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네스토리우스파 (문단 편집) === 알렉산드리아 학파와의 논쟁 === 니케아 공의회 때에 안티오키아 학파와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힘을 합쳐 [[아리우스파]]를 이단으로 정죄하였다. 하지만 이후 자신들의 단어 사용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티오키아 학파는 서로 간의 간극이 너무나 큼을 깨닫고는 상대방을 이단으로 정죄하고자 했다. [[파일:external/pursuingveritasdotcom.files.wordpress.com/council-of-ephesus.jpg]] 이전까지 [[로마 제국]]에 의해 박해받던 [[그리스도교]]는 [[콘스탄티누스 대제]] 덕에 공적으로 인정을 받자, 이제 내부의 적들과 교리 논쟁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최초의 항쟁은 아리우스주의에 맞서기였다. 아리우스파를 제거한 이후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에 대한 논쟁, 즉 그리스도론을 논하며 계속 입장을 정리해 갔다. 수많은 항쟁 중 큰 항쟁은 네스토리우스 파벌을 제거하는 [[에페소 공의회]]를 들 수 있으며, 이후 에페소 공의회의 승자들 간에 의견을 정리하는 과정인 [[칼케돈 공의회]]를 들 수 있다. 4세기 말 로마 제국은 서기 395년 테오도시우스 1세의 두 아들이 동서로 제국을 분할상속 받았으나 그리스도교 세계 자체가 분리된 것은 아니었다. 5세기 들어 서로마는 거의 망한 거나 다름없는 상태고 로마는 410년 고트족의 알라리크, 455년 반달족의 약탈, 훈족의 침략에 탈탈 털리며 유지에도 급급한 상태라 신학적 논쟁은 동방에서 주도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총대주교좌가 설치된 지역은 옛 수도 로마, 제국 제2의 도시 알렉산드리아, 제3의 도시 안티오키아였는데 로마가 있는 서로마가 쇠퇴하면서 경제력을 바탕으로 알렉산드리아의 위세가 강했고 신학자들 또한 많이 배출이 되었다. 안티오키아 또한 동방 교역의 중심지였는데다가 시리아 출신 그리스도인들의 지지로 역시 위세가 대단했고 두 학파의 대결은 비록 그리스화된 그리스어 문화권 학자들이긴 하지만 단순히 신학적 문제가 아닌 정치적, 지역적, 문화적 충돌의 대리전 양상이었다. 당시 콘스탄티노플 신학계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티오키아 학파로 나뉘어 있었다. 비록 네스토리우스는 콘스탄티노플에서 주교가 되었으나 콘스탄티노플 사제와 신학자들은 --황제 낙하산-- 안티오키아 출신이 자신들의 주교가 되었기에 이를 불만이 많았다. [[성모 마리아]]에 대해서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하느님의 어머니]]란 뜻의 [[테오토코스]](Theotokos)를 주장했고, 반대로 네스토리우스가 속한 안티오키아 학파에서는 단순히 인간 [[예수]]를 낳은 안트로포토코스(Anthropotokos) 혹은 [[그리스도]]의 어머니란 뜻의 크리스토토코스(Christotokos)를 주장했다.[* 일부 [[개신교]] 경우에는 네스토리우스주의와 유사한 주장을 하는데, 이들은 [[테오토코스]] 용어는 초기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는 무리들에 대한 위격 강조의 결과로 본다. 이와 별개로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이 완전한 하나라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하느님의 어머니]]란 칭호 역시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이 완전히 하나이기에 논리적으로 귀결되는 결론이다.] 발단은 네스토리우스의 발언이었다. 네스토리우스는 이미 '그리스도의 어머니(Christotokos)' 용어를 쓸 것을 주장해서 이미 반대파에게 욕을 퍼먹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나는 젖먹이 어린아이를 하느님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발언을 했다고 전해지자 반대파에선 그가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고 있다며 맹렬한 공격을 받게 된다. 사실 이 발언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왜곡된 것인데 실제로 나중에 발견된 저작에서 그가 남긴 말은 '''"하느님이 젖을 먹었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였다. ~~똑같은 말인데?~~ 그외에도 '''"어떻게 여인이 신성을 10개월씩이나 몸안에서 기를 수가 있는가?!"''', '''"신성이 어떻게 포대기에 쌓여 있을 수 있단 말인가?!"'''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네스토리우스는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그리스 철학인 스토아 학파의 로고스 사상을 근거로 하여 하느님의 로고스([[요한 복음서]] 처음에 나오는 말씀)가 인간의 세상에 들어와 완벽한 속죄 제물로 죽임을 당하여 구원을 이루는 신학을 위주로 하였다 이와는 전혀 다르게 안티오키아 학파는 유대주의에 근거를 하여 신학을 주장하였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부당한 사탄의 억압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죽음까지도 감내하는 복종의 아름다움을 보였으며, 죄 없는 예수가 사탄에 의해 죽음으로써 이전까지 사탄이 내세웠던 주장의 근거인 죄의 대가는 죽음이라는 사탄의 주장이 허망한 것임을 예수는 증명하였다. 이러한 예수의 모습을 따라 모든 인간은 예수를 본받아 하느님께 다가감으로써 사탄의 주장인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는 복종의 구원론을 가르쳐 준 존재가 예수라는 것이었다. 428년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직에 착좌한 안티오키아 출신의 수도원장 '''네스토리우스(Nestorius)'''의 사고는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강조한 그의 학문적 배경, 안티오키아 학파에서 등장한 것이었고, '''신성(神性)과 인성이 그리스도 안에서 엄격하게 구분'''된다고 주장하였다. 즉, 하느님으로서의 [[예수]]와 인간 예수 간의 두 위격이 느슨하게 연합된 것이었고, 때문에 하느님에게는 어머니가 없으며 단지 예수의 인성을 낳은 어머니였기에 '그리스도의 어머니'라고 부른 것이었다. 게다가 당시 이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용어 자체가 네스토리우스 눈에는 [[성모 마리아]]를 신격화시키는 용어처럼 보였고, 그는 당시 안티오키아 학파(사람의 어머니)와 알렉산드리아 학파([[하느님의 어머니]]) 간의 대립에서 나름대로 중립적인 용어를 도출했다고 생각해 자신의 주장을 그대로 밀고 나갔다.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그리스도의 본질에 대한 에페소 공의회의 각 파벌의 입장을 정리하자면 ||[[파일:attachment/네스토리우스교/body1.jpg]]||[[파일:attachment/네스토리우스교/body2.jpg]]|| - A.이성론(네스토리우스派, 안티오키아) : 하나의 인간 존재(one prosopon) 속에 2가지 본질(인성, 신성, two nature)를 가진 2개의 위격(two united hypostasis, two united qnome)이 서로 연합(union, united)하여 하나로서 작용함. - B.양성론(키릴로스派 일부)[* 후에 [[칼케돈 공의회]]에서 정통으로 확정된다.] : 하나의 인간 존재(one prosopon) 속에 2가지 본질(인성, 신성 two nature)이 결합하여 하나의 위격을 형성함(one conjunct hypostasis, one conjuct qnoma)이다.[* 참고로 이를 주장하는 가톨릭과 정교회 신학에서 휘포스타시스와 프로스폰은 동일개념이며, 둘 모두 라틴어 페르소나로 번역된다.] - C.단성론(에우티케스派[* 키릴로스의 조카로 후임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키릴로스 또한 숙질승계로 총대주교가 되었다]) : 하나의 존재(one prosopon)에 신성과 인성 두 본성이 융합되었으며, 인성은 마치 [[포도주]]가 바다에 빠지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듯이 인성도 신성에 흡수되어 하나의 본성(신성)만이 남은 하나의 위격(one hypostasis) - D.합성론(키릴로스派 일부) : 하나의 존재(one prosopon)에 신성과 인성 두 본성이 어우러져서 새롭게 만들어진 하나의 본성 (신성과 인성이 혼합된 새로운 본성, two nature mixed into one new mixed nature, miaphysis)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위격(one hypostasis) 네스토리우스는 [[그리스도]]라는 하나의 존재 내에 두 본성(신성과 인성)이 존재하며, 이 두 본성은 각기 다른 두 위격(신격과 인격)을 이루고 있으며, 동시에 두 위격은 서로 연합하여 함께 작동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네스토리우스의 신학은 '''하나의 존재 안에 두 위격이 서로 연합한 것이 [[그리스도]]'''라고 규정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네스토리우스를 이단으로 주장한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인 [[키릴로스]][* 가톨릭에서는 치릴로, 영어권에서는 시릴. 헬라화된 알렉산드리아인이라 그리스식인 키릴로스로 표기함. 현재 정교회와 가톨릭에서 교회학자로 지정되었다. 축일은 6월 27일이다.]는 사상은 하나의 존재 내에 두 본성(신성/인성)이 서로 결합된 하나의 위격을 이룬다고 주장하였다. 네스토리우스의 발언은 단지 [[성모 마리아]] 문제가 아니라, 그 전까지도 계속해서 논쟁되어 왔던 그리스도론 문제로 이어졌다. 당시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가장 명망이 높은 신학적 중심지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이집트)|알렉산드리아]]와 [[시리아]]의 안티오키아로, 이 두 학파 간의 입장은 이전 [[아리우스파]] 논쟁과 [[삼위일체]]론을 통해 불거져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키릴로스]]는 [[요한 복음서]]에 있는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라는 말을 인용하며 정면으로 반박하였다. 그의 주장의 골자는 바로 '사람이 되신 하나의 본성'이라는 것으로 설명된다. 즉, 하느님으로서의 [[예수]]와 인간으로서의 예수는 분리되는 것이 아닌 총체적인 하나의 인격으로 설명되어야 하며[* 그러나 이 주장은 후에 [[단성론]] 논쟁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신성과 인성이 하나의 위격으로 공존하는 예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에게는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가 합당하다고 주장한 것이었다. 네스토리우스는 안티오키아 학파의 입장을 바탕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쳤는데, 안티오키아 학파는 [[성경]]을 역사적 문헌적으로 해석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역사적 존재로서의 실체를 강조했다. 이 입장은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키릴로스와 그가 이끄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큰 반발을 샀다.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성서를 해석하는 데에 있어 비유적 의미를 고려할 것을 강조했다.[* 이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에 큰 영향을 끼친 교부인 [[오리게네스]]의 영향이다. 오리게네스는 성경에 알레고리적 해석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교부이다.] 또한 그들은 전통적으로 하느님의 말씀, 즉 [[로고스]]로서의 그리스도의 신성을 내세웠다. 네스토리우스는 그리스도의 두 위격(인격과 신격)을 강조하며 인간으로서의 그리스도를 강조했다. 반면 키릴로스는 예수 안에 두 본성이 한 위격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입장에서 출발하여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이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논쟁은 마리아론이면서 동시에 그리스도론이다. 인간이자 동정녀인 마리아가 하느님을 낳았다는 명제를 [[예수]] 입장에서 풀면, 예수는 하느님이면서 사람(마리아의 아들)이다. 즉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모두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네스토리우스는 이러한 명제가 그리스도의 인성을 훼손할 여지가 있으며, 마리아에게 신성을 부여하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리하여 이를 막고자 동정녀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육체를 낳았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의도는 좋았다|의도는 좋았을지 몰라도]] 마리아가 그리스도가 가진 인간으로서의 페르소나(인격)만을 낳았다고 말하는 순간, 네스토리우스 자신은 신성과 인성이 연합한다고 주장할지언정, 그리스도가 가진 신으로서의 페르소나(신격)가 필연적으로 분리되는 논리적 약점이 있었다. 키릴로스는 이 약점을 파고들어서 네스토리우스를 공격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