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내각 (문단 편집) == 유래 == 내각의 스타일에는 [[국가]]의 제도나 정치문화에 따라 여러가지 차이가 있지만, 의회제의 선구자였던 [[영국]]의 내각 제도가 전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영국 [[추밀원]] 산하의 작은 그룹으로 시작한 것이 최초의 내각이다. 본래 '다락방', '보관 상자'의 의미를 가진 'Cabinet'란 단어가 내각을 의미하게 됐는데, 초기의 내각은 따로 정해진 집무 공간이 없이 [[왕궁]]의 [[옷]]을 갈아입고 보관하는 [[방]]에서 임시로 회의를 진행하였기 때문이다. 당초에는 [[국왕]]의 통치를 보필하는 성격이었지만 [[입헌군주제]]가 확립되고, [[민주주의]]가 성장하면서 차츰 국왕에게서 독립된 기관으로 발전했다. [[한국]]에서는 [[정도전]]을 통해 유명해진 조선의 [[의정부]]와 [[육조]]를 예로 들 수 있다. 조선에서는 전면개각이 이뤄진 경우가 상당히 많다.[* 전면개각은 [[삼정승]]과 [[판서|육조판서]]가 통째로 교체되는 일을 뜻한다.] [[동양]]에서 내각이란 말은 [[중국]] [[명나라]]와 청나라에서 기원하는데, 이 때의 내각은 [[홍무제]]가 [[재상]]을 폐지했다가 [[영락제]]가 보좌기관인 [[내각대학사]]를 설치한 데서 왔다. 이후 [[청나라]]까지 유지되다가 일본에서 [[메이지 유신]] 때 내각이라는 단어만 가져가 [[1885년]] [[군주]]를 낀 총리 행정부를 가리켜 쓰게 되었다. 일본은 당시 [[오쿠마 시게노부]]가 의원의 권력이 강한 영국식 내각제(캐비닛)를, [[이토 히로부미]]가 군주의 권력이 강한 프로이센식 내각제(카비네트)를 각각 주장했으나, 민권사상의 한계와 지독한 [[엘리트주의]] 및 번벌들이 독재하는 [[과두정]]체제로 인하여 이토 히로부미의 안이 채택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