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내명부 (문단 편집) === 방자(房子) === '''각심이''', '''방아이'''라고도 부른다. 비자의 일종이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전혀 다르다. '''상궁의 살림집 가정부'''로, 상궁이 되면 궐내에 자신만의 처소를 가지게 되는데 자신이 직접 살림을 하지 않고, 방자에게 모든 일을 시켰다. 방자의 급료는 국가에서 부담했다. 남자 방자와 여자 방자로 구별되는데 《[[세종실록]]》에 따르면 방자는 궁중에서 잔일을 하는 자였고, 관례를 치른 궁녀의 보조를 맡았다. 방자는 각 관청의 비자를 택해서 시키기 때문에 공노비 출신이 많았다. [[구한말]]에는 궁녀의 친척 중에서 추천을 받아 뽑는 사례가 많았다고 한다. 방자는 방아이나 '''각방서리'''(各房胥吏), 각심이로도 불렸다. 이들은 별다른 훈련이 필요없는 일을 했기에 주로 17~18세에 입궐했으며, 출신지 명칭으로 불렸다. 여염집 부녀들이 입는 평상복을 입고 머리에는 쪽을 지었으며, 옥색ㆍ백색ㆍ황색 저고리와 다홍치마를 피해야 했다. 옥색과 백색은 국상 때 사용되며, 황색 저고리와 다홍치마는 [[왕비]]와 [[공주]]의 복색이기 때문이었다. 방자는 일반 비자와는 달리 관비 출신이 아니었으며, 궁녀들이 친족이나 본가의 이웃에서 데려오는 여자들이었다. 결혼 경력이 있는 것은 상관없지만, ~~[[돌싱]]~~독신이어야 했다. 주로 믿을 만한 [[노비]]들을 데려오는 경우가 많았다. 방자 중에는 '반(半) 방자'와 '온방자'가 있었다. 반방자는 시간에 따라 궁을 출입하면서 일했고, 온방자는 아예 붙박이로 지내면서 먹고 자며 일을 했다. 당연히 온방자가 반방자보다 돈을 많이 받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