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내셔널리즘 (문단 편집) ==== [[조선]] 말 ~ 2000년대 ==== 조선 말과 일제강점기 시절 외세에 의한 큰 흔들림으로 저항적 민족주의가 대두되면서 조선 사람은 하나의 동포라는 논리가 어렵지 않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실제로 조선 말기, 대한제국 시절에도 외국에 대해 격렬한 배타성을 보이기도 했으며, 청나라, 일본, 서양 모두에게 배타성을 보이기도 했다. 또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저항적 민족주의 경향은 더 강해져 일본 및 친일파에 대한 반감이 커졌으며, 타국 의존성을 줄이고 독자노선을 고수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해져 [[3.1 운동]] 같은 저항운동을 하기도 했다. 한국의 민족주의자들은 기본적으로 '외세'를 '궁극적으로는 신뢰할 수 없는' 세력이라고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내셔널리즘이 어떠한 공통점을 가지는 집단과 타 집단을 구별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하는 그 본질 때문에 배타적으로 흐르기 쉽다는 것을 생각하면 특이한 일은 아니다.][* 다만 이는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에서도 발견되는 인식으로 민족주의에만 배타적으로 해당하는 인식은 아니다.] 이런 흐름은 광복 이후 1948년 정부 수립 이후에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1940년대에도 구체적 사안에 대해서는 충돌했을지 몰라도 내셔널리즘 성향만큼은 [[이승만]], [[김구]], [[김규식]] 같은 우익과 [[여운형]] 같은 좌익 구분없이 모두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광복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진영과 무관하게 내셔널리즘 성향 자체는 계속 이어졌다. 한국이 겪었던 근현대사적 경험과 열강에 둘러쌓인 입지를 생각해보면 한국 사회가 이런 성향을 보이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이 때문인지 여전히 한국에서는 국가와 민족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많이 남아있고 교육계나 사학계, 정치계에서도 내셔널리즘이 크게 두드러진다. 위인전만 펴봐도 민족 얘기가 안 나오는 한국 위인은 손에 꼽을 정도다. 다만 내셔널리즘 성향 자체는 쭉 이어졌더라도 그 세부적인 성격은 시기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예를들어 이승만 정부 시기인 1950년대에는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난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일본]]에 대한 반감에다가 [[한국전쟁]]까지 일어나면서 [[중국]]이나 [[소련]] 같은 공산주의 국가들에 대한 반감까지 더해지면서 매우 강한 내셔널리즘 성향이 있었으나 [[미국]]에 대해서는 한국인들이 큰 호감을 가졌다. 미국이 한국전쟁에 참전했을 뿐만 아니라 전후 미국의 식량 원조 등이 당시 굶주림에 허덕이던 한국 대중들에게 매우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계속 이어지던 [[미국]]에 대한 호의적인 기류는 운동권들이 득세하는 1980년대에 들어서 크게 변했으며 반미가 성장하게 된다. 이런 [[운동권]] 사람들 중 [[NL]] 계열과, 1990년대 통신 세대를 기점으로 성장한 진보 세력의 [[좌익 내셔널리즘]]은 참여정부 시기에 제대로 힘을 얻었고, 반미주의는 2000년대 초중반에 정점을 찍는다. 2000년대에는 미국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아폴로 안톤 오노]] 사건과 미군 장갑차에 여중생 2명이 깔려 죽은 사건에 대한 반감, 광우병 사태, 위안부 문제의 대두가 이루어졌고, 이는 못 믿을 외세인 미국/일본에 대한 반감과, 일부는 '미워도 우리 민족'인 북한에 대한 호의감으로 발전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