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네스토리우스파 (문단 편집) == 현대 == {{{#!wiki style="word-break: keep-all;" ||<-5>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00px-Syriac_Christian_Churches.svg.png|width=100%]] || ||<-5> 시리아 기독교의 역사 || ||<|2>||<|2> 비잔티움 전례 ||||<-2>Melkite Greek Catholic Church: [[멜키트 그리스 가톨릭]] || ||||<-2>Greek Orthodox Church of Antioch: [[정교회]] || ||<|6>||<|3> 서시리아 전례 ||||<-2>Maronite Church: [[마론파]] || ||||<-2>Syriac Orthodox Church: [[시리아 정교회]] || ||||<-2>Syriac Catholic Church: [[시리아 가톨릭]] || ||<|3> 동시리아 전례 ||<|3> '''{{{#FFF 밑 파란 선: 네스토리우스파}}}''' ||||Ancient Church of the East: [[동방 고대교회]] || ||||Assyrian Church of the East: [[아시리아 동방교회]] || ||||Chaldean Catholic Church: [[칼데아 가톨릭]] ||}}} 주도권 장악을 둘러싼 치열한 내분으로 교단 지도층이 분열과 대립을 거듭하는 동안 교도들의 상황도 날로 악화되어 갔다. 특히 1843년 쿠르드족과 충돌이 벌어지면서 대학살극으로 10만으로 추정되던 전체 신도 중 2만이 사망한 것이 가장 큰 악영향을 미쳤다. 신자들은 [[제1차 세계대전]] 중 쿠르드족과 [[오스만 제국]] 정부의 탄압으로 4만의 신도들이 이라크 북부 모술평원으로 이주해야 했다. 그들은 독립국 건설의 희망을 가지고 [[오스만 제국]]과 싸웠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1933년]] [[영국]]의 신탁통치가 끝난 후 독립한 이라크 역시 그들을 인정하지 않자, 일부 무장 신도가 [[시리아]] 입국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들 역시 거부당하고 귀환 도중 [[이라크]] 정부군, [[쿠르드족]], [[베두인]]들의 공격으로 거의 몰살당하고 독립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여담으로, 개신교와 현재의 네스토리우스파인 [[아시리아 동방교회]]의 경우, 성모 마리아는 '신성을 낳은 어머니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을 낳은 어머니' 와 같은 교리적 관점에 있어 공통점이 매우 많아졌기에 개신교 측의 네스토리우스파 신학 연구가 활발해지게 되었다. 개신교계는 비칼케돈 종파 중에서 아시리아 동방교회를 가장 호의적으로 바라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