 젊은 사람이라면 '나는 이러이러한 힘든 상황에서도 잠 안 자고 일을 이만큼 해가며 잘 극복했다'라고 자화자찬을 하기도 한다. * [[자기개발서|성공담을 근거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같은 노력을 강요한다.]] 결혼 안 하고, 허리띠 졸라매며 생필품과 식비까지 아끼면서 집을 사는 삶은 당사자에게는 의미있는 일이어도, 비인간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게다가, 현실에는 그렇게 노력해도 조건 자체가 안 맞는 사람이 넘쳐난다. * [[스펙|자신의 이력을 공개하며 경력을 쌓으라고 강요한다.]] 하지만, [[SNL 코리아]]에서도 언급했듯 처음부터 스펙이 있는 사람이 어디있냐고 경력을 계속 강조하지만, 정작 처음부터 경력이 있는 사람은 없다. * 일부러 [[갑질]]을 하기 위한 의도로 노력만을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 실패나 보상 제공의 거부 등을 노력을 안 해서 그렇다는 식으로 몰아세워 자신의 이익(우월감, [[정치질]], 협상 결렬 등)을 챙기려는 식. 물론 현실의 일이 노력만으로 다 되는 것이었다면 지금과는 [[이세계|차원이 다른 세계가 되었을 것이다]]. ~~원나블[* 원피스 : [[샹크스|작중 준 최강급 연줄]],[[고무고무 열매|작중 최상급 유산]] 나루토 : [[오오츠즈키 하고로모|방계지만 어쨌든 인드라의 직계]], [[쿠라마(나루토)|작중 최강급 유산]], 블리치 : [[쿠로사키 이치고|작중 최상급 집안빨. ]] ] 죄다 재능/연줄 빨인건 감안하자.~~ * 자신이 한 노력을 다른 이들도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환경적 차이를 무시하고 노력을 강요한다. 주로 지적 엘리트 중에서 이런 이들이 많다. 사실 고시를 패스하거나 한 등의 사람들이 기울인 정신적 노력은 일반인들의 갑절을 훨씬 넘는데, 이들은 평범한 사림들도 이런 노력을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재능, 집안환경 등을 모두 무시하고 이를 강요한다. * 노력충이면서 정작 타인의 노력을 제대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노력충들은 보통 자만심은 높은데 식견은 좁아서 자기 기준으로 대단한 무언가를 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을 노력하지 않은 사람으로 간주하고 이분법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예를 들어 운만 따라준다면 단기간에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주식, 펀드, 부동산 투기등에 관심을 가지는 것만 오로지 제대로 된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원인이나 과정 따위는 관심도 없고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결과주의의 광신도라고 봐도 무방하다. * 심정주의에 자연스럽게 경도되어 있다. 노력하면 언젠가 보답을 받을거라는 심정주의 태도는 그 방향이 잘못되어 절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음에도 노력하면 이루어질거란 헛된 착각을 심어준다. 어떤 사람이 노력을 하든 안 하든, 사회 구조적 문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아니한다. '그 사람이 노력을 하는가 하지 않는가' 에 초점을 맞춰 논의를 방해하는 것은 엄연한 논리적 오류이다. 사회가 공급할 수 있는 재화와 일자리는 한정되어있으며, 이를 얻기 위해 국민들끼리 경쟁을 해야하는 상황이다. 이미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는 기성세대를 제외한 [[미생]]들의 경쟁이 특히 심화하고 있고, 흔히 486세대로 일컫는 기성세대가 취업했을 때처럼 대학만 나와도 취업이 되는 세상은 이미 지나간지 오래고 앞으로도 대학만 나왔다고 취업을 할수는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쟁을 포기한 탈락자들을 책망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사회는 성공한 소수만이 아닌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도 수용할 수 있어야 하므로, 노력을 종용하기보다도 사회구조적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다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사회만 책망하라는 소리는 아니다. 어떤 사회에서도 모든 사람이 평균 이상의 삶을 누리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며, 이상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더 좋은 삶을 누린다는 것은 즉 그 사람이 더욱 사회에 많은 가치를 창출했다는 의미이고, 역으로 이 기여->보상 구조가 정확히 잘 동작해야만 사람들에게 사회 발전에 대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즉, 사회적인 문제점을 개선하는 방향의 논의도 반드시 필요함은 사실이다. 그런데 [[의지드립]]이나 [[꼬북이]]를 주로 읊어대는 사람들은 경쟁에서 뒤쳐진 이들이 도태되는 것이 정의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학창시절의 성적은 이 연속적인 도전의 시작 단계일 뿐이고, 물론 이 단계애서의 결과에 따라 각자가 받는 보상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학창 시절의 성적 만으로 평생 꼬리표를 달고 사는 것 자체가 불합리한데다가, 계층이동의 문조차 닫아놓는다면 결국 사회는 침체될 뿐이다. 학창 시절은 학창 시절이고, 사회에 진출한 뒤에는 그와 관계 없이 새로운 경쟁이 개인의 능력에 따라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물론 학창 시절에 노력하여 한 발 앞서 능력을 키우고 좋은 대학에 들어간 사람이 평균적으로 볼 때 차후의 경쟁에서도 유리하겠지만, 비록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았더라도 차후에 노력하여 좋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 홀대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사회 구조상의 문제는 분명히 존재하므로 이런 부분은 개선할 의지를 가져야 한다. 달리 말해, 당사자는 물론이고 사회도 노력의 효율을 높여야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