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너비아니 (문단 편집) == 궁중음식 [[불고기]] == [[쇠고기]]를 얇게 저미고 앞뒷면으로 잔칼집을 낸 뒤 양념하여 얇게 구운 음식. 넓적한 모양이고 [[갈비(고기)|갈빗]]살이 아니라는 점에서 [[떡갈비]]와는 많이 다르다. [[돼지고기]]를 사용하거나 손질 과정을 줄여 만든 섭산적(석적) 등 번외 방식도 존재한다. [[https://www.google.com/search?q=%EB%A7%A5%EC%A0%81%EA%B5%AC%EC%9D%B4&rlz=1C1FGUR_koKR890KR890&source=lnms&tbm=isch&sa=X&ved=2ahUKEwi_3uPZ5tv0AhXVhlYBHZDkD0EQ_AUoAXoECBMQAw&biw=2560&bih=1367&dpr=1|맥적구이]]와 함께 [[고구려]] 시대의 [[맥적]](貊炙)에서 기원했다고 추정하는 음식 중 하나이다.[* 맥적(貊炙)이란 말을 풀어보면 '[[예맥|맥족]]의 구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대다수 한국 고기구이 요리의 조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원래는 궁중에서 먹던 [[불고기]]의 한 종류였으나 [[임진왜란]] 이후로 조리법이 민간으로까지 퍼지며 대중화 되었고 [[일제강점기]] 때 황실 수라간 소속 [[숙수]]들이 민간으로 녹아들며 재차 대중화 되었다. 소설 '[[운수 좋은 날]]'에선 빈한한 [[인력거]]꾼들이 즐겨찾는 [[술집]] 안주거리 중 하나로 등장한다.[* '[[선술집]]은 훈훈하고 뜨뜻하였다. [[추어탕]]을 끓이는 솥뚜껑을 열 적마다 뭉게뭉게 떠오르는 흰 김, '''석쇠에서 뻐지짓뻐지짓 구워지는 너비아니 구이'''며 제육이며 간이며 콩팥이며 북어며 [[빈대떡]].'] 작품 배경인 1920년대는 [[조선총독부]]가 조선 씨소 반출을 목적으로 식용 육우 사육을 강제로 늘리던 시기였는데, 이로 인해 쇠고기 유통량이 늘어나며 곳곳에서 쇠고기를 쓰는 요리들도 늘어나게 되었다. 함께 유행한 요리로는 [[설렁탕을 사왔는데 왜 먹지를 못해|이 작품을 읽었다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설렁탕]]이 있다. 간혹 너비아니라는 이름을 [[외래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실제로는 [[순우리말]]이다. 너비아니 이름에 대해선 불로 구운 고기를 이르는 서울 사투리꼴이 특정 요리 명칭으로 퍼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실제로 학술지 '서울말 연구'에서는 너비아니 혹은 '너비하니'가 서울 사투리 사례로 기록하고 있다. 다만 너비아니가 나오는 최초 문헌 기록인 [[시의전서]]에서 '[[상주]] 지방 [[경상도 사투리]]가 너무 많아 문제'라고 나오는 것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이 말은 적어도 [[시의전서]]가 편찬된 조선 후기 무렵 '너비아니'라는 명칭이 전국, 또는 적어도 남부지방까지 퍼졌음을 보여주는 말이기 때문이다. 궁중에서도 너비아니라고 불렀을지는 좀 의문이다. 예를 들면 역시 궁중음식이었다는 [[떡볶이]]는 한자어로 병자(餠炙)라는 단어도 존재한다. 한강 이북이나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는 '산적'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산적(요리)|산적]]이라는 말은 수도권에서 고기 꼬치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차례, 제사에서 올리는 산적거리 고기가 바로 적당한 두께로 칼집이 들어간 것이다.[* 산적살은 보통 우둔이나 설도살 같은, 돼지로 치면 뒷다리로 해당하는 살이지만 아무 살이든 간에 정육점에서 주문하면서 '산적용으로 눌러달라'라고 하면 해 준다.] 이것을 양념하면 이런 모양이 된다. 산적이든 일반 양념 불고기든 간에 제대로 맛을 내려면 프라이팬이나 불판을 써서는 안 되고 석쇠에 올려 구워야 하지만 요즘은 편의상 양번철로 굽거나 조린다. 꼬치로 꿰는 산적도 산적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구별할 때는 고기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