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국대장공주 (문단 편집) == 기타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공민왕_노국대장공주_종묘.png|width=9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공민왕 노국공주.jpg|width=95%]]}}} || || {{{#000,#fff [[종묘]]의 노국대장공주와 공민왕 초상.}}} || {{{#000,#fff [[http://musenet.ggcf.kr/archives/artwork/%EA%B3%B5%EB%AF%BC%EC%99%95%EA%B3%BC-%EB%85%B8%EA%B5%AD%EB%8C%80%EC%9E%A5%EA%B3%B5%EC%A3%BC%EC%83%81?term=42|경기도박물관]] 소유본 초상.}}} || * 실제 초상화는 [[임진왜란]] 때 불태워져 [[광해군]] 때 건물을 복원하면서 제작한 이모본이다. 두 초상화 모두 노국대장공주의 실제 모습인지는 진작 여부를 확인할 수 없으나 전체적인 상용형식 및 복식 등 당대 시대적 상황을 알려주는 자료로서의 의미는 적지 않다. * 외모가 준수했다고 한다. 얼굴이 작고 쌍꺼풀이 없으나 날카로운 눈매와 짙은 반달형 눈썹을 가지고 있었으며 전체적으로 강인하면서 관능적인 분위기인 외모였다고 한다. * [[폐비 윤씨]] 외모가 노국공주 외모와 비슷하게 생겼다는 얘기를 듣고 연산군이 노국공주 초상화를 수집하도록 했다는 얘기가 떠돌지만 이는 사실무근이다. 여러 야사 기록에서 일절 언급되지 않았다. 다만 실록에서는 이유는 언급되지 않고 노국공주의 화상을 들여보내라는 기록만 나타나있다. 이 한줄의 기록을 가지고 일각에서는 어머니 [[폐비 윤씨]] 미모와 비슷해서 수집하라고 명했을 것이다라는 추측과 더 나아가 연산군이 밤마다 어머니 [[폐비 윤씨]]를 떠올리며 노국공주 초상화를 보면서 흠모했다면서 이처럼 출처 미상의 기록이 있다는 얘기가 사실인 것처럼 부풀려있다. * 당시 [[만악의 근원]]이었던 [[원나라]]에서 시집온 [[왕비]]였음에도 불구하고 [[공민왕]]의 반원 [[정책]]들을 지지하고 자기 나름대로는 공민왕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 했기 때문에 대중적인 [[이미지]]는 무척 좋은 편이다. 태생으로 따지면 [[외국인]] 왕비, 그것도 적국 [[공주]] 출신의 왕비였던 이가 후대의 사람들에게까지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특이한 경우이다. 공민왕과의 관계는 둘이 [[정략결혼]]인데도 불구하고 '''세기의 [[로맨스]]'''로서 대중매체에서도 잘 다뤄지고 현대까지도 여러가지 이야기거리를 안겨주고 있다.[* 이러한 로맨스 때문에 고려 [[역사]]에 대해 잘 모르고 두 사람의 로맨스만 알다가 정략결혼으로 이루어진 관계라는 사실에 이따끔 놀라기도 하고 반대로 정략결혼인데 이런 로맨스가 있었다는 것에 놀라기도 한다.] 몽골 [[황실]]이 한 배에 나온 형제 간에도 치열한 [[권력]]다툼을 벌였던 걸 생각하면 노국대장공주의 행동은 전혀 이상할게 없었다. 다만, 공민왕의 정책들이 명백하게 원나라 전체의 이익에 반하는 것들이었음에도 공민왕과 [[정치]]적으로 함께 한 것을 보면 단순히 몽골 황실 권력 다툼의 연장선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근거가 빈약하다. * 원나라의 쇠락에 따라 공민왕 다음 대의 [[우왕]]부터는 [[고려]] 여인을 제1비로 들였기 때문에 노국대장공주는 [[최후]]의 원나라 출신 고려 왕비인 동시에 최후의 외국인 왕비이다.[* 다만, 사망년도를 기준으로 따지면 우왕 원년에 승하한 [[덕녕공주]](제28대 [[충혜왕]]의 제1비)가 마지막이다.] 이후 [[조선]]에서도 국왕이 외국계 왕비를 들인 사례는 없었다.[* [[양녕대군]]을 [[명나라]] 황녀에게 장가보내려는 계획이 있었지만 무산되었다.] [[영친왕]]과 결혼한 [[이방자|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이방자)는 [[대한제국]]이 [[멸망]]해 영친왕이 이왕 세자가 된 후에 결혼했기에 좀 복잡하지만 굳이 대한제국에 맞추자면 [[황태자비]]가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