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네스토리우스파 (문단 편집) === [[몽골 제국]]에서의 관계 === || [[파일:몽골제국시기 네스토리우스 자료1.jpg|width=80%]] || [[파일:몽골제국시기 네스토리우스 자료2.jpg|width=80%]] || |||| 몽골 제국 시기 네스토리우스 유물 || 한편, 회창의 폐불령을 피해 도망친 중국 교회의 생존자들과 소그드의 상인들이 튀르크-몽골 유목민들에게도 그리스도교를 전파, 부족장의 결정에 따라 집단 개종을 해서 [[케레이트]]나 [[메르키트]], [[나이만]], [[옹구트]] 같은 유목 민족들이 대거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고, 이것이 유럽에서 [[프레스터 존의 전설|사제왕 요한의 전설]]이 되었다. 그 중 세력이 큰 것이 [[케레이트]]로서 13세기까지 그 세력이 남아 있었다. [[칭기즈 칸]]은 초창기에 케레이트의 지배자인 [[옹 칸]]에게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혼인 요청이 거부된 후 전쟁을 벌이나 처음에는 패배하고 이후 다시 승리하여 세 딸을 자신과 큰 아들 [[주치]], 막내 아들 [[툴루이]]의 부인으로 삼았다. 이중 막내아들 툴루이의 부인은 소르칵타니 베키라는 이름을 가졌고, 독실한 그리스도교 신자로 알려져 있다. 그녀에게 네 아들이 태어났는데, 첫째 몽케와 둘째 [[쿠빌라이 칸]]은 4대, 5대 대칸이 되었다. 소르칵타니 베키는 1252년 사망하지만, 그녀의 명성은 그치지 않고, 마침내 [[몽골인]]에게는 일종의 [[성녀]]로서 숭배와 제사의 대상으로까지 승화되었다. 이렇게 몽골 제국은 그리스도교에 우호적인 면을 보이는데 사실 몽골인들은 모든 종교에 다 관대했다. 몽골의 네스토리우스파 교회는 총교단과의 거리가 멀고 연결 고리가 약하던 탓에 현지화가 많이 이루어져서 사제가 [[텡그리]]의 샤먼처럼 행동하고 점을 쳐주기도 했다. 실제로 칭기즈칸이 네스토리우스파의 사제에게 점을 쳐달라고 하거나 그들로부터 예언을 들은 사례가 있고, 어떤 대칸은 가톨릭 사제에게 네스토리우스파의 사제들처럼 점을 쳐달라고 요구했다가 가톨릭 사제가 거부하자 심하게 화를 낸 적도 있다. 칸 입장에서는 같은 그리스도교인데 왜 안 해주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고, 사제 입장에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점을 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칸의 요구가 어처구니없었던 듯하다.[* 몽케 칸과 기욤 드 루브룩의 일화, 또는 칭기즈칸과 이슬람교 대표들과의 일화일 가능성도 있어서 자료 조사 후 수정하거나 정리하겠습니다.] 여담으로, 넷플릭스 드라마 마르코폴로를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마르코폴로의 견문록에 고려의 북부와 만주 일대를 다스리던 군벌이자 쿠빌라이의 먼 친척뻘[* 칭키즈칸의 형제의 손자이자 예수게이의 현손이다.] 되는 소개되는 나얀 또한 경교 신자로 묘사되고 있다. 실제로도 경교 신자였기 때문에 고려시대 당대에 그리스도교가 한반도 내로 유입되었다는 추정은 어찌 보면 매우 당연하다. 그리고 루이 9세의 사신으로 온 기욤 드 루브룩은 몽케 칸의 궁정에 체류하면서 네스토리우스파의 사제들과 그리스도교 교리를 놓고 거칠게 토론하기도 하고, 그들과 함께 팀을 이루어 종교 토론의 장에서 [[이슬람]]과 연합해 [[불교]]를 공격하기도 하는 등, 일반적인 서유럽의 가톨릭 사제로서는 할 수 없는 굉장히 특이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또한 기욤은 몽골 네스토리우스파 교회의 사제들의 질적 수준이 떨어지고 사제답지 못하다고 비판했는데, 상술했듯이 현지화의 영향으로 보인다. [[중동]]의 상황을 보면 중동의 지배자 [[일 칸국]]의 창시자는 소르칵티나 베키의 셋째 [[훌라구]]로서 그는 케레이트 옹칸의 손녀 도쿠즈 카툰를 첫째 아내로 삼아 그리스도교에 관대한 면을 보였다. 그의 후계자 아바카는 동로마의 황녀를 부인으로 맞아들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일 칸국의 4대 칸인 아르군 칸은 네스토리우스파 교회의 수도사였던 랍반 사우마를 유럽에 사신으로 보내 각국과 우호 관계를 맺으려 했다. 사우마는 교황과 각국 군주들과 만나고 유럽에 대한 인상기(印象記)를 남겼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